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 곳곳에서 인도 정부의 조심스런 자신감이 느껴졌다. 지난 4월 11일 인도를 찾았다. 올해 G20(Group of 20) 의장국을 인도가 맡았다는 걸 알리는 광고판이 여기저기 보였다.

 인도는 경제 규모를 기준으로 지난해 영국을 넘어섰다. 작년 1분기 명목 GDP(국내총생산) 기준 8547억 달러(약 1214조 원)를 기록하며 영국(8160억 달러, 약 1087조 원)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올랐다.

인도 간디공항에서부터 보이는 G20 홍보 입간판. 인도가 의장국을 맡았다는 걸 알리고 있다. 저런 홍보 광고를 인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도는 G20 의장국 취임 구호로 ‘바수다이바 쿠툼바캄’(Vasudhaiva Kutumbakam)을 내걸었다. ‘세계는 한 가족(One Earth One Family)’이란 뜻이다. 인도의 영적 고전 마하 우파니샤드(Maha Upanishad)에 등장하는 어구다. 우파니샤드는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는 뜻이다. 스승에게 다가앉아 직접 전수받은 진리를 모아놓은 책을 뜻한다.

 인도는 물론 여러 나라에서 온 영적 스승들에게 다가앉을 수 있는 자리가 뉴델리에서 열렸다. 글로벌피스재단(GPF)이 개최한 '글로벌피스 리더십컨퍼런스 인도-태평양 (GPLC) 2023'. 4월 11일부터 4월 13일까지 열렸다.

글로벌피스 리더십컨퍼런스 인도-태평양 2023 참석자들은 

종교와 소속을 초월해 다양한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글로벌 피스 재단(GPF, Global Peace Foundation)은 2009년 창설된 비영리단체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세계 2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 아래 인류 한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비전을 중심으로 종교를 넘어선 협력과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엔공보국(DPI·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협력단체와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자문지위 단체다.

 이번 리더십 컨퍼런스는 GPF 인도지부가 처음으로 공식 개최한 행사다. 행사의 주제는 바로 ‘바수다이바 쿠툼바캄’.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한가족으로 보는 인도의 영적 사상이 현대의 과제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자리였다. 인도 곳곳에서 빈곤 퇴치와 청소년 교육, 정신문화 함양에 종사 중인 지도자들이 종교와 소속을 초월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 몽골, 케냐, 우간다 등의 나라에서 종교 지도자, 학자, 정부 관계자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뉴델리로 모였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글로벌피스 리더십컨퍼런스 인도-태평양 (GPLC) 2023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문현진 GPF 세계의장

 문현진 GPF 세계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인도가 맺은 두 번의 인연을 소개했다. 첫 번째 인연은 가락국 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결합이다. 한국 역사서에 기록된 최초의 국제결혼 사례이기도 하다. 허황옥은 인도에 존재했던 나라인 아요디아 출신으로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왔다고 알려져 있다.

"두 나라는 2천 년 전에 역사적 인연을 맺었습니다. 서기 1세기, 인도의 수리라트나 공주가 한국으로 와서 수로왕과 결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허황옥 왕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결혼 동맹은 양국의 고대 문명을 엮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연은 3.1 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파리 평화 회의가 열리던 1919년, 한국에서 일어난 삼일 독립운동은 보편적인 정신적 진리에 기초한 대규모 비폭력 시위였습니다. 한반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2개월 동안 시위를 했습니다. 그 때까지의 비폭력 저항 운동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인도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인 1920년 간디는 ‘사티아그라하’라는 철학을 정립했습니다. ‘진리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인도 비폭력운동의 기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3.1운동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출처:위키피디아)

 두 나라의 인연은 문학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1929년 일본 방문길에 조선 유학생들을 만났다.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지며 조선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건넸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

신문에 실려 널리 보도된 타고르의 메시지는 그 후로 오랫동안 조선인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

 문 의장은 조선(한국)과 인도의 독립 운동이 두 나라가 각각 고대부터 간직해온 영적 전통에 기반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바로 ‘홍익인간’과 ‘바수다이바 쿠툼바캄’이다.

