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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추모회

최서면원장추모회, ‘최서면 상(賞)’ 제정키로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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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사진=오동룡

“최서면 원장님께서는 젊어선 학생운동에 투신하셨고, 이후엔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쏘트리더(thought leader‧선구자적 사상가)의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특히 최 원장님께서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열정으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도와 관련한 소재를 발굴하고 수집하셔서 그 자료를 근거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라는 책을 출간하셨고, 그 책은 한·일 양국 후세에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입니다.” 


공로명(孔魯明) 동아시아재단 명예이사장이 지난 5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클럽에서 열린 고(故)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 추모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날 최 원장 추모회에는 유명환·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아이보시 코이치 주한일본대사, 아베 다카야 전 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 권병현 전 주중대사, 장성원 전 민주당 의원, 홍인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혜정 혜정문화재단 이사장 등 지인과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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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3주기 추모회에서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고문이 최 원장의 약력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우 서울시 영등포구의회 의원

 

공로명, 조석래(효성그룹 명예회장), 김우식(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 정구종(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유명환, 박준우(전 청와대 정무수석), 신각수(전 외교부 차관), 심규선(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박철희(국립외교원장), 오코노기 마사오(게이오대 명예교수), 고하리 스스무(시즈오카현립대 교수), 하코타 테츠야(아사히신문 논설위원) 등 추모회 발기인 일동은 “방촌(方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께서 우리 곁을 떠나간 지 3년이 흘렀다”며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모임 금지 등의 제약으로 개최하지 못했던 최서면 원장 추모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인보다 한국을 더 모르는 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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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사진=오동룡

 

 최서면 원장은 2020년 5월 26일 경기 용인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최 원장은 9세 연상의 사촌형인 최규하 대통령의 집에서 살며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45년 연희전문(현 연세대)을 다니다 광복을 맞고 김구 선생의 노선을 따라 임시정부 출신이 만든 한국독립당 산하 대한학생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7년 장덕수 피살 사건에 연루돼 약 2년간 옥살이를 했다. 


옥중에서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석방 후 대동신문 기자, 천주교 총무원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과 장면 부통령의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1957년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는 1960년 일본 아세아대 교수가 됐고, 1969년 안중근 의사의 육필 전기인 《안응칠 력사》를 최초 입수한 것 등을 계기로 도쿄한국연구원을 설립했다. 기관지 《韓》을 발간해 한국 논문을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한편, 일본의 한국 관련 논문도 게재해 한일 간 학문적 교류의 초석을 놓았다. 


최 원장은 “일본인보다 한국을 더 모르는 게 부끄러웠다”며 신발이 닳도록 역사적 현장을 찾고 자료 속에 파묻혀 살았다. 최 원장은 한일관계사료 20만 점을 수집해 1988년 영구 귀국 하면서 국립외교원, 외교부, 연세대 등에 기증했다. 또한 일본 외무성의 한일관계자료 5만여 점을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관계사료 목록 1875~1945》(국사편찬위원회, 2003년)로 펴내 연구자들이 쉽게 활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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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대장상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를 만나 박경원 강원지사의 방일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최서면 원장. 사진=오동룡

 

그는 명성황후 시해 관련 자료, 독도 영유권을 입증하는 고지도, 광개토대왕 탁본 등을 찾아냈다. 2005년엔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록한 전공비)를 돌려받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안중근 전문가인 동시에 독도 연구 1인자였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보물로 지정된 「安危勞心焦思」 「爲國獻身軍人本分」)과 추사 김정희 선생의 화첩을 가져왔다.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지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수집을 통해 독도 영유권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첫 국민훈장이다. 


그는 한·일 외교가의 막후로 활약하기도 했다. 반일 시위가 거세던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의 방한을 이끌어냈다. 1988년 귀국 후 서울에 국제한국연구원을 설립해 기시 노부스케·오히라 마사요시·후쿠다 다케오 총리 등 일 정계 실력자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정·재계 인사들에게 다리를 놓았다. 그는 한·일 관계에서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소통을 강조하며 문제 해결을 중재했다. 가나야마 마사히데 전 주한 일본대사는 “사케테 토오레나이 미치(さけてとおれないみち·돌아서 갈 수 없는 길-최 원장을 통하지 않고는 한국과의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하곤 했다. 



