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는 전력보강을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신인수급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 서로에게 필요한 선수를 데려다 쓰기 위해 전격 성사되었다. 그러나 트레이드를 미운털 뽑아내기로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고육책이라고 해도 저의가 나쁜 구단, 나쁜 프런트가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1988년 11월과 12월 롯데 최동원과 김용철 대(對) 삼성 김시진과 장효조의 트레이드를 기억한다. 삼성과 롯데의 레전드를 왜 ‘맞교환’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구단의 분위기 쇄신과 팀 컬러 변모를 외쳤지만,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연거푸 해태에 패한 뒤 ‘승부집착력 강화’를 위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내면은 그해(1988년) 프로야구 선수협(선수회) 파동이 컸다. 선수들이 일종의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구단이 화들짝 놀라 선수를 내친 것이었다.

조선일보 1988년 11월 24일자 11면 기사 <최동원 김시진 유니폼 맞바꿔 입었다>

다음은 조선일보 1988년 11월 24일자 11면 기사 <최동원 김시진 유니폼 맞바꿔 입었다>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23일 김시진 전용권(이상 투수) 오대석(유격수) 허규옥(외야수) 등 삼성소속 3명과 최동원 오명록(이상 투수) 김성현(포수) 등 롯데 3명을 맞트레이드하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조선일보 1988년 12월 22일자 11면 기사 <장효조-김용철 맞바꿨다>

그리고 한 달 뒤 삼성과 롯데는 또다른 트레이드를 터뜨렸다. 다음은 조선일보 1988년 12월 22일자 11면 기사 <장효조-김용철 맞바꿨다>다.

<삼성은 간판타자인 장효조와 장태수 투수를 롯데의 강타자 김용철, 이문한 투수와 맞트레이드하기로 21일 합의했다.

삼성과 롯데는 지난달 23일 김시진 등 4명과 최동원 등 3명을 맞바꾼데 이어 이날 간판선수를 트레이드함으로써 프로야구계에 다시 한번 충격을 던져 주었다.>

1988년 11월 롯데 최동원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자 얼마 후 삼성 장효조가 롯데로 갔다. 딱 한 달간 대구의 한 하늘에 머물렀다. 당대 최고의 투타(投打) 스타가 서로 유니폼을 맞바꾼 것은 운명치고 얄궂다.

은퇴 이후 두 전설 모두 선수 시절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지도자 장효조가 삼성 2군 감독과 코치를 맡은 기간은 짧다. 최동원은 지방선거 출마, 의류 사업,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다 뒤늦게 한화 투수코치와 2군 감독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전성기 시절, 두 전설은 너무 화려했다. 그러나 은퇴 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장효조와 김용철. 사진=스포츠조선, 조선DB,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장효조와 삼성 김용철

장효조. 보내고 싶은 쪽으로 타구를 날려 보내는 ‘부챗살 타법’을 구사할 만큼 정교한 타격이 자랑이었다. 1983년 프로에 들어와 1992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4차례 타격왕에 올랐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기록한 3년 연속 타격왕은 오직 장효조만이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이다. 물론 양신(梁神) 양준혁(삼성)도 4차례 타격왕에 올랐지만 띄엄띄엄(1993, 96, 98, 01년) 차지했다. 혹자는 “3년 연속으로 타격 1위의 고감도 타율을 유지하는 것은 현미경 야구인 현대 야구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타깝게도 장효조(당시 33살)는 롯데로 트레이드된 첫해(1989년) 0.303이었지만 1990년 0.275로 무너졌다. 절치부심 이듬해 0.347로 타격 2위(1위는 빙그레 이정훈 0.348)로 반등했으나 1992년 0.265로 다시 2할대로 떨어졌다. 그러고 그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김용철. 삼성으로 옮긴 그(당시 32살)는 1989년 0.304타율에다 11홈런, 342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815로 준수한 활약을 이어갔다. (김용철이 데뷔 후 3할을 넘긴 해는 1982년[0.300], 84년[0.327], 87년[0.314]에 불과했다.)

