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기다리게 되는 편지가 있다. ‘형’이라는 희성(稀姓)을 가진 어느 독자분의 편지다.(혹시 편지가 공개되는 걸 원하지 않으실 수 있으니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이 분은 이전에도 조선일보 독자센터에 예리한 지적을 수차례 남겨주셨다)

상당한 국어 실력을 갖춘 독자다. 기사 속 잘못 쓰이거나 적합하지 않은 단어를 정확하게 짚어서 알려주신다.

7월호에 실린 임영웅 특집 기사 ‘팬카페 회원 20만 명 자랑하는 국민가수 임영웅 팬덤의 현장을 찾아서’에도 의견을 보내주셨다. 기사의 해당 대목이다.

<임영웅 미담 중에 기자가 가장 놀라웠던 건 교통사고 현장 인명구조 건이다. 지난해 1월 21일 서울 올림픽대로 여의도 방향 반포대교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던 임영웅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최초 신고 후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꺼내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런 후 운전자가 의식을 찾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운전자를 후송하는 것까지 확인한 후 떠났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후송’을 두고 이렇게 지적하는 내용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 ‘후방으로 보냄'이 '후송(後送)'으로 군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이송(移送)'이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후송(後送)[명사]적군과 맞대고 있는 지역에서 부상자, 전리품, 포로 따위를 후방으로 보냄. >>

정확한 지적이다. 일상 뿐 아니라 기사에서도 군사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잦다. 정치 기사에 ‘짬밥’ 같은 속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후송’ 같은 단어의 경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썼는데, 예리한 지적이 반가웠다.

같은 기사의 다른 부분에 대한 지적이 또 있었다.

<11년 전부터 영업해온 식당은 2020년, 임영웅의 운명과 함께 전환점을 맞았다. 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는 명소가 됐다. 명준식 사장은 “손님 10명 중 8명이 임영웅 팬”이라고 말했다.>

‘대절’이 문제였다. 이에 대한 독자분의 지적이다.

<<'대절(貸切)'은 일본식 한자어로서 사전에는 남아 있으나 법령에서도 쓰지 않습니다. '계약에 따라 일정 기간 그 사람에게만 빌려주어 다른 사람의 사용을 금하는 일'은 '전세(專貰)'입니다.>>

역시 예리한 지적이다. 저 대목에서 ‘대절(貸切)’은 표준어 맞춤법에 어긋나는 용례는 아니지만 단어 자체가 일본식 한자어다. '전세(專貰)'라는 동의어가 있다면 바꿔 쓰는게 낫다. 이외에도 여러 건이다. 

뜬금없는 자랑 같긴 한데 기자는 과거 KBS한국어능력시험에서 수석을 한 적이 있다. (언론사나 공기업 입사를 위해 치러야 할 시험 중 하나다) 딱히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국어 구사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다 어느날 인터뷰를 위해 마광수 교수님을 만난 후 생각이 좀 바뀌었다. 마 교수님은 표준 국어대사전(두꺼운 버전)을 옆에 두고 글을 쓰셨다. 미심쩍은 단어는 늘 확인하며, 간명하고 정확한 글을 쓰려 노력하셨다. 국문학과 교수답기도, 답지 않기도 한 태도였다. 서재 책상위 손때 묻은 사전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더랬다. 마 교수의 글이 읽기 쉬운 것은, 내용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공을 많이 들여서라는 걸 깨달았다. 글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나의 안이한 태도를 반성했다.

한국어의 달인 독자분의 편지를 읽어보며 그때와 유사한 질감의 감정을 느꼈다. 날카로운 지적에 뒷골이 당기면서도 반갑다. 이번달엔 어떤 지적을 보내주실지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글=하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