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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골목길 혹은 학교 앞 문방구, 소매 문구점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골목 앞 점포가 소리 없이 문을 닫는가 싶었는데, 전국에 있는 문방구가 한 해 500개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문방구의 추억이 떠오른다. (문구점보다 문방구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색종이와 마분지를 사거나 연필, 공책, 지우개를 샀다.
소다와 설탕을 개서 불에 녹여 만들던 ‘뽑기 과자’, 쫀득이, 쫄쫄이, 쥐포, 그리고 여름이면 불량 아이스크림, 붉은 색소로 만든 팥빙수, 겨울이면 뜨거운 호빵을 사 먹었다. 변질되거나 부패하기 쉬워 배앓이를 할 망정 입에 넣는 그 순간만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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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딱지는 물론이고 잠자리채, 피리, 돋보기, 프로야구 스티커, 비옷, 그리고 방학숙제로 곤충채집이나 광물채집을 해야 할 때 문방구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물건들이 죄다 조악해도 아이들에게 문방구는 백화점과 다를 게 없었다.
책받침을 샀던 기억도 난다. 공책의 종이가 얇고 질이 나빠서 반드시 책받침을 넣고 필기를 해야했다. 필통, 스케치북, 크레파스, 물감, 만년필, 팬촉, 잉크도 문방구에 가면 종류대로 고를 수 있었다. 하이틴 스타의 스티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우개. 사진=조선DB
스케치북의 겉장에는 당대 아이들의 동심을 홀리던 주인공이 그려져 있었다. 마징가Z나 로보트태권V, 캔디, 은하철도999 같은 그림이 있었던 것 같다.
리코더 같은 악기는 친구에게 빌릴 수가 없어서 사야했는데, 돌이켜보면 캐스트네츠, 트라이앵글, 탬버린, 멜로디언도 샀던 것 같다. 그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책상 서랍을 가득 채웠던 녀석들이었는데...
음악시간에 멜로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조선DB
개학 준비도 따로 할 게 없었다. 문방구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또 스승의 날에 샀던 카네이션, 크리스마스 카드도 그곳에 가면 살 수 있었다.
아 참! 문방구 앞에서 팔던, 종이 상자에 담겨 삐악거리던 노란 병아리도 떠오른다. (기자가 샀던 노란 병아리는 쥐들의 공격으로 그만….)
‘날아라 병아리’가 담긴 넥스트 2집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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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넥스트의 신해철이 부른 <날아라 병아리>(1994)도 생각난다. 노랫말은 이랬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 두 손 위에서 노랠 부르며
작은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진 못했지
아느 밤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갯짓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 있었네
(이하 생략)
과학교재로 전지와 전구가 들어있는 상자를 구입했는데 막상 학교에서 실험을 하려는데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울상인 적도 많았다. 물론 문방구 사장님은 무심하게도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지 않았지만 더러 마음씨 착한 아저씨는 바꿔 주거나 고쳐 주었다.
문방구집 친구가 몹시 부러웠다. 분식집 친구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다. “세탁소도 있고 문방구도 있는데 하필 왕대폿집을 하는 우리집을 원망하던”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범생이던 친구는 어릴 때 꿈이 문방구집 주인이었다. 왜냐고?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그곳에 다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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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집계가 2019년 이후엔 따로 없지만 현재 전국 문구점 혹은 문구소매점 수가 8000~8500곳(2022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전인 2012년엔 전국 문구점 수가 1만4731곳이었다. 2017년 1만620곳이더니 2018년과 19년 들어 각각 9826곳, 9468곳으로 줄어들었다. 한국문구유통업 조합에 따르면, 해마다 500개 소매 문구점이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19로 등교하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서 문방구의 쇠락(衰落)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고 한다. 왠지 섭섭하고 아쉽고 허전하게 느껴진다.
작년 연말, 국회에서 <사라지는 문구점,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최경춘 전 연암대 교수를 비롯해 박순홍(중소벤처기업부 과장), 양영식(서울특별시교튝청 과장), 추문갑(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 장낙전(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 방기홍(한국중소상공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 등이 나와 진지하게 토론을 했다.
문방구가 사라지는 이유로 ▲대표적 대기업인 다이소의 골목상권 확장 ▲일선 학교에서 교육청 지원을 받아 학습준비물을 최저가 입찰을 통해 일괄 구매하고, ▲대형 e-커머스(쿠팡 등) 문구류 최저가 판매 등을 꼽고 있다.
문구점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눈 뜨고 코도 베어간다’는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막을 순 없어도 곰곰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사랑했던 문구용품들이 사라지게 된다. 추억도 사라지고, 획일화된 문구용품으로 아이들의 창의성도 소멸될지 모른다.
대형 매장의 독과점, 혹은 가격 횡포에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국내 문구제조사의 붕괴로 선택 폭이 좁아져 OEM으로 생산된 중국산 저가 학용품을 고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의 말이다.
“그동안 문구소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작게나마 보호받아 왔는데 이마저도 만료되어 문구소매업의 최소한 보호 장치마저 사라졌다. 상황이 이러자, 문구업계는 문구소매업의 생존을 위해 정부에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민주당 윤영덕 의원도 같은 주장을 편다.
“통계청 자료는 존폐 위기에 놓인 업계의 심각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국 8000여 개의 문구점의 생존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구 업계가 처한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깊고 넓게 살펴봐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