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5번출구 부근에 슬픔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 한두방울씩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과 합쳐져 슬픔은 거리 전체를 점령했다. 길거리에 그렇게 까만 옷이 많은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처음엔 내 눈이 잘못된 건지(색맹 같은) 잠시 의심하기도 했다. 검정 옷을 입은 여성들이 둘이서, 혹은 혼자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제(7월 22일) 오후 5시였다. 남성도 간혹 껴있었지만 거개가 여성들이었다. 서이초등학교로 가는 이들이었다. 그 곳에서 지난 7월 18일 스물세살의 교사가 목숨을 끊었다.

서이초로 걸어가며 울산에서 올라온 교사 2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죽은 교사와 동갑쯤일까. 앳된 얼굴의 여성 교사들이다. 이들은 종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후 추모를 위해 서이초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은 할 말이 참 많은 듯 했다. 너무 많아서 말을 하는게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교권이라는 건 이제 없어요. 교사들끼리 만나도 그런 얘기를 이제 안해요. 바뀌지 않는 현실 얘기를 계속 해봤자 우울해지니까요. 어느 정도냐고요? 문제 아이가 교사에게 책, 가위, 자 같은걸 계속 던져도 그 아이를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없어요. 아이 손목이라도 잡으면 ‘아동 학대’가 되거든요.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다고 해도 몇 달간 불려다니며 고생해야 해요. 대부분의 교감, 교장 선생님들도 저희 편이 되어주시지 않아요.”

이들은 자신들의 추모가 조직적이거나 정치적인 행동으로 비추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이들도 많았다.

“다들 자발적으로 왔어요. 목포에서도 차를 전세내서 올라오고 제주도에서도 왔대요.”

교사가 아니라 ‘보육 돌보미’

코너를 돌자 서이초가 보였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추모 화환이 끝도 없이 줄서 있다. 띠를 보니 어디랄 것도 없이 전국 각지에서 보낸 화환들이었다. 울산에서 온 교사들과 헤어져 혼자 정문 쪽으로 향했다. 학교 앞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했다. 이번엔 세종시에서 온 교사와 대화를 나눴다. 역시 젊은 여성이었다. ‘그래도 문제적인 민원을 하는 학부모는 한 반에 한둘 정도 아닌지’ 물었다. 냉소적인 어투로 답이 돌아왔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분들이 한 반에 한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요. 저희를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 보육해주는 낮시간 돌보미 정도로 생각하시는 학부모들이 많아요. 낮시간에 본인 애 위주로 돌봐달라는 거예요.”

-세종시라면 공무원 학부모들이 상재거으로 많을 텐데 그래도 심한가요?

“공무원 학부모라고 다른 줄 아세요?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아요. 아마 강남 쪽이랑 세종시가 교사에게 소송 걸리는 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을 거예요. 결국 다른 순한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써주니 이 아이들이 피해보는 거예요.”

정문에 도착했다. 국화꽃 더미와 메모지로 도배된 철울타리가 보인다. 정문 앞에선 전국초등학교 교사노조가 추모객들에게 국화를 나눠주고 있다.

메모들을 읽어봤다. 추모와 슬픔, 후회, 원망... 추모객들의 행렬은 학교 건물을 둘러싸고 길게 줄을 서있다. 어디로 향하는 줄일까. 현장에 나와있는 서이초 교직원에게 물었더니, 교사가 목숨을 끊은 교실 앞으로 향하는 줄이란다.

-토요일에도 근무하시네요. 힘드시겠어요.

“초상을 치르는데 저희가 힘든 게 대수입니까.”

-교직원 분들도 황망하겠습니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표출된 게 아닌가 싶어요. 교사, 교사 가족, 예비교사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네요.”

교사가 목숨을 끊은 곳은 학교 건물 제일 구석에 있는 교실이었다. 창문이 없어 햇볕이 잘 안들어오는 교실이란다. (교육특구라고 하는 강남에 창문이 없는 초등 교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차마 그 바로 앞까지는 갈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그 교사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떠올려보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아이들 책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을까.

나이 많은 이의 죽음이라고 덜 슬프겠냐만은, 스물세살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막막해진다. 인천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는 50대 교사 얘기를 들어보니 소위 ‘악성 민원’도 사람 봐가면서 들어온다고 한다.

“학기 초에 여러 부모들이 연락을 해와요. 연륜이 있고 경험이 많은 교사는 말도 아끼고 아주 냉정하게 중립적인 말만 합니다. ‘아 이 교사에겐 씨도 안먹히는구나’ 싶으니, 민원이 덜 들어와요.”

