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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무공훈장 찾아주는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을 아십니까

전국 방방곡곡 누비며 4년 동안 미지급 훈장 5만 8284개 중 2만 5213개 전달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정책주간지 K-공감 711호에 실린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이야기.
탐문팀은 무공훈장 주인공을 찾는다는 스티커를 붙인 차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 사진=C영상미디어
70여 년 전 무공훈장 대상자로 결정되고 긴박한 전황으로 미처 훈장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정부의 공식 자료에는 훈장 대상자로 기록돼 있음에도 훈장수여 소식을 듣지 못했거나 기록 간의 불일치로 훈장 주인공들은 자신이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선배 전우에게 훈장을 찾아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후배 군인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이하 조사단)’이다. 이들은 훈장 주인공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古)문서를 해독하고 탐문 활동을 벌인다. 2019년 7월 24일 출범한 조사단은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4년가량 활동하며 미지급 훈장 5만 8284개 중 2만 5213개(2023년 6월 29일 기준)를 그 주인이나 유족에게 전달했다.

조사단은 단장인 신기진 대령을 포함해 총 22명이다. 장교 11명, 군무원 2명, 공무직 4명, 병사 5명이다. 병사 5명은 번역병으로 고문서를 전담해서 해독한다.

조사단은 당초 2022년 12월 31일까지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7년까지 활동이 연장됐다. 조사단은 육군본부(충남 계룡시)에 있다. 훈장 미수여자가 육군에 가장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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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진 조사단장이 무공훈장 수훈자에게 훈장을 전해주고 있다. 사진=625무공훈장 주인공 찾아주기 조사단

 

퍼즐 맞추듯 70년 전 흔적 찾아내

조사단은 우선 6·25전쟁 당시 병적 자료를 바탕으로 무공훈장 미교부자를 전수조사한다. 이어 전국을 3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권역별로 탐문팀을 파견해 탐문·조사 활동을 벌인다. 탐문 1팀은 충청·호남, 2팀은 서울·경기·강원, 3팀은 영남권을 맡는다.

탐문팀은 전국 지자체를 방문해 주민등록시스템과 제적정보시스템을 활용해 훈장 미지급자와 조사단이 확보한 자료를 일일이 대조하며 수훈자와 유가족을 찾는다. 과거 병적 기록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제적부 등을 뒤져가며 퍼즐을 맞춰가듯 70년 전의 영웅을 찾아나간다.

탐문팀이 한번 움직이면 신 단장과 함께 팀원 2~4명이 함께한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 25일까지 1팀은 42개 지자체(이동 거리 8700㎞), 2팀은 55개 지자체(8952㎞), 3팀은 33개 지자체(8548㎞)를 이동했다. 신 단장은 지난 1년 동안 140개 지자체, 약 2만 6200㎞를 방문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병적기록과 호적 등 행정 체계가 미비했다. 남아 있는 기록도 한자 초서체 형태의 손글씨로 작성돼 판독이 어렵다. 병적기록과 관공서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사단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 조사단이 마주하는 고문서는 번역병 임채빈 상병·문예준 일병이 해결한다. 임 상병은 홍콩에서, 문 일병은 중국 베이징에서 공부했다.
 
임 상병은 “전쟁 중에 작성된 문서이기에 시간이 흘러 빛이 많이 바랬다. 찢기거나 유실된 부분, 잉크가 번진 흔적 등이 많아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훈장 대상자는 17만여 명인데 여기에 따르는 훈장 명령지도 수없이 많다. 짧게는 3장, 많게는 400장이 넘는다. 순서가 뒤섞인 고문서 수백 장을 접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번역병들이 가장 헷갈리는 한자로는 김(金)과 전(全), 원(遠)과 달(達), 천(天)과 부(夫), 대(大)와 원(元), 박(朴)과 임(林), 수(水), 영(永), 구(求) 등이다.

판독하기 어려운 한자가 나와도 번역병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일병은 “판독될 때까지 반복한다. 다른 기록과 대조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임 상병은 “특정인의 다른 인사 명령 기록이나 문서를 교차 확인한다. 판독이 어려운 한자는 ‘임○빈’처럼 비슷한 이름, 군번, 소속으로 계속해 검색해나간다”고 했다.

임 상병은 “고문서를 해독해 훈장을 전달받지 못한 분의 이름과 유사한 한자를 조합해 군번이 재부여된 것까지 어렵게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탐문 활동을 벌여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아내 훈장을 전달해드린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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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에 있는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사진=C영상미디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기도

영남권을 담당하는 탐문 3팀 김영록 소령(팀장)은 “훈장을 찾아주기 위해 전화하다 보면 울면서 감격하는 분도 계시고 보이싱피싱으로 오해하는 분도 계신다”며 “‘이젠 하다 하다 훈장 준다고 보이스피싱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다”고 했다. 한번은 훈장 수훈자가 이를 믿지 않아 해당 지역의 예비군 지휘관이 직접 찾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 팀장은 훈장 찾아 주기가 ‘감정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업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하소연 전화는 끝까지 들어준다고 했다. 그는 “군인정신을 발휘해 한 분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하루라도 더 빨리 찾아드려야겠다는 절박함을 갖고 임하겠다”고 했다.

