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60권의 저서들이 왜 작가와 똑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일까 : 월간조선

호기심에 책을 샀다.

‘전 지구적 시인의 삶과 철학과 시’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책 제목은 ‘대화’라고 적혀 있었다. 이 ‘전 지구적 시인’과 대화한 이는 이란계 캐나디언이며 프랑스 대학 출신 정치철학자라고 했다.

이름도 생소하지만 그가 한국의 노(老)시인의 시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시인이 정말 ‘전 지구적 시인’이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이란계 캐나디언이며 프랑스 대학 출신 정치철학자’야말로 전 지구적 인간이 아닐까.

대담자는 노시인을 만난 것이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축복’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행복을 빎 또는 그런 행복’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득 노시인이 행복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고요하고 맑은 품성에 매혹되었다. 영어를 말하지는 못해도 그의 몸짓 자체가 천 배의 말이었다.>(p13)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중략) 읽고 대화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의 시는 한국어로 썼지만 인류의 것이라는 것이었다.>(p14)

<어마어마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시인이다. 지금까지 160권의 저서를 생산했으며 곧 더 많은 책이 나올 것이다. 그는 흥미로운 삶을 살아온 예외적인 시인이다.>(p15)

<“시인이란 무엇인가?”라고 덴마크의 위대한 철학가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묻는다. 그리고 “심장에 깊은 고뇌를 감추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답한다.>(p16)

<지난 30년 동안 (중략) 작품은 동서양의 약 35개국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시는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널리 유명해졌다.>(p17)

<“궁극적으로 나는 시 없는 시, 시 없는 시인이 되고 싶고, 시인 없는 시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언어 이전이나 이후의 시에 속하고 싶습니다.”>(p18)

<시인들은 어제나(언제나?) 용감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었고 (중략) 분명 블라디미르 마야꼽스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르네 샤르, 그 밖의 많은 시인들 옆에 자리한다.>(p19)

블라디미르 마야꼽스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르네 샤르 같은 이들의 ‘위대한 시’를 챙겨 읽지 못했지만 이들과 한국의 노시인이 동격이라는 주장에 놀라움을 느꼈다. 이 놀라움은 아주 복잡 미묘한 것이어서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책을 넘기다 이 문장을 곱씹어 읽어 보았다. 노시인의 말이다.

“전생과 내생은 그것을 꿈꾸는 자의 마음속에는 리얼리즘으로 살아있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직계(直系)이고 내일의 직계입니다. 인간의 시간 측정에서 오후 1시가 오전 12시와 오후 2시 사이의 그것이라면 현생의 고아(孤兒)는 전생의 적자(嫡子)이고 내생의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