1990년 타율 0.257로 떨어졌지만 해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선동열을 상대로 동점 홈런과 결승타를 치기도 했다. 삼성이 처음 해태와의 포스트시즌에서 이기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91년 0.250, 92년 0.248로 추락, 끝내 은퇴하고 말았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 때문이었다.

다음은 김용철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행동(1988년 선수협 활동)에 후회는 없으십니까.

“워낙 그 당시에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구단에서 하자는 데로 ‘오케이’했으면 지금 FA제도라던가 제도 개선이 됐겠습니까. 계속 (구단하고) 반기들고 싸우고, 쫓아내고 그랬겠죠. 구단은 갑이었어요. 나는 을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투쟁이었다고 생각해요.”>

2012년 간행된 《타격의 달인 장효조》에 실린 장효조의 음성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거지요. 당시에는 그저 ‘기분 나쁘다. 섭섭하다’ 생각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고 우리 기업의 생리였던 거예요.

우리가 지금 있는 사회를 나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나뭇잎인 거죠. 나무의 주인인 뿌리는 회사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런 상황이 되면 둘 중에 선택해야죠. 참고 살든지, 안 그러면 나오든지. 그렇더라도 나뭇잎은 바람 불면 떨어지지만, 나무는 절대로 안 쓰러진다고요.”

공교롭게도 삼성 김용철과 롯데 장효조는 트레이드 후 딱 4년 만에 유니폼을 벗었다. 이 트레이드가 결과적으로 한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선수의 생명과 경력을 망쳐버린 것은 아닐까.

김시진과 최동원. 사진=조선DB, 매일신문, 삼성 라이온즈, 스포츠조선

삼성 최동원과 롯데 김시진

최동원. 그는 선동열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힌다. ‘무쇠팔’ ‘철완(鐵腕)’ ‘황금팔’ ‘강철어깨’ ‘금테 안경’으로 불렸으나 무엇보다 뱃심이 두둑했다. 위기 상황에서 발휘하는 배짱이야말로 최동원의 진짜 마구(魔球)였다.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첫해인 1989년 방어율 2.10을 기록했으나 1990년 22게임 출장 6승 5패, 방어율 5.28로 삼성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프로 통산 8시즌(1983~90년) 103승 74패 26세이브 방어율 2.46 대단한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롯데 김시진은 어떨까. 당시 계속된 혹사로 인해 오른쪽 팔꿈치 부상이 악화되어 투수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고 한다.

김시진. 그는 뛰어난 스피드와 예리한 슬라이더로 정평이 난 투수였다. 같은 코스나 비슷한 스피드로는 잇달아 공을 던지지 않는 노련한 투구내용을 보였던 그였다.

85년 삼성이 통합 우승할 때 오른팔 김시진의 빠른 슬라이더, 왼팔 김일융의 변화구에 타자들은 헛 스윙 춤을 춰야 했다. 그해 이룩한 25승은 지금 생각해도 불멸의 기록이다.

김시진은 1989년 19경기에 출장, 4승 9패 방어율 3.87로 승보다 패가 많은 시즌을 보냈다. 90년에는 26경기에 출장, 7승 10패 방어율 4.04였고 91년에는 부상 때문인지 13경기에 2승 4패, 92년에는 단 4경기에 출장해 1패만 기록한 뒤 은퇴했다.

통산 10시즌(1983~1992년) 동안 124승 73패 1577.0이닝 931탈삼진 방어율 3.12를 기록했다. 롯데에서의 형편없던 성적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었다.

무엇이 김시진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물론 최동원의 말대로 "야구선수는 오직 그라운드에서 승부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고 해도 팬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편, 삼성에서 롯데로 팀을 옮겼던 허규옥은 2년 뒤인 1991년 다시 친정 삼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고 2년만에 은퇴하고 말았다.

프로야구 1호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서 홈런과 1, 2, 3루타를 모두 친 것.)를 쳤던 오대석 역시 롯데에서 1할(89, 90년)과 2할 초반(91년) 타율에 머무르다가 그라운드를 쓸쓸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