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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군사원호청에서 출발해 62년 만에 장관급 부처로 격상

초대 보훈부 장관에 박민식 전 보훈처장. 박 장관 부친 고 박순유 중령, 베트남전에서 전사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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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등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보훈부 현판식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발했던 국가보훈처가 지난 5일 국가보훈부로 승격됐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보훈부 승격 및 재외동포청 신설 서명식에 참석해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에 서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정부조직 개편은 국격에 걸맞은 일류보훈 달성과 글로벌 중추국가 실현 등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추진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서명식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번영은 호국 영웅들이 목숨 걸고 자유를 수호한 결과”라며 “정부는 호국 영웅들을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책임 있게 예우하고 호국 영웅들께서 온몸으로 지켰던 자유의 정신을 더욱 소중하게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국가보훈은 국가정체성

공동체는 공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과 국가정체성을 형성한다. 국가정체성은 공동체 구성원이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런 헌신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보훈이다. 부강한 나라일수록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보훈을 중시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가 융성했던 시기는 공통적으로 보훈에 관심을 뒀을 때다. 우리나라 국가보훈부에 해당하는 미국 제대군인부(DVA)는 미국 연방부처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2022년 기준 예산만 약 340조 원이다.

개인과 국가 사이의 헌신과 보답은 고대부터 이어져왔다. 주나라(기원전 1046~771)는 국가에 대한 공을 여섯 가지로 나눠 예우하는 육공(六功) 제도를 도입했다. 전국시대 진나라(기원전 221~206)는 전공을 세우는 이들에게 벼슬을 주는 ‘20등작제(等爵制)’를 마련해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가 됐다. 삼국지로 유명한 조조는 세계 최초로 보훈포고령을 내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을 우대하고 특혜를 내렸다.

영국은 1591년 엘리자베스 1세 때 구호 기금인 ‘채텀 체스트(chatham chest)’를 설치하고 1593년에는 군인구제법을 만들어 상이군인과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프랑스는 1674년 루이 14세의 왕명으로 노병과 상이군인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세계 최초의 보훈 병원이자 요양 시설인 앵발리드(Invalides)를 세웠다. 앵발리드에는 나폴레옹의 묘도 있다.

우리나라 보훈 역사는 6·25전쟁과 함께 시작했다. 공비토벌작전에서 희생된 군경 유가족을 위해 1950년 4월 군사원호법이 제정됐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에 보조금을 주는 수준이었다. 6·25전쟁으로 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하자 1952년 9월 전몰군경 유족과 상이군경 연금법이 제정됐다.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부터 6·25전쟁 전사자 및 유족에게 연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보상금으로 1950년대 들어 전상 군경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1961년 보건사회부·국방부 등에 분산된 원호(援護) 업무를 통합해 군사원호청(국가보훈부의 전신)을 창설했다. 1962년에는 군사원호청이 원호처(장관급)로 승격되고 독립유공자와 유족, 4·19혁명 부상자와 유족도 원호 대상에 포함했다.

6·25전쟁으로 출발한 대한민국 보훈

1980년대 들어 보훈정책이 변했다. ‘원호’라는 용어 대신 ‘보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호라는 표현이 구호와 비슷한 인상을 줘 추앙과 존경을 받아야 할 이들이 구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에 1984년 기존의 원호 관련 법을 통합한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1985년 시행)이 제정됐다. 기관 명칭도 군사원호청에서 국가보훈처로 변경됐다. 명칭 변경과 함께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공훈 선양과 애국정신 계승을 위한 사업도 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보훈 수혜 대상자가 확대됐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고엽제 후유증 군인을 비롯해 제대군인, 특수임무수행자 등도 혜택을 받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가보훈기본법(2005년)이 제정돼 범정부 차원에서 보훈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유엔참전용사방한 행사 등을 개최하며 명예 선양 국제보훈활동도 강화해나갔다. 국가보훈부는 2023년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961년 창설 이후 보훈부 수장은 다섯 차례에 걸쳐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가며 불안정한 지위를 겪어야 했다. 2017년 국가보훈처가 ‘장관급’ 처로 격상됐지만 국무위원이 아니어서 국무회의 심의·의결권과 독자적인 부령 발령권이 없었다. 이 때문에 보훈정책을 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무위원 자격으로 국무회의 심의·의결권을 갖게 된다. 독자적인 부령을 발령해 예산과 입법 등 보훈가족의 입장을 반영하는 권한과 기능이 강화된다.

보훈 전문가들은 “보훈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통합과 국가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높은 사회갈등을 기록하고 있다(12개 갈등 항목 중 7개 부문 1위). 보훈은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과 국가 신뢰,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2021년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보훈이 우리 사회를 통합시킨다’는 답변은 57.5%였다. 서울행정학회는 보훈 의식이 1% 증가하면 사회 갈등 요인이 1.59% 감소하고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2조 원 증가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박 장관, “일류보훈 실현 위해 노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 보훈은 외국과 달리 ‘독립·호국·민주’의 근현대사 흐름을 아우르며 22개 유엔참전국 대상 ‘보훈외교’까지 영역을 넓혔다”며 “일류보훈을 실현해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도 보훈 유가족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박 처장의 선친 고 박순유 중령은 주로 첩보부대(HID·현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했다. 1972년 6월 베트남전에 첩보부대장(공작대장)으로 참전해 1972년 6월 베트남 현지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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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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