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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장태완 생전 마지막 인터뷰한 오동룡 군사전문기자가 본 영화 <서울의 봄>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라고 호통치던 장태완 장군의 목소리 생생”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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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우성아파트에서 오동룡 기자가 인터뷰했을 당시 모습. 당시 장태완 장군은 “심근경색으로 평소 300야드 나가는 골프도 중단하고 산행을 주로 한다”고 했다. 사진=오밀리터리 캡처

영화 <서울의 봄>이 12·12사태 발발 44주년에 화제의 캐스팅을 앞세워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소장이 연행 과정에서 일어난 일촉즉발의 상황 9시간을 그린 영화로,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철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 만큼 실제 사건에 충실해야 하지만, 극적 요소를 위해 픽션을 과도하게 가미하는 바람에 12·12를 모르는 관람객들에게는 ‘오독’의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우성이 맡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캐릭터다. 이태신은 당시 수경사령관인 장태완(張泰玩·종합 11기) 소장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2009년 11월 기자와 만난 장태완 장군은 이태신과는 성격부터 달랐다.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은 ‘흔들림 없고, 지조 있는 선비’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 장태완 사령관은 ‘불같은’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역을 맡은 성우 겸 배우 김기현이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고 소리쳤던 것처럼, 기자 앞에서도 장태완 장군을 설득하려는 황영시 중장(1군단장)을 향해 “이 반란군놈의 새끼야”라고 호통쳤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서울의 봄>은 12·12 당시 실제 인물들을 치밀하게 엮어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보다 계급이 높았던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중장부터 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과 그의 비서실장인 김오랑 중령까지 묘사됐다. 


이외에도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을 모티브로한 노태건(박해준) 소장이나 박희도 1공수특전여단장을 모티브로한 도희철(최병모) 준장의 수동적인 면모는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평이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려다 3공수여단 병력과 교전에서 전사한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중령 추서, 오진호 소령 역)은 배우 정해인이 맡았는데, 김오랑 소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삼촌과 많이 닮아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극 중에는 광화문 앞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과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대치하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에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광화문 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12월 13일 새벽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서울 필동 수경사에서 비전투병에 전차 4대까지 끌어모아 출동하려고 했지만, 장태완 장군은 당시 기자에게 “내 전차부대 지휘관들이 쿠데타 주도세력들의 무전 지시를 받는 것을 보고 병력 동원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극중에서는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남윤호)이 만류했지만, 이태신이 끝내 출동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 전두광이 국무총리 공관에서 차로 문을 들이받고 탈출하는 장면 역시 극적 상황을 위한 장치다. 어디까지를 ‘영화적 허용’으로 봐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일수록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스토리 구성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1월 2일 기자는 당시 병석에 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생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다. 장태완 장군은 기자에게 “국가가 맡겨준 수도경비사령관과 비상계엄하의 수도계엄사무소장의 책무를 완수하지 못했으니 난 국가와 민족과 역사 앞에 속죄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며 “이유야 어떻든 자결해도 모자라겠지만, 속죄를 비는 마음으로 생을 이어갈 뿐”이라고 했다. 


12·12 이후 장태완 장군의 가족에게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연행된 장태완 장군은 6개월간 가택연금에 들어갔고, 장 전 사령관의 부친은 아들이 보안사령부에 체포되는 것을 보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 이듬해 4월 건강이 악화돼 사망했다. 무엇보다 장태완 장군은 아내와 1남 1녀를 두고 있었는데, 큰아들 성호(1962년생)는 서울대 자연대에 합격해 수석을 할 정도로 부모에게는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1982년 1월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가 행방불명됐고, 2월 낙동강 기슭의 할아버지 산소 근처 인동장씨 재실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은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장태완 장군은 “시신을 싣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들의 꽁꽁 언 얼굴을 혀로 핥아 녹였다”고 말했다. 


장 장군은 1993년 ‘12·12 쿠데타 진상조사위’를 통해 12·12 사태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는 데 힘썼다. 장태완 전 사령관은 ‘참군인’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또한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 등에서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진압하는 모습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1994년 자유 경선을 통해 첫 재향군인회장이 됐다. 재향군인회를 이끌다 2000년 3월 민주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장 장군은 2010년 7월 26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안타깝게도 부인 이병호씨도 장태완 장군이 숨진 2년 후인 2012년 1월 17일 우울증을 앓다 딸 장현리씨에게 “미안하다, 고마웠다, 오래 오래 살아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 생을 마감했다. 기자에게 “대학에서 전공한 피아노는 제쳐두고, 요즘 고전무용에 빠져 산다”며 춤사위를 보여주며 깔깔 웃던 이병호씨의 웃음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글=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군사전문기자 

입력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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