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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대망(大望)’ 읽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서경향과 수필세계

역사통찰과 시대정신 담긴 대하소설(大河小說)…출소 후 ‘정계복귀' 상징?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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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캡처

11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65)이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대하장편소설 《대망(大望)》을 열독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과거 독서경향과 작품세계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인 1990년대 수필가(隨筆家)로 활동했다.

재판이 열리지 않는 때, 박 전 대통령이 주로 읽고 있는 《대망(大望)》이라는 소설작품은 정치인은 물론 기업 경영자들의 필독서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전체적인 서사는 한미한 ‘다이묘’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전국시대와 에도시대를 제패한 군웅(群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가운데 당대의 패자(霸者)였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떻게 전국난세를 평정하고 통일의 위업을 이뤄냈는지도 다룬다.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엽에 걸친 당세(當世)의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가져온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26권을 완역한 책이다.

책은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걸(英傑)들이 천하를 손에 쥐기 위해 열혈 의지와 지략을 펼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특히 파란만장한 그 시대에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절치부심(切齒腐心)을 거치며 끝내 최후의 승자로 우뚝 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역전 성공 비결’이 녹아있어 현대인들의 입신과 처세의 교본으로도 읽힌다.  

이에 해당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통령이 《대망(大望)》 속 도쿠가와의 삶에 본인의 처지를 투영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풍운의 시대를 인내심으로 버텨내고 마침내 최종 승리를 거둔 도쿠가와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희망을 찾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대망(大望)》펴낸 출판사는 박정희 대통령 도서로 유명한 '동서문화사'

소설 《대망(大望)》의 원작을 번역한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대표는 13일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예전에 (박 전 대통령 측에 《대망(大望)》) 한 세트를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읽다가 집에 보관해둔 책을 다시 (구치소로) 넣어준 것 같다"고 답했다.

고 대표가 운영하는 동서문화사는 《대망(大望)》 뿐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박정희 경제강국 굴기 18년》,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서적들을 펴낸 출판사로 유명하다.

더해 소설 《청계천》으로 문예지  《자유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고 대표는 자신의 출판사인 동서문화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을 그려낸 대하전기소설 《불굴혼 박정희》 10권을 펴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정일 대표는 5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시민강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로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5·16혁명으로 우리 국민의 잠재된 민족역량이 깨어나고 기적을 만들어 나아가겠다는 소명을 갖게 됐다. 5·16혁명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대빈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가 ‘20세기 인류사의 기적’이라 격찬한 한국의 국가개혁과 경제개발은 5·16혁명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1956년에 인문·사회과학 서적 전문 출판사로 설립된 동서문화사는 총류·인문사회과학·예술·아동도서 등 3000여 종을 출판했다. 동인문학상(東人文學賞)을 제정해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하기도 했다.

《대망(大望)》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은 수감생활을 시작한 이래 국내작품인 고(故) 박경리 소설가의 《토지》, 고(故) 이병주 소설가의 《지리산》과 《산하》 같은 대하역사소설들을 읽고 있다고 한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년 집필하기 시작해 1994년 8월 총 5부 16권으로 완간된 필생의 역작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 가문의 몰락과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와 용정, 그리고 진주와 서울 등을 배경으로 삼아 시공간의 범위도 장대하다. 과거 우리 민족이 겪은 간난고초(艱難苦楚)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리산》과 《산하》 역시 이병주 선생의 대표작품으로 인간군상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대하소설들이다. 《지리산》은 일제 말기로부터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했고, 《산하》는 해방공간에서 자유당 정권을 거쳐 4·19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의 한국 현대사를 무대로 했다.


박경리, 이병주 선생의 대하역사소설 열독

이에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박 전 대통령의 독서 성향이 출소 후 정치 일선에 복귀하려는 계획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안목과 통찰, 동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의식 등이 대하소설작품의 보편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더해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최근 ‘1심 재판이 끝난 후 적당한 시기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을 주변에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정계 복귀 등 본인의 역할과 관련된 구상을 밝히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예측하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깃들은 역사소설 뿐 아니라 삼라만상의 심오한 이치를 담은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깊었다. 2007년 4월 당시 전(前)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수필 문예지《월간 에세이》5월호에 과거 힘겨웠던 시절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해준 삶의 등대가 중국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논저 《중국철학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내 삶의 등대가 되었던 동양철학과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22살의 나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몇 년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다"라면서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이후)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하고, 매일 일기를 쓰고,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던 때 만난 책이 《중국철학사》"라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깊은 방안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네거리를 다니듯 조심하고, 작은 뜻을 베풀더라도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조심하면 모든 허물을 면할 수 있다' 등의 글귀는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독서의 인연으로 임기 시절 박 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 칭와대에서 중국철학사의 저자 펑유란의 서예 작품을 선물받기도 했다. 2013년 중국 국빈 방문 당시 박 대통령은 칭와대 연설 전 펑유란의 외손녀로부터 서예 족자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 "《중국철학사》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던 때 만난 책"

