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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16> 球都 인천의 역사 속 구단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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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프로야구 4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40장면을 소개한다. 이 장면들은 어쩌면 B컷일지 모른다. 전면에 놓이기에 뭔가 허전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록될 장면들일 것이다. 결정적 장면은 수많은 스포츠신문과 주요 매체에서 다 다뤘거나 다룰 예정이니 불필요한 소음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 7권의 프로야구 관련 책들의 도움을 받아 기술한다.

《이것이 야구다-프로야구 30년을 뒤흔든 100인의 한마디/ 명장면 200선》(2011)
《그라운드 20년 마이크 30년 허구연의 야구》(2008)
《한국 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2011)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2015)
《프로야구 투타의 전설》(2010)
《프로야구 크로니클》(2012)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2013)
사진=인천일보 2022년 8월 18일자 12면 캡처.

SSG 랜더스는 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한국시리즈 2차전 키움과의 경기에서 6-1로 승리했다.

전날 6-71차전을 내준 SSG는 이날 승리로 1승1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SK 와이번스를 승계한 SSG는 창단 2년 만에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상태. 인천이 다시 야구 열기로 들끓고 있다.


야구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많지만 구도(球都)하면 인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처음 전파된 도시가 바로 인천이다.

한국프로야구 40년사에 많은 구단이 인천을 거쳐갔다. 부산하면 롯데, 대구하면 삼성, 광주하면 해태(지금은 기아), 대전하면 한화지만 인천하면 여러 구단이 뒤죽박죽 떠오른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작으로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에 이어 지금의 SSG 랜더스까지 무려 6개 구단이 인천을 연고로 했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김 트리오의 <연안부두>

 

 

부산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부산 갈매기>라면, 인천하면 <연안부두>. 삼미에서 SK까지, 아니 SSG까지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한결같이 인천 팬들은 “마음마다 설레며” 이 노래를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야구팬이든 아니든 인천 사람들은 SSG에게 노랫말처럼 말해다오! 말해다오!”라고 외치고 있다. “오는 사람” SSG가 더는 “떠나는 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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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유튜브 ‘스포츠DB’ 캡처. (www.youtube.com/watch?v=Hze0kta7gKE)

 

먼저 인천을 연고지로 삼은 첫 구단은 삼미 슈퍼스타즈이었다.


삼미하면 투수 장명부가 떠오른다. ‘너구리’, 혹은 고무팔로 불린 장명부는 1983년 삼미의 100경기 중 60경기에 등판해 30166세이브를 거뒀다. 30승 중 26승이 완투승. 무지막지한 기록이었다. 스포츠서울 야구팀이 쓴 이것이 야구다에 따르면 장명부는 누상에 주자가 없을 때는 슬슬 던지다가도 주자가 있을 때는 전력피칭을 했다고 한다.


삼미는 1985년 프로야구 40년 통산 18연패라는 최악의 불명예를 갖고 있다. 너무, 자주, 쉽게 패하자 선수들이 종파와 종교를 초월한 기도회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1승이 그렇게 간절했었다.

18연패를 탈출한 그해 430. MBC청룡을 상대로 투수 최계훈이 4-0 완봉승을 거두었을 당시 인천 도원구장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비보(悲報)가 들려왔다. 청보식품에 구단이 70억 원에 매각된 것이다. 그러나 청보 핀토스도 오래가지 못했다. 2년 반 동안 271경기에서 97승만을 거둔 채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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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인천의 상징인 문학구장. 2011년 4월 모습이다. 당시 인천 연고구단은 SK 와이번스였다. 사진=조선DB

 

1988년 바통을 이어받은 구단이 태평양 돌핀스였다. 1989년 인천팀으로는 최초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최고의 성적을 거두자 인천 팬들이 야구장으로 몰려 들었다. 손윤, 배지헌이 쓴 프로야구 크로니클에 따르면, 그해 태평양이 기록한 관중 수는 전년도(88) 168000여명에서 2.5배 증가한 419000여명이었다.


1994년은 인천 야구단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해다. ‘구도 인천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태평양 돌핀스가 정규리그에서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인천일보에 따르면 1만 명만 입장해도 발 디딜 틈이 없던 야구장에 그해 476277명의 관중이 몰렸다.

