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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찾아주세요” 전단지 돌리고 쓰레기통 뒤져보니

252장 나눠 줬는데 근처 쓰레기통 10곳서 ‘23장’ 발견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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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정유리씨의 부친 정원식(74)씨. 사진=월간조선

사람 찾아요잉?”

 

전라도 말씨를 쓰는 중년 여성이 되돌아왔다. 그도 처음엔 무시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실종자를 찾는다는 전단지란 걸 깨닫자 개찰을 빠져나오는 이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왔다. 그러더니 힘들것소라며 혀를 끌끌 차곤 한 장 받아 갔다. 또 다른 청년도, 20대 여성도 광고인 줄 알고 지나쳤다가 돌아오는 일이 왕왕 있었다.

 

1123일 오전 9, 노량진역에서 용산역으로 향하는 1호선 열차 안은 다른 칸으로 건너가기 어려울 만큼 번잡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서 한 명 한 명에게 전단지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거 한 번만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이들 서너 명이 받아줄 뿐이었다. 결국 열차 세 칸을 돌지 못하고 용산역에서 내렸다. 하도 숙이고 다녀서 허리는 어느새 굽어 있었다. 마지막 전단지는 손에 난 식은땀으로 우그러졌다.

 

개찰구로 나가는 통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정원식(74)씨가 매일 하던 일이다. 그의 딸 정유리(현재 나이 43)씨는 199185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 1동에서 납치돼 지금까지 실종 상태다.

 

지난 114일 경기도 안산의 정원식씨 집을 찾아갔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단지를 돌렸다. 장소는 주로 서울역과 지하철이다. 딸과 닮은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올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20216월엔 KBS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했다. 방송의 힘을 빌려 전단지 그림을 송출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서일까, 이젠 제보조차 오지 않는다.

 

매일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다. 밤마다 벽에 걸린 딸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로 32년을 보냈다. 딸을 잃어버리고 나서 단 한순간도 웃지 않았다. 하루에 1000장씩 돌리던 전단지도 더 이상 돌리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는다. 한쪽 눈은 실명했다.

 

그에게 전단지를 한 움큼 달라고 했다. 직접 돌리며 잠시라도 그 일을 대신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정씨는 에이 됐어, 그거 힘들어라고 만류했다. 그래도 재차 부탁하니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준 전단지를 세어보니 452장이었다. 100장씩 묶어 집게로 집었다.

 

그렇게 용산역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조금만 해도 나름의 꼼수가 생겼다. 일단, 왼팔로 전단지를 감싸 안고 오른손으로 전단지를 건넸다. 이때 왼팔의 전단지를 살짝 바깥쪽으로 내미는 게 좋다. 사람들이 광고 전단지는 무시하기 마련이지만 자녀를 찾는다는 호소는 쉬이 뿌리치지 못했다.

 

먼저 다가와서 한 장 달라고 손을 내미는 이도 4명 있었다. 모두 중년 여성이었다. 전단지를 받아주는 이들에겐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씨익 냉소를 짓고 지나간 젊은 남성은 옆 사람들이 받아든 전단지를 보곤 헐레벌떡 돌아와 자기도 한 장 달라고 했다.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또는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했더니 금세 목이 메었다. 자녀의 손을 잡고 가는 부모들은 절대 내빼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이에게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건네 보니 반갑게 받아들며 힘내세요!”라고 위로했다. 바쁘게 다녀보니 52장을 돌리는 데에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질서 안내원이 다가왔다. 올 것이 왔다고 짐작했다. 쫓겨나면 서울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큰 아버지뻘 돼 보이는 안내원이 전단지를 보며 말했다.

 

아이고, (실종된 지) 오래됐네요. 91년도에 실종됐으니까. 벌써 42세가 되셨으면…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다른 직원들도 전단지를 받아서 살펴볼 뿐, 아무도 내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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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3일 용산역에서 정유리씨를 찾는다는 전단지 252장을 돌리고 역 안 쓰레기통 10곳을 헤집어보니 23장만 발견됐다. 사진=월간조선

 

252장을 돌린 후, 근처 쓰레기통 10곳을 찾아다녔다. 환경미화원이 쓰레기통을 비우기 전에 역사(驛舍)안에 있는 쓰레기통을 전부 헤집었다. 모두 합쳐서 23장 남짓한 전단지를 발견했다. 229명은 적어도 용산역을 빠져나갈 때까진 전단지를 가져갔다는 얘기다. 정원식씨가 30년 이상 해온 일, 하나도 헛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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