“두 나라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식민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초 한국과 인도의 독립 운동의 주요 동력은 각자 고대의 영적 전통이었습니다. 한국에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이, 인도에는 ‘세상은 한 가족’이라는 바수다이바 쿠툼바캄 정신이 있었습니다. 양국 국민은 외국 지배로부터 벗어나길 당연히 원했지만, 독립 후에도 이웃 나라는 물론 압제국과도 평화와 화합 속에 공존한다는 더 큰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도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라고도 덧분였다.

“저는 20세기에 자유, 평등, 인권 분야의 가장 중요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한국과 인도 두나라가 공동 운명체라고 믿습니다. 세계가 전쟁과 혼돈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고유한 정신적 유산과 비폭력적 역사 덕분에 우리는 인도 태평양 지역, 남아시아의 심장과 동쪽으로는 환태평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세계에서 평화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문현진 GPF 세계 의장

 문 의장은 ‘코리안 드림’을 제시했다. ‘아메리칸드림’이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미국의 이상’이라면 코리안 드림은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정신을 근간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나라’라는 비전이다. 현실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을 추구한다. 2011년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2012년엔 코리안 드림의 일환으로 통일연대단체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이 창설됐다. 

 문 의장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코리안 드림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는 2025년에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지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통일 염원 행사를 열 것입니다. 만약 한반도의 수천만 한국인과 해외 동포, 그리고 전 세계 지지자들이 한데 모여 한반도 평화 통일을 한 목소리로 외치면 어떻게 될까요? 분열된 반도를 가로막는 이념적, 물리적 장벽이 무너지며, 대한민국과 인도태평양 지역, 세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저는 이 자리에 모인 정신적, 사상적 지도자 여러분들이 그런 순간을 기대하며 코리안 드림을 지원해주실 것을 바라고 또 믿습니다.”

 각 분야별로 전문가 컨퍼런스가 진행됐다. 4가지 세션이었다. 청년역량강화(Youth Empowerment Track), 가치기반 평화구축(Values-based Peacebuilding Track), 미래를 위한 교육변혁(Transforming Education Track), 환경보전 (Environment Conservation Track)이다. 각 분야별 현안과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청년 역량 강화 세션에서는 인도에 기반을 둔 비정부기구인 유브사타(Yuvsatta, 평화를 위한 청년)의 설립자인 프라모드 샤르마(Pramod Sharma), GPF의 프로그램 개발 코디네이터 샬린 토모베(Sharleen Tomobe) 등이 강단에 올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인도 전역에서 온 학생들도 참석했다.

청년 역량 강화 트랙에 참석한 학생들

 가치기반 평화구축 트랙에서는 초종교적 노력이 강조됐다.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특정 종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경전뿐 아니라 추종자들의 행동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평등, 수용, 용서, 다원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치기반 평화구축 트랙에는 신진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여해 한국에서의 평화 노력을 소개했다. 

교육변혁 트랙에서는 교육의 미래 변화상이 제시됐다.

‘학생들을 지원하고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대학이 이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미래는 불확실할 수도 있다. 학생들의 새로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아다. 이 때 명심할 것은 정답은 없고 올바른 질문만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 보존 트랙에서는 클린 인디아 미션이 소개됐다. 갠지스 강을 정화하고, 청결과 개인 위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인도 정부 주도의 계획이다.

마칸데이 라이 GPF 인도 회장

 컨퍼런스를 지켜보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인도 및 각국에서 온 참석자들이 한국의 홍익인간 정신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GPF 인도의 회장이자 유엔-해비타트 수석 고문인 마칸데이 라이(Markandey Rai)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허황후와 수로왕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는 양국이 특별한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GPF의 비전은 인도의 ‘바수다이바 쿠툼바캄’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는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GPF의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GPF 뉴델리 컨퍼런스에서 인도와 한국의 세 번째 영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글=하주희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