‘오랄 히스토리’ 주도한 고하리 스스무 교수의 간행 경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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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가 《최서면에게 듣다》 ‘오랄 히스토리’ 간행경위를 보고하면서, 지난해 2월 일본에서 간행된 《최서면과 일한 정관재학 인맥(崔書勉と日韓の政官財学人脈)》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진=오동룡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심규선(沈揆先)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정구종(鄭求宗) 고문은 “오늘 소천 3주기를 맞는 최서면 원장님께서는 투병 중에도 한일관계 세미나와 연구모임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셔서 집념과 열정을 쏟는 연구자의 모습을 후학들에게 몸소 보여주셨다”며 “원장님의 떠나신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고 했다. 


최서면 원장의 공적은 일본에서도 주목했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등 한국 전문가 4명(사도 아키히로 주쿄대 교수, 무로오카 데쓰오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 다카야스 유이치 다이토분카대학 교수, 고하리 스스무 교수)은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2011년 4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오럴 히스토리’라는 형식으로 17회(70여 시간)에 걸쳐 최 원장을 인터뷰했다. 한국에서는 이 책을 2020년 4월 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한일관계 막후 60년: 최서면에게 듣다》(1·2권, 나남출판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해 최 원장의 지인과 연구자들에게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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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맨 왼쪽), 오동룡 월간조선 취재기획위원(맨 오른쪽)이 김혜정 이사장(가운데)과 기념 촬영했다. 사진=박현우 서울시 영등포구의회 의원

 

이날 고하리 스스무 교수는 ‘오럴 히스토리’ 간행 경위 보고에서 “최서면 선생이라는 한일 양국의 정·관·재·학 등에서 넓은 인맥을 쌓아온 인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9년경이었다”며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원되는 과학연구비로 오랄 히스토리를 진행하기로 하고, 2010년 최 선생님께 처음으로 요청을 드렸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의 ‘오랄 히스토리’엔 350명의 일본인, 250명의 한국인이 등장한다”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 등 세 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후쿠다 총리와의 관계는 각별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고하리 교수는 “최서면 선생님의 ‘오랄 히스토리’는 2018년 3월 발간됐고, 작년 2월엔 《최서면과 일한 정관재학 인맥―한국 지일파 지식인의 오랄 히스토리(崔書勉と日韓の政官財学人脈―韓国知日派知識人のオ―ラルヒストリ―)》(同時代社)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으로 나왔다”면서 “한일 관계사, 일본 정치사, 외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최서면 원장, ‘오랄 히스토리 한국어판’ 보고 눈 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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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랄 히스토리 한국어판’인 《한일관계 막후 60년: 최서면에게 듣다》 표지.
사진=최서면원장추모회

 

‘오랄 히스토리 한국어판’인 《한일관계 막후 60년: 최서면에게 듣다》를 출간한 심규선 전 국장은 간행 경위에서 “최서면 원장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한국 자료를 보고 한국을 너무 모르는 자신이 부끄러워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2018년 3월 고하리 교수가 전해준 560쪽의 방대한 보고서를 읽고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면서 “최서면 원장은 한국 정부가 돈을 대고, 한국인 학자가, 한국어로 인터뷰했어야 옳았고, 그런 부끄러움을 감추는 방법이 내게는 번역이었다”고 했다. 


