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 경제특보, KDB산은금융그룹 회장, KDB산업은행장을 맡으며 MB정권의 경제정책 총책임자였던 강만수 전 장관이 소설가로 변신했다. 강 전 장관은 한국소설가협회가 주관하는 제73회 한국소설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동백꽃처럼’을 투고해 당선됐다.

애초 신년인터뷰를 기획하며 그를 떠올린 것은 현재 글로벌 팬데믹과 전쟁, 갈등, 경제불황 등으로 일어난 복합적인 경제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다. 그는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경제수장(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기업에 대한 정부보증, 환율정책, 한미 통화스왑 등 과감한 정책을 펼쳤고, 한국은 다른나라들에 비해 경제가 크게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 강 전 장관을 모처에서 만나 근황을 들었다.

이번에 한국소설신인상에 당선된 ‘동백꽃처럼’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주인공이 50년 전 헤어진 옛 연인과 동백섬에서 재회하는 내용이다.  강 전 장관은 이 소설을 옥중(獄中)에서 썼다고 했다. 그는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2016년 12월 구속됐고, 4년여간 옥고(獄苦)를 치렀다. 

        강 전 장관의 소설 '동백꽃처럼'이 실린 <한국소설> 11월호. 

“시간은 많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4년여동안 단편소설을 15편정도 완성했습니다. '동백꽃처럼'은 그동안 쓴 것 중 가장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처음으로 내놓은 겁니다. 원래 가장 애정을 갖고 문예상에 도전하고 싶은 소설은 내가 공직생활을 하며 든 생각,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 그리고 내가 겪은 사람들에 대해 쓴 것이었어요. 실존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고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담고있다 보니 문예상에 도전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주변의 충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먼저 내놨습니다.”

그가 말한 자전적 소설의 배경은 공직에 있으면서 겪은 내용이라 5공때부터 2010년대까지 범위가 꽤 넓다. 단편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점이 있어 중편으로 만들려고 손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소설 등단작 '동백꽃처럼'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주제와 소재를 잘 지켜내는 능력이 돋보였고, 문장과 구정, 적절한 심리묘사도 안정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필력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경남고 2학년때 소설가가 되겠다며 자퇴를 선택해 소설 쓰는 법을 배웠고, 학생시절부터 수십년간 매일 일기를 썼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언론 등에 기고를 하며 언론사 주필과 논설위원들로부터 ‘한 글자도 고칠 곳이 없다’, ‘내가 본 가장 훌륭한 칼럼’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한 정권의 경제정책을 풍미했던 그의 회고록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그가 왜 굳이 소설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감옥에 들어간 고위공직자들은 시간을 활용해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 역시 할 말이 많을 터다.

“다큐멘터리나 회고록을 쓸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그럴 경우 등장인물은 지금도 활동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써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우려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예민한 부분을 다 피해나가면서 내용없는 회고록을 쓰기는 싫었습니다. 인물들을 가명으로 설정해 비열한 실체를 낱낱이 묘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 같은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나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실 그대로를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위층의 어두운 행태를 담다보니 역대 정권과 현 정권에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출간은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또 소설가로 등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을 발표하는 것은 문인들에게 실례라는 생각도 들어 출간을 꺼렸지만, 이제 소설가로 등단했으니 문예지나 잡지에 연재를 하고 싶다는 뜻도 비쳤다.

기자가 “현재 국내외 경제가 복합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장관 시절 비서실장이고 정부의 주요 인사들 중 이명박 정부 시절 인물들이 많은데, 나라를 위해 선배로서 조언을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길지 않았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조언할 것이 있겠습니까. 내가 인터뷰를 하거나 칼럼을 쓰면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겁니다. 응원하며 지켜보려 합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