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에서 분명히 라이벌이 존재한다. 서울의 한 하늘을 두고 LG와 두산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영호남의 두 도시를 연고로 하는 기아와 삼성이,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롯데와 NC가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잠실 시리즈

잠실구장을 같이 쓰는 LG와 두산은 전통적인 잠실 라이벌이다. 신바람 야구와 미라클 두산을 모토로 40년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어린이날 더비(리이벌 매치)가 하이라이트다. 승패 결과에 따라 잠실구장을 찾는 어린이 팬들이 ‘두린이’ 또는 ‘엘린이’로 자라기 때문이다.

올해는 두산이 이겼지만 2021년과 2020년에는 LG가 이겼고, 역대 총 26번의 어린이날 더비에선 두산이 LG보다 4번을 더 이겼다.

다만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LG팬들은 라이벌로 두산을 꼽지만, 두산팬들은 LG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대신 한국시리즈에서 자주 붙었던 SK(지금은 SSG)나 삼성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 있다.

삼성 왕조 시절인 2010년대에 두산과 삼성 간의 대결을 ‘싸대기 매치’라고 불렀다. 타격전이 하도 요란해서 붙여진 조어(造語)였다.

사진=조선DB, 스포츠조선

낙동강 시리즈

부산과 경남 창원을 연고지로 둔 롯데와 NC간 대결을 낙동강 시리즈라고 부른다.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팀이고 NC는 2013년 창단했다.

마산구장(현 NC 파크)을 제2의 홈구장처럼 쓰던 롯데는 마산, 창원, 진해 등 경남 야구팬 지지를 한 몸에 받았지만, NC의 창단으로 창원에 홈구장이 생긴 뒤로는 경남 팬들에게 심적 변화가 일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롯데를 지지했지만 NC가 서서히 강팀으로 변모하고, 급기야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자 더는 롯데만을 오매불망 응원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롯데는 줄곧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된 낙동강 시리즈에서 NC가 91승 65패 4무로 롯데를 앞서고 있다. 팬들 입장에야 이기는 팀에 눈길이 먼저갈 수밖에 없다. 역대 시즌으로 볼 때도 롯데가 우위를 차지한 시즌은 2013년, 2017년, 2018년 등 3시즌밖에 없다. 동률이던 2021년과 2022년을 제외하고 NC가 5시즌(2014, 2015, 2016, 2019, 2020년)에서 우위를 지켰다.

부산 경남을 대표하는 두 구단의 낙동강 더비는 상당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이 지역의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조선DB, 스포츠조선

88고속도로 시리즈

기아의 전신인 해태와 삼성은 동서(東西) 간 88고속도로로 이어져 ‘88시리즈’라고 부른다. 사자와 호랑이,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사파리 시리즈라고도 한다.

영호남 맞수인 두 구단은 1980~90년대 늘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물론 페넌트레이스 전적에서는 삼성이 384승(해태가 341승)로 우위에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해태 왕조시절(1980~90년대)에는 해태 우위, 삼성 왕조시절(2000년 이후)에는 삼성이 우위다. 정확하게는 삼성은 해태가 아닌 기아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삼성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의 한을 풀기까지 번번이 해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포스트시즌 전적으로 보면 1986년과 1987년,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 해태가 삼성을 꺾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꺾었다.

영호남 지역감정이 드셌던 시절, 선수들은 팬심을 등에 업고 죽기 살기로 싸웠다. 만약 패하면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장으로 욕설이 난무하고 오물을 투척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상대구단 버스에 방화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장외전이 더 치열했다. 지금은 과거의 격한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해태의 감독인 김응용이 삼성 감독과 사장을 지냈고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삼성 감독으로 와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해태에서 뛰던 임창용, 이순철, 이강철 선수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적이 있다. 삼성 양준혁이 잠깐 동안이나마 해태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1993년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기아(해태)가 맞붙은 적이 없다. 만약 2023년, 30년 만에 대결한다면 ‘88시리즈’는 엄청난 흥행을 가져오지 않을까.

재계 라이벌 시리즈

소위 마트 라이벌 끼리의 대전(對戰)인 롯데와 SSG간 ‘항구 시리즈’도 볼만하다. 롯데는 트롯트 ‘부산갈매기’, SSG는 ‘연안부두’를 목청껏 부르며 응원한다.

삼성과 롯데간 ‘클래식 시리즈’도 관심사다. 올드 유니폼을 입고 대결하는데 많은 볼거리와 흥행을 가져오는 매치로 손꼽힌다. 영남을 대표하는 두 도시 연고 구단의 대결이라는 점이 관심사지만 “너 죽고 나 살자”식(式) 자존심 대결은 없다.

과거 삼성과 현대 유니콘스와의 재계 라이벌전이 뜨거웠었다.

삼미-청보-태평양 시절에는 삼성과 라이벌 의식이 없었지만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면서 뜨거워졌다.

1980~90년대 재계 서열 1, 2위인 삼성과 현대는 야구장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현대는 인수 첫해인 1996년 선수들에게 삼성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당일에 보너스를 현금으로 모든 선수들에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걸었고 당연히 이를 알게 된 삼성도 맞불 작전을 놓게 되었다.

삼성과 현대의 대결은 현대의 우위로 끝이 났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현대가 앞선다. 2000년 플레이오프,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접전 끝에 삼성을 물리쳤다. 9차전까지 간 2004년 한국시리즈를 잊을 수 없다.

4차전 때 달성한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9차전 폭우 속 조용준의 역투(7경기 12⅓이닝 2실점 비자책 3세이브 평균자책점 0)는 한국시리즈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통신사 라이벌인 SK와 LG, KT 간 대결도 뜨겁다. 물론 야구보다는 프로농구, e스포츠에서 치열하다.

예컨대 프로농구(KBL)에서 서울 SK 나이츠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는 라이벌 전으로 팬들의 반응이 뜨겁다. e스포츠에서도 SKT T1과 KT 롤스터가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10년 넘게 격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