해당 족자에는 당나라의 시 한 수가 쓰여 있었다. 특히 그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마음이 호수와 같다’라는 뜻이 담겨져 인간의 고결한 격조를 형용해 의미가 깊었다. 당시 펑유란의 외손녀는 “박 대통령이 외할아버지의 책을 보신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이 선물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수필문학을 집필한 등단문인이기도 했다. 1993년 《한국수필》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고, 2009년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에 가입해 정식회원이 됐다. 작품집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나의 어머니 육영수》《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등을 펴내며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인 고(故) 육영수 여사의 서거 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한국수필》2009년 7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학교 다닐 때 갑자기 어머니가 서거하면서 어머니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때 글을 참 많이 썼습니다. 정신운동을 한 것이지요. 일기도 쓰고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교지에다가 글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책으로 내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응집된 마음을 글로 풀어내면서 스스로 각오를 다지고 쌓였던 것들이 해소되니까 글이 통로가 되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이끌어나갈 때도 수필작품에 새긴 의지와 희망의 뜻을 잊지 않았다. 

2016년 5월 18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가 수필가이기도 한데 지금 많이 쓰지는 않지만 그때 제가 쓴 수필 제목 중에 하나가 '꽃구경을 가는 이유'라는 게 있다. 꽃구경을 가는 이유는 꽃이 잠시 피지, 영원히 피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 박 대통령은 "1년 열두 달 피어 있는 꽃이라면 꽃구경을 갈 필요가 없다"며 "규제혁신 노력도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어서 규제개혁은 두고두고 내년, 그 후년에도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더해 "(우리가) 특별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재나 제도적 노력이 미래성장동력이 될 텐데 이런 기회를 이 시간에 놓치면 우리는 (기회를) 영원히 잃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꽃은 내년 봄에도 볼 수 있지만 이것(신산업 시장선점)은 그런 것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밝혀 수필작품의 주제의식을 통해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수필문학 '꽃구경을 가는 이유'

앞서 2013년 문예지《현대문학》은 9월호에 박 전 대통령이 과거에 썼던 수필들을 소개했다. 그 중 하나가 위의 수필인 ‘꽃구경을 가는 이유’였다. 이하 해당 수필의 전문이다.

<꽃구경을 가는 이유>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일평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그의 방편인 셈이다. 

어쨌든, 어느 날엔가는 그 가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오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있겠지만,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지는 애처로운 사연도 듣고 보아 온 우리들이 무엇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넋두리 같은 쓸데없는 소리일까? 그러나 이같이 확실한 진리는 없다. 이 세상에 온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만 하며 그 때가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 분명한 진리가 인간의 마음에 큰 경종을 울리면서 과연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삶을 애기하기도 바쁜 세상에 지금 왜 죽음을 말하고 있는가. 꽃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피는 꽃을 반가워하며, 꽃구경하러 지방 나들이까지 가게 되는 이유는 그 꽃들이 이제 곧 지기 때문이다. 계속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라면 소중히 감상할 맛도,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종점은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가까이, 그러다가 문득 다가오는 것이기에.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함부로 빈둥빈둥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의 끝이 있음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 적어도 때때로 생각해 봄으로써 허무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지 않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분별력’이야말로 허무하지 않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며, 생의 종착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야말로 이 분별력을 일깨워 주고 그 깨달은 바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끝이 만일 나쁘다면 그 전에 좋았던 것이 다 소용없다는 얘기도 된다. 죽음을 맞는 순간은 살아온 일생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마감의 순간에 스스로 돌아보는 일평생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값어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완전 실패요 허무한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역사의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 이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예외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머물다 가는 나그네가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평화스럽고 행복하고 후회 없는 마음으로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마감할 수 있도록, 바로 그 심정으로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고 그리 되도록 걸어갈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값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10.13

조회 : 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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