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⑤] 나의 시는 나를 가리는 소쿠리였다 : 월간조선

이문길의 신간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브로콜숲 간), 작년 9월에 나온 《눈물 많은 동화》(브로콜숲 간)를 다시 펴들었다. 《월간조선》 뉴스룸에 소개한 적이 있지만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고 싶었다.

이문길 시인은 1939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1959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수료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1981년 시집 《허생의 살구나무》가 첫 시집이었다. 1983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시와 수필 등 모두 16권의 시집을 펴냈다.

경험과 삶의 깊은 관조에서 우러나오는 시를 주로 써왔다. 중앙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시를 쓰고 시집을 내며 시인의 외로운 길을 걸었다. 최근 펴낸 《석남사 스토리》에 나오는 산문 <산대미>를 소개한다. <산대미>에 이문길 시론(詩論)과 시작법(詩作法)의 비밀이 담겨 있다.

또 《눈물 많은 동화》에 담긴 시 ‘우리집 뒤안’, ‘아버지’, ‘아쩌씨’, ‘돼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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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미>

‘산대미로 앞을 가린다’는 말이 생각나 웃었다. 지금은 없는 아내가 한 말이다. 산대미는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소쿠리 같은 것인데 그것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살았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시는 나를 가리는 소쿠리였다. 참으로 한심하게 산 것이다.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생각해 보니 나의 출생이 예수와 비슷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예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못 받았고 나는 나를 낳은 엄마의 사랑은 못 받았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받고 자랐다. 철이 들자 나는 가족 속에 외로웠고 친척들 속에서도 외로웠다. 나는 예수 엄마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 혼자 예수를 낳아 기르며 둘이 살지 않고 왜 시집을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예수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잘 안다. 나는 예수 엄마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죽자 더욱 외로웠다. 예수는 목수 일을 배우며 살았으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나도 모르게 집안의 종손이 되어 어릴 적부터 일 년에 열두 번도 넘는 제사를 지내며 살았다. 예수가 외롭게 산 것같이 나는 제사를 지내며 외로웠고 제사를 지내려고 집안사람들이 왔을 때 더욱 외로웠다. 예수는 끝내 피를 흘리며 죽었으나 나는 죽지 않고 할 일없이 살았다.

내가 시를 쓴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여름방학 숙제로 낸 시가 우수작으로 당선된 후 시모집이 있을 때마다 국어 선생님 때문에 자꾸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쓰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6권의 시집을 냈다. 4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었으니 64년이란 세월이 나도 모르게 흘러간 것이다. 나는 좋은 시를 썼을 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 권의 시집 속에 한두 편 좋은 시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한 권의 시집 속에 한 편의 좋은 시도 없었다. 평생 천 편의 시를 썼으나 한 편의 좋은 시, 시 같은 시가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미국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다. 그의 시중 눈 내리는 밤 시골에서 말수레를 타고 가며 쓴 ‘나는 잠자기 전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 나는 잠자기 전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는 그 시구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중국 시 중에는 이태백의 시는 없고 두보의 시는 한 편 있다. 바람 불어 풋것이 어지러이 날고 떼지붕이 강 건너 날아갔다는 시인데 나는 그 시가 참으로 좋았다. 그가 늙고 병들어 장강 황학루에서 쓴 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 시가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외국 시 중에 한솔 선생님이 번역 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태리 시인 샹종펠스의 시를 보고 너무 놀랐다. ‘송가’라는 시였는데 시를 그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나도 그런 새로운 시를 써 보려고 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그의 시는 우리나라 이상 시인의 시 보다 난해했으나 읽을수록 황홀하고 아득한 것이었다. 그때 내 주변에 문우들이 있었으나 그 시가 좋은 줄 아는 사람은 한솔 선생님과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한솔 선생님이 좋았다. 내가 문학의 밤 같은 데 초청을 하면 꼭 오셨다. 나는 신문에 좋은 시라고 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시 대신 그림이나 음악에서 영감을 받고 시를 썼다. 나는 시보다 종교에서 시 쓰는 법을 배웠다. 왜 시를 써야하는 지도 알았다.

나의 핸드폰에는 ‘뜸뿌기’ 같은 동요도 있고 장미화가 부른 ‘허공을 날자 마음껏 날자 늦은 저녁이면 어떠냐’ 하는 노래도 있고 베토벤의 ‘운명’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삼분의 일이 찬송가다. 나는 베토벤이 두드린 그 허공 적막을 함께 두드렸고 끝내 운명에 순종하고 타협하는 그의 노래에 숨죽여 울었지만 하늘을 향해 부르는 찬송가에도 귀를 기울였다. 나는 우리나라 국악에서도 ‘운명’같은 훌륭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한이 맺힌 우리의 노래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런 노래시가 쓰고 싶었다. 나는 평생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산문과 운문이 같은 시, 그런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