심 전 국장은 “34년간 근무하던 신문사를 퇴직하고 국민대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다니면서 방학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했고, 관련 인물들과 사건·사고의 각주까지 붙이다 보니 총 2000시간이 걸렸다”며 “무엇보다 이 책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흥미진진한 뒷얘기가 많아 번역과정에서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이 나온 것은 2020년 4월 4일, 최 원장님의 생애 마지막 생신날이었다”며 “코로나로 인해 인편으로 책을 요양원으로 전달해 최 원장님께서 책을 보시고 다음달 돌아가셨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심규선 전 국장은 “최서면 원장님의 인터뷰는 많이 남아있지만, 그 완결판은 이 ‘오랄 히스토리’가 아닌가 싶다”며 “‘오랄 히스토리’ 한국어판의 원고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25%의 원고를 덜어내고 2권으로 출간했는데, 잘라낸 원고를 살려내 3권으로 재발간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심 전 국장은 “최서면 원장의 더 큰 업적은 학문하는 자세와 한일관계를 보는 태도”라며 “그분은 한일 간의 현안과 해법, 일본을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고 했다. 그는 “최 원장은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댔고, 비판이 두려워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줬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며 “이는 ‘사실(史實)에 대한 경외(敬畏)’ ‘상대에 대한 경의(敬義)’ ‘아프지만 따뜻한 경고(警告)’ ‘자만과 폭주에 대한 경계(警戒)’ 등 ‘4경’이 몸에 뱄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8년 귀국 이후 그가 대외적으로 사용한 직함은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유일하다. 유명 인사는 ‘업적’보다는 ‘감투’가 긴 것이 보통인데, 최 원장은 ‘감투’보다 ‘업적’이 긴 유일한 사람이다. 심규선 전 국장은 “그는 정계와 공직 진출, 금전적 유혹을 뿌리쳤다”며 “장면(張勉) 총리가 정권을 잡고 이런저런 자리를 약속했지만 귀국하지 않았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동경한국연구원의 운영비로 뒷돈을 주려고 하자 국회를 통과한 예산으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했다. 


심 전 국장은 “대학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님이 ‘만학의 길에 들어섰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학자금에 보태 쓰세요’라며 봉투 하나를 주셨는데, 그 봉투엔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며 “원장님의 학자금 겸 ‘선번역료’라는 격려 덕분에 번역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최서면 상’ 제정 경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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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이 ‘최서면상’ 제정 경위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박현우 서울시 영등포구의회 의원

 

이어 공로명 전 외무장관은 유명환 전 장관이 대독한 추모 강연에서 “동경 출장길에 주일대표부 외교부 선배들과 식사하면서 최서면 원장님을 처음 만났다”며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운 분으로 느꼈으나 말씀을 듣다 보니 마음이 통했고, 그렇게 60년을 함께 한 절친(bosom friend)이 됐다”고 했다. 이어 “최 원장님은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셨던 분”이라며 “최 원장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그분의 말씀이 그냥 들어넘기기엔 아까운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 최 원장님이 많이 그립다”고 했다. 


추모회에서 박철희(朴喆熙) 국립외교원장은 ‘최서면 상(賞)’ 제정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박 원장은 “고 방촌 최서면 원장님은 생애를 통해 한일관계 연구와 한일 관계에 관련한 각종 사료발굴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헌신한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같은 최 원장님의 학문적 탐구와 노력이 후학들에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유족 및 추모회 발기위원회가 뜻을 같이 했다”고 했다. 이어 “이 상은 한일 관계에 관한 학술 논문, 관련 사료의 발굴 및 한일 교류의 발전을 위한 기여를 한 분들을 대상으로 시상하게 될 것”이라며 “수상자 대상 범위, 기금 조성이나 운영에 대해선 앞으로 민간 차원에서 구성되는 운영위원회를 발족시켜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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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혜정 혜정문화재단 이사장,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고문,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 사진=오동룡

 

 유족 대표인 김혜정(金惠靜) 혜정문화재단 이사장은 “최서면 원장은 돌아가신 날(5월 26일)이 본인의 음력 생신(4월 4일)이었다”며 “아내인 내게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 그러셨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남편 최서면은 인격자였으며, 하루에 20~30권의 책을 읽는 지식인이자 석학자였다”며 “남편 이전에 저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쳐 주신 ‘큰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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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이사장이 경기도 파주 하늘묘원에서 남편 고 최서면 원장의 묘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박현우 서울시 영등포구의회 의원

 

한편, 추모회 참석자들은 유족 김혜정 여사와 함께 최서면 원장이 잠들어 있는 경기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 ‘하늘묘원’으로 떠났다. 성묘객들은 그곳에서 최 원장 묘에 참배하고 제2대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909∼1997년)의 묘를 둘러봤다.◎

입력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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