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 인터뷰를 하고, 17일에 보도된 본지의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인터뷰 기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인터뷰 당시 기자는 태 최고위원에게 “최고위원이 된다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과거 그의 발언을 되짚었다. 이에 태 최고위원은 ‘역사 왜곡’ 또는 ‘단편적인 역사 기술ㆍ해석’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구정 때 KBS의 〈역사저널 그날〉이란 프로그램에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金九) 선생은 마지막까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암살됐다는 식으로 역사를 다루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걸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겁니다.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 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한 겁니다. 그런 북한의 전략까지 알려줘야 정확한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이 발언 중 김구 관련 대목과 관련해서 《프레시안》이란 인터넷 매체가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를 18일 오후 4시경에 보도했다. 이어서 《경향신문》이 오후 6시쯤, 〈태영호 백범 김구, 김일성 통일전선 전략에 이용당한 것”〉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그러면서 “이제 아웃이다. 윤리위 징계 전에 최고위원 사퇴부터 해야할 상황”이라고 국민의힘 측 ‘당 핵심 관계자’란 사람의 말을 인용했다. 또 이에 대해 ‘당 지도부의 격앙된 반응’이라고 표현했다. 

《경향신문》은 또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지난 전당대회 기간에 내세웠던 ‘천아용인’ 중 ‘아’에 해당하는 허은아 의원이 남긴 “당 지도부는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냐.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이 국민의힘을 버릴까 두렵다”는 글도 덧붙였다. 한 마디로 태영호 최고위원이 사실과 달리 민족지도자, 독립운동가를 모욕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소개한 것이다. 이후 이와 관련해서 각종 매체가 하루 사이에 보도한 50여건에 달하는 기사들의 요지는 “태영호가 망언을 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태영호 최고위원의 발언을 보면, 그는 김구를 모욕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도 분명하다. ‘독립운동가 백범’의 ‘불굴의 정신’ ‘민족 독립에 대한 열정’을 헐뜯은 일도 없다. 다만, 해방 정국에서 ‘정치인 김구’가 ‘민족’ ‘통일’이란 ‘선의’에 따라 행한 일이 결국 소련의 괴뢰였던 ‘북한 정권’에 일종의 정당성 또는 명분을 주는 빌미가 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해당 인터뷰에서 태영호 최고위원이 얘기한 김구의 행적은 1948년 4월 당시 이른바 ‘전 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 참여를 말한다. 소위 ‘남북협상’이다. 이 당시 김구와 김규식은 ‘민족 분단’을 막기 위해 이른바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월북해 해당 행사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그들의 ‘선의’ ‘대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이라고 외쳤던 김구의 ‘진의’를 의심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해당 행사 전후의 역사적 상황과 이후 해당 행사에 김구 등이 참여한 일이 북한 정권에 의해 어떻게 악용됐는지는 면밀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김구가 ‘남북한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외칠 당시 북한에는 ‘행정부’격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조직돼 온갖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입법부’ 노릇을 하는 ‘북조선인민회의’도 구성돼 소위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1948년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이 창설됐다. 소련은 애초부터 북한을 위성국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고, 그 ‘괴뢰’인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철저하게 그에 복종하며 ‘민족분단’을 획책했다. 

김구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이라고 했을 당시에 이미 북한 ‘정부 수립’만 공식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당시 국제 정세, 소련과 그 ‘괴뢰’인 북한의 속셈이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에서 김구는 국제연합 감시ㆍ관리하에 진행되는 ‘5ㆍ10 총선거’에 반대하고, 북한으로 건너가 김일성, 김두봉 등과 함께 “남조선 단독선거의 결과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는 ‘한민족 독립운동사’에서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성실성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김구나 김규식과 같은 잘 알려진 남한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노선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려고 하였다”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란 태영호 최고위원의 비판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과 그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남북협상’과 관련한 국사편찬위원회의 기술 내용이다. 태영호 최고위원이 김구를 모욕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남북협상의 시작과 좌절

이처럼 한반도 전체에 걸친 통일적 독립국가의 실현이 국내외적으로 비관시(悲觀視)되는 국면에서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은 남북협상을 시도했다. 김구와 김규식은 남한에서 단독선거 실시가 분명해지자 이의 돌파구로서 남북협상을 제기하고 나섰다. 

(중략)

김구와 김규식의 공동서한이 발송된 지 40여 일이 지난 뒤에야 북한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북로당과 조민당 및 천도교청우당(天道 敎靑友黨) 등 6개 정당·사회단체가 3월 25일 평양방송을 통해 남북 협상을 지지하는 남한의 17개 정당·사회단체에게 남북연석회의를 4월 14일 평양에서 갖자는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평양방송에 이어 3월 27일 밀사를 통해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김일성 회답이 김구와 김규식에게 도착하였다.

(중략)

북한이 제의한 연석회의는 김구와 김규식이 처음에 제의한 요인회담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에 김구와 김규식은 당황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군정과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 및 독촉, 그리고 한민당 등의 반대와 같은 주변의 여건도 그들에게 고무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와 김규식은 평양행을 결심하였다.

(중략)

김구와 김규식은 4월 19일과 20일 각각 서울을 떠났다. 이들은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가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자 이의를 제기하고 북한과 요인회담을 제의하였다. 그래서 4월 27일 남북 인사 15인 회담이 열렸고, 4월 26일 밤 김두봉의 집에서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의 4자 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구와 김규식은 4자 회담에서 무엇인가 구체적인 통일방안이 논의되기를 희망하였지만, 김일성과 김두봉은 연석회의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었고 4자회담을 연석회의가 끝난 뒤에 피로연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5월 1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여기에 남북한의 56개 정당·사회단체가 서명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즉시 동시에 철수할 것. 둘째, 외국군대가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내전은 발생하지 않으며, 어떠한 무질서의 발생도 용허하지 않을 것. 셋째, 외국 군대가 철수한 이후 전조선 정치회담을 소집하여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즉시 수립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조선의 입법기관을 구성하며, 헌 법을 제정하여 통일된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 넷째, 남조선의 단독선거의 결과를 승인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평양에서 돌아온 김구와 김규식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중략) 북한의 지도자들이 단정을 절대로 수립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언했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송전문제의 해결과 연백 등 저수지 개방문제의 해결을 아울러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북행이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보듯이 남북공동성명은 한낱 휴지가 되어버리며 남한과 북한에는 각각 단독정부가 들어선다. 그러면 이러한 남북협상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 시점에서 한반도 문제는 이미 기본적으로 국제문제로 아주 굳어져 버렸고 미소냉전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미소의 직접적인 합의없이는 해결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인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둘째,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성실성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김구나 김규식과 같은 잘 알려진 남한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노선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셋째, 북한쪽의 김일성과 김두봉은 북한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김구와 김규식은 실권(失權) 상태에 있었으며 세력을 장악한 쪽의 반대에 부딪혀 있었다. 그들이 의지한 것은 대의명분밖에 없었다.

총괄해서 말하면, 남북협상은 남북한에서 각각 정권이 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각도에서 확실히 실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는 결코 낮게 평가될 수 없다. 그것은 조국의 분단이 아주 굳어지려는 비참한 국면을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보겠다는 숭고한 자기희생적 정열의 소산이었으며, 그 이후 자주적 민족통일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원천이었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