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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데이비드 보위의 〈I Can't Give Everything Away〉

[阿Q의 ‘비밥바 룰라’] 죽기 이틀 전 발매 앨범의 마지막 곡. 그가 남긴 유언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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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본명 David Robert Jones·1947년생)는 2016년 1월 10일 사망했다. 이틀전인 1월 8일 25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블랙스타(Black Star)》가 나왔다. 사망 직전 나온 이 앨범을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들었다. 보위의 음악과 죽음의 비밀이 담겨있으리라는 기대 혹은 아픔, 상실감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앨범의 마지막 곡인 〈I Can't Give Everything Away〉에 주목했다. 고교 수준의 영어실력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어떤 것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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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가 죽기 이틀 전인 작년 1월 8일 발매된 25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블랙스타(Black Star)》 커버
[Verse 1]
I know something's very wrong(대단히 잘못됐어.)
The pulse returns the prodigal sons(방탕한 자식의 업보가 돌아왔어.)
The blackout hearts, the flowered news(멈춘 심장, 좋은 소식들)
With skull designs upon my shoes(신발에 그려진 해골 모양과)
 
[Chorus]
I can't give everything(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어.)
I can't give everything
Away(멀리)
I can't give everything
Away
 
[Verse 2]
Seeing more and feeling less(더 보고 덜 느끼기.)
Saying no but meaning yes(아니라고 말하지만 맞다고 뜻하기.)
This is all I ever meant(이것이 내가 뜻한 전부.)
That's the message that I sent(그것이 내가 보낸 메시지)
 
[Chorus]
I can't give everything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Away
 
[Verse 1]
I know something's very wrong
The pulse returns the prodigal sons
The blackout hearts, the flowered news
With skull designs upon my shoes
 
[Chorus]
I can't give everything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I can't give everything
Away
I can't give everything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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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국내 번역 출간된 《데이비드 보위 : 그의 영향》표지. 특이하게도 표지에 책 제목이 적혀있지 않다.
아래는 지난 7월 국내 번역 출간된 《데이비드 보위 : 그의 영향》(사이먼 크리츨리, 조동섭 옮김)의 글을 인용한다. 보위의 열혈 팬인 저자는, 데이비드 보위가  언제나 긍정의 유토피아를 꿈꾼 인물로 묘사했다.
저자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는 뉴욕 뉴스쿨 교수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 《아주 적은...거의 없는》, 《무한히 요구하는》 등의 저서가 있다. 옮긴이는 문화잡지 《이매진》의 수석 기자이자 야후 스타일 편집장으로 일했다.
 
〈....보위의 부정적 성향 안에, 그 확연한 부인과 우울 밑에, 명확한 ‘긍정’을, 삶의 그 모든 복잡한 혼란 속에서, 그런 한편 또한, 그 모든 도취와 기쁨의 순간 속에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삶의 확언을 들을 수 있다. 보위의 경우, 우리가 사회관습의 속임수를 종교 조직의 제도와 협잡을, 우리 문화를 좀 먹는 강요된 행복을 모조리 없앤 순간에만 비로소 그 음악에 울려퍼지는 긍정을 들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위의 음악과 분명한 부정성의 핵심에는 연결에 대한, 또,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
보위가 무효로 만든 것은, 난센스, 허위, 뒤떨어진 사회적 의미들, 전통들, 특히 계급과 성에서 우리르 구속한 정체성의 늪이다. 보위의 노래들은 이 온갖 의미들이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지 밝히며 다시 만들어 낼 능력을 우리에게 준다. 그의 노래들은 변화할 수 있는 우리 능력이, 그의 능력처럼, 무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준다.(p.191~192)
 
나에게 보위는 영국의 갑갑하고 옹졸하고 가차없는 ‘부정’ 안에서 ‘긍정’을 염원하는 유토피아 미학 전통을 최선으로 잇는 인물이다. 보위의 음악이 갈망하며 우리의 상상을 부추기는 것은, 함께함의 새로운 형태, 더 예리한 시각과 더 날카로운 소리로 받아들일 욕망과 사랑의 새로운 강렬함이다. 적어도 내 상상에서는, 바로 그것이, 시인 횔덜린의 인용구가 뜻하는 바다.(p.193)

"과거를 모두 부끄럽게 만들
기질과 시각의 혁명이
미래에 오리라고 나는 믿는다."
- 프리드리히 횔덜린....〉
 
기자는 데이비드 보위가 이 곡을 통해 전하려한 마지막 메시지, 혹은 세상을 향한 사실상의 유언을 음미해 본다.
 
Seeing more and feeling less(더 보고 덜 느끼기.)
Saying no but meaning yes(아니라고 말하지만 맞다고 뜻하기.)
 

입력 : 2017.09.30

조회 :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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