20대 초중반 교사들은 사정이 다르단다.

“어린 교사들은 의욕이 넘치니 본인들이 다 챙겨주려 해요. 그런데 한 반에서 너댓명이 학생 한 명을 따돌린다, 이 상황을 이십대 초반 교사가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못해요. 이런 사안은 담임이 전적으로 해결하는게 아니라 전담 교사한테 넘기든가 하는 식으로 현실이 바뀌어야 해요.”

더 흥미로운건 교사 가족의 직업에 따라 악성 민원의 정도도 조절된다는 점이다.

“교사의 배우자가 검찰 쪽에 있다는 게 알려지니 학부모들이 눈에 띄게 조심하더라고요.”

물론 극히 일부 학부모의 얘기일 것이다.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추모객들의 줄은 점점 더 늘어난다. 빗물에 쓸려 바닥에 떨어져버린 메모지를 주워 국화 꽃다발 위에 올려놓았다. 왠지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들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렇다.

첫째, 교육 문제는 영향을 받는 사람은 많지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집단화가 되기 힘들다. 자녀가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지만 대학에 진학하면 이때다 싶은 것처럼 문제를 외면한다. 자녀의 입시가 끝나면 강건너 불구경이 된다. 수능철이 가까워지면 기껏해야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 욕 정도 한판 하고 끝이다.

자녀를 인서울 소위 명문 대학에 보낸 학부모들은 무슨 인생 승리자인냥 설교를 하고, 그러지 못한 학부모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이해는 한다. 3년, 아니 6년간 얼마나 지겨웠겠나.

우리가 외면한 공교육을 떠받치고 있는 건 결국 교사들이다.

둘째, 그 교사들의 목소리가 현실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정작 관심이 없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같은 단체의 탓이 크다. 전교조 홈페이지를 가보면 온통 정치 타령이다. 전교조가 7월 13일에 발표한 성명을 보자. 이른바 ‘7·13 총파업 승리 전국교사 결의대회 투쟁결의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고 승리하자!

   전교조는 지난 34년간 여러 정권을 거치며 민족, 민주, 인간화를 지향하는 참교육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 법외노조라는 긴 터널도 견뎌왔다. 그런데 어느 날 검찰이 독재정권으로 부활했다. 새로운 미래를 대비해야 할 21세기에 반인권, 반민주, 반노동, 반역사, 반교육 정권이 등장하였다. 국가도 주권도 나라도 국민도 안중에 없다. 돈벌이에 혈안이지만 정작 국가 경제는 파탄으로 내몰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친일, 친미, 친재벌에 의지하며 미친 칼춤을 추고 있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전교조는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윤석열 정부의 폭주에 맞서 다시 이 자리에 섰다.>

독자들의 심기를 보호하기 위해 처음 한단락만 인용했다. 결의문 어디에도 문재인 정권 기간 가속화된 교권 하락에 대한 언급은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도입된 건지 알 수 없이 교사 업무만 가중시킨 나이스(NEIS) 시스템을 도입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언급 역시 한마디도 없다. 수능 제도를 뒤흔든 이해찬 전 장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교사들의 직접적인 현실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사회 문제엔 다 간섭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사 검색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전교조 서명’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이다.

<현대차 노조가 속한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오는 12일, 보건의료노조·사무금융노조·전교조 등은 13일 총파업에 참여한다.> (7월 7일 기사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전희영, 전교조)은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가 임박하여 이를 반대하는 교육 주체 공동선언을 준비하였다. 서명은 6월 20일부터 7월 4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18,735명이 참여했다.> (7월 3일 기사)

<(국토부의 제주 제2공항 계획안을 두고) 제주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전교조 제주지부, 제주녹색당 등은 찬성 측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4월 10일 기사)

전교조가 민주노총 파업에 동참하고 일본 후쿠시마 배출수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제주 공항 건설에 간섭하는 한켠에서 교사들은 심리 상담을 받고, 목숨을 끊는다.

이제는 전교조가 교실 안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 듯 하다. 전교조라는 단어 자체가 오염된 탓이다.

셋째, 학생들을 볼모로 교육 문제를 정치화하는 세력들이다. 정치를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민주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낙연 전 총리는 득달같이 '서이초 사건을 두고 왜 학생인권조례 탓을 하냐'며 나섰다. 학생인권조례가 민주당이 끝까지 사수해야 할 헌법인가. 지금은 모든 걸 원점에서 검토해볼 때 아닐까.

 서이초 교사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진상 규명도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공교육 현실을 근본적으로 짚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그게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글=하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