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관람이 취미인 오진경(31·서울 은평구)씨는 최근 서울의 한 국공립미술관을 방문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전시 설명글이 어렵게 쓰여진 탓에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씨는 "현대미술 작품은 난해한 경우가 많아 명확한 설명글 없인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그런데 오히려 설명글이 작품보다 더 난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씨가 관람한 전시의 설명글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를 관통하여 2000년대로 이어지는 이 시기의 미술은 마치 지각변동과도 같은 전 세계적 체질 변화 상황과 이와 연관된 한국의 사회 환경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래서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은 보편적이면서 특정적이고, 전 세계적인 차원과 우리 사회 내적 맥락을 함께 고려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대성'은 상황과 사태를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시공간의 흐름으로 다루거나 인식하는 체계와는 다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복합적이고 뒤얽힌 시공간과 상황, 조건들을 수용하는 판단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후략)>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문장 대부분이 복문으로 구성됐고,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또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 뿐만이 아니다. 전남의 한 국공립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설명글을 보자.

<이 전시는 한국에서 남해를 앞에 둔 OO미술관이라는 지리적 문화화적 특성에서 ‘아시아’의 예술을 생각하며 출발한다. ‘또 다른’ 바다란 탈이념과 탈경계로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는 과거 역사적으로 볼 때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동양’으로 근대 미술을 이끌어 왔고, 오늘 우리는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의미를 모색한다. 즉 서양을 상대화하며 제조된 ‘동양’을 과거로 매장시키고, 초국가(transnational)적인 ‘아시아’로서 하나가 아닌 다중의 다른 류로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공유해보고자 한다.(후략)>

위 글에서도 문장 오류가 여러 군데 발견된다. 이에 대해 한 미술관 학예사는 "미술 용어는 예술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고 있어 어려운 개념과 모호한 용어가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알기 쉬운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미술관과 전시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미술관을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미술관의 상위 개념인 박물관을 '모두에게 열려있고, 포용적이며,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하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어 '윤리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교육·즐거움·성찰·지식 공유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여러 미술관이 해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전시 이해를 돕고 있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미술관은 어려운 곳"이라는 불만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현대미술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으려면 올바른 언어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면서 "더군다나 국공립 미술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미술관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글=김세윤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