 

투수 정명원이 44세이브포인트(4구원승, 40세이브)로 뒷문을 걸어 잠궜고, 최상덕(13)과 김홍집·최창호(이상 12), 안병원(11) 등이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김경기가 23홈런(70타점, 0.277), 김동기가 15홈런(50타점, 0.264), 윤덕규가 11홈런(51타점, 0.321)을 치면서 훨훨 날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아웃시키고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와 만났다. 그러나 힘 한번 못 쓰고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화면 캡처 2022-11-02 231625.jpg

조선일보 1998년 10월 31일 자 1면이다. <현대, 한국시리즈 첫 우승> 기사와 함께 사진이 실렸다.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는 창단 첫 해인 199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해태에 24패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현대 돌풍을 예감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창단 3년째인 1998년 드디어 LG트윈스를 41패로 물리치고 첫 우승했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16년만에 인천 팬들의 우승 한(恨)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조선일보는 19981031일 자 13면 기사 <과감한 투자로 거함부상... 현대 우승요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승리의 원동력은 16년 동안 무관(無冠)의 한을 이번에는 꼭 풀겠다는 선수들의 굳은 의지였다”고 지적했다. 16년이란 한국프로야구 출범(1982년) 이후를 뜻한다. 다음은 기사 중 일부다

 

<인천-경기-강원 연고팀이 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한국시리즈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90년 태평양은 LG4전 전패로 탈락, 한계를 절감했다.

 

하지만 96년 현대라는 거함(巨艦)이 야구판에 뛰어들면서 곧바로 한계를 뛰어넘었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그해 한국시리즈 패권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강호 해태에 눌려 24패로 쓴잔. 이때 김재박 감독은 패배의 대가로 단기전은 투수놀음이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현대는 올해 박경완, 이명수, 조규제에 외국인 선수들로 취약 포지션을 보강,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리곤 시즌 종료 후 한국시리즈까지 22일간 휴식하면서 정민태, 정명원, 김수경 등 투수들의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전력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승리의 원동력은 16년 동안 무관(無冠)의 한을 이번에는 꼭 풀겠다는 선수들의 굳은 의지였다.… >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정민태(17정명원(14위재영(13김수경(12최원호(10) 등 선발진은 모두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또 박재홍은 그해 30홈런, 43도루로 ‘30·30 클럽에 가입할 만큼 엄청난 활약을 했다. 용병 쿨바가 26홈런(97타점), 박경완이 19홈런(66타점), 김경기가 18홈런(59타점)을 쳤다. 전준호는 타율 0.321로 ‘방망이를 거꾸로 들어도 3할은 친다’던 삼성 양준혁(0.342)에 이어 타격 2(35도루, 도루 4)에 올랐을 만큼 타격에 한껏 물이 올랐다.

 

찬란했던 현대...  “참으로 불행하고 서글픈 결말

 

현대는 모기업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무려 6(1994, 96, 98, 2000, 2003, 2004) 나가서 4(1998, 2000, 2003, 2004)이나 우승할 만큼 야구 명가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는 인천에서 성공 신화를 썼지만 2000년 연고를 서울로 옮기겠다고 폭탄 선언을 해 인천 팬들을 놀라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비록 구단을 창단할 때 KBO에게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약속했다고 해도 쉽게 납득도, 용납할 수도 없는 행위였다. 심지어 이후 몇 년간 현대는 수원을 홈구장으로 삼으며 경기를 가졌다.

IMF의 여파로 구단의 최대 주주인 현대전자가 부도가 났고 현대그룹도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결국 현대 유니콘스라는 구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인천 야구팬들로서는 우승의 한을 풀어준 애증(愛憎)의 구단이었다.

 

현대의 ‘탈(脫) 인천’에 대해 전직 KBO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대가 서울로 연고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창단 당시 SK구단에게 인천을 내주었다. 현대가 서울로 들어가는 조건으로 LG와 두산에게 54억(각 27억원)을 주기로 하고 그 돈을 SK가 대신 내기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경영난에 빠지자 54억원을 현대가 꿀꺽하면서 유니콘스는 서울에 입성도 못하고 수원에서 오도가도 못한 상황이 되었다. 현대는 수원에서 임시 거주하다 해체되었다.

정확하게 얘기해서 현대는 1996~99년까지 4년간 인천 연고팀이었지만 2000~2007년까지 SK 연고지에 얹힌 무연고 팀이 되었다. 참으로 불행하고 서글픈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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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9일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 와이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사진=스포츠조선

 

현대가 구단을 매각한 뒤 SK 와이번스가 인천에 자리 잡으며 2007년부터 6년 연속으로 KBO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중에서 3번(2007, 2008, 2010년)은 정규시즌에 우승, 한국시리즈로 직행했다. 당시 김성근-이만수 감독의 매직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우승 아니면 준우승을 기대할 만큼 거침이 없었다. 2007, 2008,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성근-이만수로 연결된 왕조 시대가 끝나고 잠깐 암흑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구도 인천은 저력 있게 2018년 통산 4번째 우승을 다시 차지했다. 당시 두산 베어스를 4승 2패로 무너뜨렸다.

뜻밖에 작년 1SK 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에 인수되면서 SSG 랜더스로 새로 출발하게 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무려 6번이나 연고 구단의 명칭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을망정 작년 시즌 6위에서 올해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우승이 확정된 후 떼창의 <연안부두>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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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5일 프로야구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SSG 랜더스의 주장 한유섬 (왼쪽)과 정용진 구단주가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스포츠조선

입력 :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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