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겪은,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모화사상에 골수까지 찌든 사대주의자들이었는가 하면 김일성을 숭배하는 주체사상파도 있었습니다. 또 오로지 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눈치를 보면서 북에 사사건건 동조하며 이들을 뒤쫓는 종북 내지 친북 좌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마오쩌둥과 김일성 그리고 붉은 이념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야기하는 ‘적폐’는 바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함으로써 그들이 추종하는 공산화 내지는 소위 민중 민주 사회 건설을 방해한 세력들 즉 ‘반동’들의 호칭인 것입니다.”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 p.16

육군참모총장과 국가정보원 원장을 지낸 남재준 예비역 육군 대장이 회고록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을 냈다. 출판기념회는 지난 13일 오후 밀리토피아 호텔(경기 성남시)에서 열렸다. 가족과 지인, 군‧국정원 출신, 지지자, 일반인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성원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라는 설득에 기념회를 열게 됐다”며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남 전 원장은 당초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할 의향이 없었다고 한다. 좌파 정부와 충돌할 게 뻔하고 희생양이 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군 후배들이 ‘군을 지켜달라’는 요청을 해 고심 끝에 총장직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장직 2년은 군인으로서 국가 안보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와 피나게 싸운 것이 2년의 세월”이라고 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배경에 대해서도 남 전 원장은 “당선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40년 동안 알고 느끼고 봤던 우리나라의 현실, 동북아 정세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살던 아파트를 저당 잡아 공탁금을 내고 출마했었다”고 밝혔다.

남재준 전 원장은 “우리 부모님들이 그 짧은 시간에 역사상 유례없는 놀라운 발전을 이 땅에 어떻게 세웠는지를 잊으면 안 된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부모 세대에 빚을 진 세대”라며 “이제는 여러분도 자신이 잘 사는 것보다는 여러분의 후손이 살아갈 미래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남 전 원장은 회고록을 통해 196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2005년 육군참모총장을 끝으로 전역할 때까지 40년 동안 군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했다. 남 전 원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적폐로 몰려 수감 생활하던 중 여든이 넘은 누님을 위로할 목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후 형님의 지극한 사랑과 격려에 의지해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면서 “당초 회고록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국정원장과 대선을 거치면서 왜곡되다 못 해 비틀려 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내가 걸어온 길’뿐 아니라 ‘내가 부딪히며 살아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의 기록을 남겨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날 참석한 주요 내빈으로는 ▲고명현(예비역 육군 준장) 전 국군체육부대장 ▲길형보(예비역 육군 대장) 전 육군참모총장 ▲김광현(예비역 육군 준장) 전 육군 정훈감 ▲김민석(전 국방부 대변인) 항공우주산업진흥회 부회장 ▲류성식(예비역 육군 소장)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문두식(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국군기무사령관 ▲박선영(전 국회의원) 물망초재단 이사장 ▲윤일영(예비역 육군 소장)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이병택(예비역 육군 준장) 전 육군 제66보병 사단장 ▲이영계(예비역 육군 중장) 전 수도방위사령관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임관빈(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국방부 정책실장 ▲장재환(예비역 육군 중장) 전 육군교육사령관 ▲장종한 양지회 회장 ▲정수성(예비역 육군 대장) 전 국회의원 ▲정중민(예비역 육군 중장) 전 육군군수사령관 ▲조현천(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국군기무사령관 ▲주은식(예비역 육군 준장)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은 화환을 보냈다.

남재준 전 원장은 임관 후 맹호사단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대대장‧연대장‧사단장을 거쳐 수도방위사령관·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 요직을 지낸 후 제36대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직 중 해온 일들은 남북통일 이후에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책에는 국정원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남겨주려고 노력했는지를 부록에 첨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다음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인사말 전문(全文)이다.

수감생활을 하다 보니까 벽을 보고 이야기해서 그런지 지금 목소리가 잘 안 나옵니다. 성대를 약간 다쳐서 치료받고 있는데, 지금 상태가 많이 호전이 돼 오늘 인사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먼 길 오시는데 수고를 끼쳐드릴 것 같아서 오늘 이 행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얘기하는 것이 ‘(2017년) 대선 때부터 수감 생활(2017년 11월 17일~2022년 5월 22일, 4년 6개월)하는 동안 마음으로 성원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라는 설득에 제가 져서 오늘 여러분을 이 먼 길까지 오시게 해드렸습니다. 위 기간 동안에 마음으로부터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문재인 정권에서) 적폐 1호로 명명돼서 수감 (생활)을 하게 되니까 여기 앞에는 정중민(육사 25기, 전 육군군수사령관, 예비역 중장) 육사 동기를 포함해서 저를 아는 많은 지인이 제가 수감된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친구 그거 담배 못 피워서 어떡하냐’고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빌려서 해명을 드린다면, 저는 소위 때 담배를 배워서 50년 가까이 담배를 피웠지만 ‘뻐끔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니코틴 중독 증상이 없어서 금단 현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담배를 피우지 못 해서 고통스러운 나날은 보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앞에) 길형보(1942년생, 육사 22기) 총장님 (앉아) 계십니다마는 1944년생,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 마지막 해에 태어났습니다. 6‧25 동란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4‧19, 2학년 때 5‧16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제 친구들이 열사의 사막 중동으로, 서독 막장의 광부로 그리고 제 친구의 부인은 서독의 간호사로, 그리고 저는 월남으로. 저희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졌었습니다. 