탐문 2팀 조사담당인 유재영 주무관은 전국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탐문 활동을 한다. 충남 계룡시청 관계자는 “조사단원들은 한번 일을 시작하면 일과가 끝날 때까지 자리도 안 뜨고 일만 해서 쓰러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유 주무관은 탐문 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일본 연호(대정·소화)나 단기(檀紀)를 기준으로 인적사항이 기록됐는데 대부분 맞지 않는다. 오독이나 오기가 많고 기록 간 불일치도 많다. 또 수훈자의 본적이나 주소지가 70년이 흘러 통폐합됐다. 참전용사는 대부분 호주(戶主)가 아니기에 수훈자의 부모님이나 유가족을 추정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하듯 일일이 대조하며 가족관계를 밝혀나간다. 기록을 보면 사후 양자 입적, 대리 입대, 대를 이어야 하는 형 대신 동생이 두 번 입대한 사례, 전사한 2남의 이름을 4남이 그대로 쓰는 경우, 3남이 두 명인 사례, 딸만 11명인 집안에서 막내아들이 전사해 대가 끊겨 호적 추적이 불가능한 경우 등이 있다. 낙동강 일대나 강원도 지역은 면사무소가 폭격으로 소실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추적에 어려움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명감을 갖고 해나간다.”

총괄기획장교인 최종길 중령은 조사단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최 중령은 “울산 호국 4형제 중 장남의 훈장을 찾아준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울산에서는 매년 현충일에 ‘울산 호국 4형제’를 기리는 추모제를 연다. 호국 4형제는 6남매 중 장남(이민건 육군 하사), 차남(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이승건 해병 중사)를 말한다. 장남·차남·삼남은 6·25전쟁에서, 막내는 베트남전에서 전사했다. 조사단이 울산에서 탐문 활동을 벌여 고 이민건 하사가 무공 수훈자임을 밝혀냈다. 이번 현충일 추모식에서 이민건 하사의 장남인 이준길 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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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진 단장이 조사단을 상징하는 코인을 들고 있다. 사진=C영상미디어

 

지자체 협조가 절대적

신기진 단장은 “조사단 활동에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이동거리가 길다는 점’이라고 했다. 실제 업무보다 이동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공 수훈자를 찾기 위해서는 인적사항 등 개인정보 조회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지자체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아 조사단 활동이 쉽지 않다고도 했다.

신 단장은 “군·읍·면 단위로 내려갈수록 협조적이고 조사단의 활동 취지에 대한 공감도가 높다”며 “대도시로 갈수록 협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업무를 맡은 실무 담당자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조사단의 활동 특성상 업무 파악과 숙달에 긴 시간이 걸린다”며 “조사단원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이들의 임기를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군은 일정 기간이 되면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 이 때문에 조사단 업무에 숙달할 때쯤 되면 전출하는 사례가 생겨 업무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세 명의 수녀가 조사단에 연락하고, 파독 간호사에게 무공훈장을 전해주고, 손자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찾아주고, 유복자로 태어나 70년이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훈장을 받고, 현역 해군 제독의 아버지가 훈장 수훈자였고…. 조사단이 움직인 거리만큼 숱한 사연들이 쌓여가고 있다. 이들 조사단은 70여 년 전 우리가 겪은 아픔을 다시 정리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영웅을 부활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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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무공훈장

 

무공훈장의 역사


무공훈장의 역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18일부터 시작됐다. 무공훈장령이 제정돼 전공을 세운 장병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게 됐다. 6·25전쟁부터 소급 적용돼 1953년 7월 27일 전쟁이 될 때까지 무공훈장을 받거나 대상자로 선정된  인원은 17만 9000여 명이다. 육군(16만 2950명), 해군(1만 3038명), 공군(3343명) 순이다. 이 중 육군은  5만 4000여 명, 해군은 1641명이 훈장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다. 


육군은 당시 전황을 고려해 사기진작 차원에서 사단장급 지휘관에게까지 훈장 수여를 위임하고 대상자에게 임시  수여증서(가수여증)를 나눠줬다. 실제 훈장과 훈장증서는 교부하지 못했다. 1960년까지는 현역 복무자를 대상으로, 1961년부터  1965년까지는 전역자를 대상으로 훈장을 수여했다. 이후에도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지속해왔다. 국방부는 2019년에는 더  시간이 없다고 판단해 특별법까지 제정해 조사단을 구성, 무공훈장 찾아주기에 매진하고 있다.

 

무공훈장을 찾아주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전공을 세울 당시는 국가 기록과 행정 체계가 오늘날처럼 정비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는 1968년 이후에 도입됐다. 2008년 호적법이 폐지되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하거나  제공받는 것이 더 힘들어지자 미수여자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일부 지자체는 당시 호적 자료가 전시(戰時) 폭격 등으로 소실됐다.  이 경우 집성촌 등 마을 단위 탐문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공훈장 수훈자에 대한 혜택으로는 무공영예수당(월 약 36만 원) 지급, 보훈병원 이용, 국립묘지 안장 등이 있다. 무공훈장  미지급자 명단은 육군본부 누리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전화번호는 1661-7625다.

 


 

입력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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