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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리뷰] 유정남 시인의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

하얗게 풍화된 뼈로 눈물꽃이 되리라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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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임자면 염전의 모습이다. 사진=조선DB

과거의 기억은 대개 슬프다. 묘하게도 세월이 흐르면 그 아픈 과거가, 너무 아팠던 상처가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변함을 느낀다.

 

유정남 시인의 첫 시집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북인)에 나오는 시들은 전반적으로 슬프다. 슬픔을 한가한 은유나 탄식으로 표현한 게 아니라 날카롭고 때로 사실적인 은유로 그린다.

 

시인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무겁다. 과거의 기억 역시 대개 어둡다. 작품을 위한 습관성 어둠이 아니라 생을 응시하는 뿌리 깊은 아픔이 있는 듯하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수신 불량 지역에 사는 한 마리의 검은 짐승’(<수신 불량 지역에서>) 같다.

 

시인은 백 년 동안 고장난 적 없는 시청 대머리시계는/ 가시투성이 선인장을/ 금속성 초침으로 돌리고 있네’(<땡땡땡> 중에서)라고 말한다. ‘가시투성이 선인장금속성 초침으로 돌린다는 발상이 좀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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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새>에서는 메신저 카카오톡 수신음을 새 울음’으로 빗대며 ‘새 울음을 알약처럼 삼키며 자신을 죽인다고 쓴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카츄를 뽑다>는 인형 뽑기를 통해 캄캄한 책가방을 울리는 밤을 떠올리는데, 유리상자 속에 갇혀버린 인형은/ 나의 뒷모습이라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독자에게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조명제 시인은 유정남의 시를 별과 소금의 시학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시집을 덮고 나서 시인의 아픔이, 상처가 독자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시를 읽을수록 미학적 깊이와 만나게 된다.

 

뭍으로 건너온 바다는 폭염 속에 몸을 맡기고 화두를 건진다 갯벌의 수로를 지나올 때는 젊은 날의 부유물들이 등짐처럼 따라왔다 방향도 모른 채 심해를 유영하다 찢어진 지느러미들, 바람을 다그치던 파도의 높이를 잠재우느라 밤이면 신열을 앓기도 했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느라 뼈를 드러낸 어깨의 늙은 염부가 구릿빛 땀방울을 떨군다 수평으로만 이어지는 염전에는 한 뼘의 그늘도 햇볕에 녹고, 쓰라린 언어의 자모들도 갯바람에 묻어 하나씩 증발되어간다 별꽃 뜨고 지는 몇 생을 지나 수면의 흔들림이 모두 사라지면 끝없이 나를 비워내 온 시간의 결정들, 하얗게 풍화된 뼈로 눈물꽃이 되리라 거울 속에 눈부시게 정제된 별들을 쓸어모은다

 

  -<소금꽃> 전문

 

시집의 서시(序詩)인 시 <소금꽃>은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는 듯하다. ‘끝없이 나를 비워내 온 시간의 결정들’, 그리고 하얗게 풍화된 뼈로 된 눈물꽃이 지금의 시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세월을 통해 거울 속에 눈부시게 정제된 별들을 쓸어모을 수 있었다. 조명제 평론가는 그의 시를 읽고서 아문 상처의 기록이라고 했다.

 

앙리 루소는 일요일의 화가다

세상에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 그림을 그렸다

 

살롱 너머 가난한 붓엔 북극성이 없었다

캔버스의 미로를 더듬거렸다

입체파 계단을 통과하며 입체의 몸짓 데생하지 않았다

 

초대받지 못한 액자는

가장 짙은 웃음거리이자 원시의 눈동자였다

어떤 물감에도 섞이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도로 흘러갔다

 

환상의 풀을 먹고 자라난 얼룩말

평면 덤불을 깨고

아틀리에 뒷골목에 나타나면 아프리카 풀냄새가 났다

 

일요일 지나 8요일로 와 시를 쓴다

8요일의 시인이다

뒤집어도 안이 없는

바깥 바람문장이 밤새 촛불 춤을 춘다

깨치지 못한 별과 시인의 길이 노트에 울퉁불퉁하다

행간에서 피묻은 돌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2차원의 루소가 미술관 빠져나와 귓가에 속삭인다

, 8요일의 숲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군

 

공중에 매달린 종이 되어 나는 또 흔들리고 만다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 전문

 

표제시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은 지금의 시인을 알 수 있게 하는 시다. 입체파의 선구적 존재인 앙리 루소를 시인 자신과 대비시킨다.

루소가 남들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면, 시인은 세상에 없는 8요일에 시를 쓴다. 루소의 아틀리에 뒷골목에 아프리카 풀냄새가 났듯이, 시인의 노트 위엔 깨치지 못한 별과 시인의 길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작(詩作)법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시의 해설을 조명제 평론가의 글로 대신한다.

 

<···표제시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 세관직원으로 평일 근무를 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는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1844~1910)의 예술세계와 화자 자신의 시작 과정 및 행위를 결속시키며 풀어낸 작품이다.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난 루소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법률 사무소와 세관원 직원으로 입사하여 일하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한 화가이다. 그런 그는 원근법이나 인물의 비율에 신경 쓰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그 어떤 유파와도 닮지 않은, 환상과 사실이 혼재된 원시림의 모습 등을 그린 루소는 오랫동안 화단의 비꼼과 조소의 대상이 되고,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부심과 비아냥 속에 50대에 이르러서야 루소는 피카소, 브라크, 시인 아폴리네르 등의 찬사를 받으며 입체파의 선구적 존재로 평가받게 되었다.

 

유정남 시인은 역경과 고난, 온갖 비아냥과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화가로서의 성취를 이뤄낸 앙리 루소의 생애와 개성적 회화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반죽하고 번역하여 압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19세기의 과학적 문명시대에 정글 속 생명체들의 약동하는 풍경과 원시적 건강성을, 당시 미술계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원근법을 타파하며 우직하게 밀고 간 앙리 루소는, 직선과 직선적 고속시대의 인간성 파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시인의 시 사상에 전격적으로 부합한 예술가였던 셈이다.

 

일요일의 화가 앙리 루소의 영혼과 무한 상상력을 천착한 유정남 시인은 일요일 지나 8요일로 와 시를 쓴다라고 했으니, 8요일은 규범과 경계 밖의 요일로 뒤집어도 안이 없는 바깥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 “2차원의 루소가 미술관 빠져나와 귓가에 속삭인다/ , 8요일의 숲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군이라고 한 대목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적이고 다시점적인 도형의 구도를 잡아 그린 루소의 관점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카테고리 밖의 자유로운 상상으로 건강한 미래를 내다보는 지대인 8요일의 숲에는 직선적 과속의 신문명에 대한 유보적 사상을 견지하는 시인의 뜻이 숨겨져 있다.···>

입력 :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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