저는 월남전 참전 이후에는 서해안으로부터 동해안까지 철책선 155마일 전선을 전전해 가면서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을 역임했습니다.

제가 (2002년) 연합사 부사령관 했을 때, 여러분 기억하시겠습니다마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도 자식을 길러본 경험이 있는 부모로서 우리가 아무리 애도를 표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을 되돌리지 못하는 그 부모님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 이 땅의 운동권들은 그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정치화했습니다. (이는) 상당한 한미동맹에 위험, 위협을 초래하는 그러한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어가면서 저는 이 땅의 좌파들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꼈기에 제가 육군참모총장으로 지명됐을 때 거절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성격상 정부와 충돌하는 게 불을 보듯이 뻔한데, 저도 권력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 몇 명이 찾아와 ‘군과 정부가 (서로) 충돌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데, 군을 지켜줘야 할 선배님 같은 고위 장교가 비겁하게 혼자 살자고 도망을 가느냐, 그게 여지껏 우리들한테 올바른 군인인 척하고 보여줬던 선배님의 본모습입니까’ 하는 협박성 전화 때문에, 제가 밤새도록 한 이틀을 고민하고 나서 총장을 수락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들, 그 회고록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 총장 2년은 군인으로서 국가 안보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와 피나게 싸운 것이 2년의 세월입니다. 그 결과 제가 국정원 원장으로 지명됐을 때, 청문회 사상 가장 불꽃 튀기는 격전을 치렀죠. 제가 적폐로 돼서 수감됐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한테 드릴 수 있는 회고록을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저를 만나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이렇게 인사들 하시는데 사실은 한번 수감되면 수감된 사람들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 부인이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치료도 해주고 약도 공짜입니다. 세금도 안 내요. 

여러분들 좌파들이 일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인민들의 낙원이 바로 구치소입니다. 여러분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웃으신 분들이 있는데 아마 우리나라 국민 중에 상당수가 가고 싶어 하실 거예요. 왜냐, 여러분들 헌법에서 자유라고 하는 단어를 삭제하려고 그랬었죠? 헌법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순간 대한민국 구치소에 여러분 전원이 수감자가 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정원장을 하더니 어떻게 잘못 생각해서 대통령 출마한 게 아니냐’하는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겁니다. 평상시 제 성격을 알기 때문에…. 제가 육사를 삼수를 해서 들어갔지만 그래도 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렇게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죠. 그러니까 (당선) 될 수 없다는 거 뻔히 알고 나갔습니다.

저는 40년간 작전을 했고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하면서 북한의 전력이 어떠한 기도를 갖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북과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어떠한 장점과 취약점을 갖는지, 또 (남북이) 맞닥뜨렸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좌파 정권이 들어섰을 때 한미동맹이 어떠한 상태로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 수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국가에 녹을 먹고 처자식을 길렀으니 보답해야 되는데 제가 이런 얘기를 (대선에 출마한 후보가 아닌 상태에서) 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치소도 가겠죠. 그래서 제가 집사람한테 얘기했습니다. ‘참고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못 했지만 내가 40년 동안 알고 느끼고 봤던 우리나라의 현실,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국민한테 알려줘야 할 의무를 느낀다’라고. 그래서 제 아파트를 저당 잡고 그 반을 공탁금으로 내고 출마했던 겁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이 그 당시에 저를 열렬하게 지지해 주셨던 후원자님들입니다. 아무 보답도 못 해 드렸는데 오늘도 여기까지 오셔서 이렇게 축하해 주심에 진심으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 한마디만 더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역사상 있어 본 적 없는 놀라운 발전을 이 땅에 세웠는지 여러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나보다는, 그리고 우리보다는, 나의 후손들을, 내 자식들, 내 손자‧손녀들 그리고 이 땅에서 대를 이어가면서 살아야 할 내 후손들이 살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오늘보다는 미래’라는 가치 아래에 희생하셨기에 역사상의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던 겁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이 부(富)를 20배 늘려갈 때 우리나라는 400배로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한 기적은 아마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에 빚을 진 세대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자신이 잘 사는 것보다는 여러분 후손이 살아갈 미래의 조국이 보다 더 독자적인 역사를 영위해 가면서 찬란한 문명을, 그리고 인권과 자유를 세워나갈 수 있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부모님들처럼.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