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는 정규 패넌트레이스 보다 더 뜨겁다.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경기를 한다. 관중들도 목숨을 걸고 응원한다.

과거에는 흥분한 관중이 상대 선수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그라운드에 오물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스포츠인지 전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상대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르고 흥분한 선수가 관중을 향해 야구 배트를 던졌다. 요즘 같아선 상상 못할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특히 1986년 삼성과 해태의 한국시리즈, 1992년 빙그레와 롯데의 한국시리즈, 1999년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가 한국야구사에 오점(汚點)으로 기록돼 있다.

1986년 해태 구단 버스 방화 사건

삼성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OB 베어스에, 84년 최동원의 롯데 자이언츠에 패하고 말았다. 85년 전후기 통합 1위로 한국시리즈를 지워버렸다. 삼성의 독주에 마뜩찮은 여론에 힘입어 야구 룰이 바뀌었다. 전후기를 우승해도 반드시 한국시리즈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당시 바뀐 룰은 이랬다.

①전기 1, 2위와 후기 1, 2위 팀에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부여.

②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 직행

③한 팀이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 진출

④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네 팀이면 전기 1위와 후기 2위, 전기 2위와 후기 1위 간의 5전 3선승 플레이오프 후 한국시리즈 실시.

1986년 삼성은 OB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5차전 접전 끝에 간신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해태는 곧바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정규 시즌 전적에서 해태가 삼성에 11승 1무 6패의 우세를 보였다. 해태에는 선동열이 있었다.

그는 1986년 평균자책점(ERA)이 0점대인 0.99였고 24승 6패로 다승왕을 차지했다. 홈런은 겨우 2방을 얻어 맞았을 뿐이었다. (그 다음이 롯데 최동원 ERA 1.55, OB 최일언 1.58 순이었다.)

삼성에는 강타자가 즐비했다. 시즌 타격 1위 장효조(0.329), 홈런 3위 이만수(16개), 타점 7위 김성래(48점)가 있었다. 물론 해태도 김봉연(0.300)-한대화(0.298)-김종모(0.313) 등이 버티고 있었다.

대구광중들의 방화로 전소된 해태구단 버스의 모습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사진 원본은 스포츠서울로 알려져 있다.

1986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만났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4> 해태 구단 버스 방화 사건과 삼성의 저주 : 월간조선 (chosun.com)

참조

10월 19일 광주에서 있었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관중들이 던진 병에 해태 진동한 투수가 머리를 맞았고 22일 대구 3차전에선 라이온즈가 경기에 지자 ‘광주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던 대구 관중들이 타이거즈 선수단 버스에 불까지 지르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당시 대구북부경찰서는 해태 선수단 버스방화 사건 및 시위와 관련 이모씨 등을 방화혐의로, 유모씨 정모씨 등 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노모씨 양모씨 등 2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992년 대전구장 난동 사건

빙그레(현 한화)는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정규 시즌 1위에 올랐다.

타선을 이끈 이는 장종훈과 이정훈이다. 전인미답의 시즌 41홈런을 친 장종훈은 타점(119), 득점(106)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홈런, 타점, 장타율에서 3년 연속 1위에 올랐고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로 뽑혔다. 타격왕 2연패를 달성한 이정훈은 25홈런, 21도루로 국내 프로야구 사상 4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했다.

팀 장타율이 0.430으로 1987년 삼성의 팀장타율 0.444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었다. 또 팀 시즌 최다인 146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장종훈이 41홈런(당시 신기록), 이정훈이 25홈런, 강정길이 14홈런, 이강돈(13홈런), 강석천(12홈런) 등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이가 5명이었다.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듯 보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기세가 거셌다. 정규 시즌에서 3위였던 롯데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해태를 차례차례 누르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1차전에서 롯데는 박동희를, 빙그레는 송진우를 선발로 내세웠다. 결과는 롯데의 8-6승.

2차전에서 빙그레 정민철이 무실점 피칭을 던졌고 9회초 송진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순식간에 3점을 내주고 말았다. 9회말 선두 타자 장종훈이 2루타를 쳤다. 이후 삼진과 볼넷으로 1사 1, 2루가 되었다.

빙그레 강석천의 땅볼로 2사 1, 3루. 대타 진상봉이 큰 타구를 날렸다. 1루 주자까지 거뜬히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정장 진상봉은 걸음이 느렸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큰 타구를 홈런으로 착각했을까. 열심히 뛰지 않아 1루에 머무르고 말았다. 낭패였다. 만약 진상봉이 2루까지 갔으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후속 타자가 내야 안타, 1루 땅볼에 그치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그날 밤 9시쯤 빙그레 관중 500여명이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대전구장 정문 쪽으로 몰려갔다. 무리한 진압에 항의하는 거리시위까지 벌어졌다. 다음은 경향신문 10월 10일자 기사다.

<9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이 벌어진 대전구장에서 홈팀 빙그레의 연패에 항의하는 500여 관중이 구단버스를 파손하는가 하면 일부는 거리로 진출, 가두항의 시위를 벌이는 소란. (중략)

특히 이날 난동은 긴급 출동한 충남도경과 관내 중부서 소속 4개 기동대 등 1000여명의 경찰들이 무리한 초기 진압으로 난동이 더욱 증폭.

이 난동자들의 거리 시위로 이 일대가 1시간여 동안 교통이 마비되는 소란을 빚기도.>

홍윤표 기자가 쓴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는 이날 소동을 이렇게 기술했다.

<이 난동은 1986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 3차전 후에 벌어진 대구 관중들의 해태 구단버스 방화사건에 버금가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관중 난동으로 기록될 만한 대형 소동이었다. 빙그레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결국 롯데에 1승 4패로 져 첫 우승의 꿈이 사라졌다.>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 6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1점 홈런을 터뜨린 롯데 4번 호세가 오물을 집어던지며 야유를 보내는 대구팬들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집어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DB

1999년 호세의 방망이 투척 사건

1999년 롯데는 드림리그 2위를 삼성은 매직리그 1위를 차지했다. 양팀이 한국시리즈 티켓을 놓고 3승3패로 맞섰다. 7차전이 삼성 홈구장인 대구에서 열렸다. 보기 드문 명승부였지만 대구구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 사태의 발단은 6회초 롯데가 0-2로 뒤진 상태에서 롯데의 4번 타자 호세가 솔로 홈런을 날리면서부터다. 호세가 3루를 도는 순간 관중석에서 캔이 날라 들었다. 호세가 더그아웃에 들어간 뒤에도 컵라면과 물병 등이 구장으로 쏟아졌다.

봉변당한 호세가 흥분을 참지 못해 그라우드로 뛰쳐나와 방망이를 1루 관중석으로 냅다 던졌다. 심판이 비신사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호세를 퇴장시키자 롯데 선수들이 경기 보이콧을 선언하며 철수하려 했다. 코칭스태프가 만류하는 등 경기가 23분 동안이나 중단되었다. 또 롯데 선수들과 대구구장 관중들이 충돌,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심지어 삼성 팬들은 1000여명의 롯데 응원단을 에워싼 가운데 물병 따위를 서로 날렸으니 역대 이런 불상사가 없었다.

조선일보 1999년 10월 21일 자 31면에 실린 기사 <상대팀 홈런치자 캔-라면 던져… 깃발 태우기도> 중에서.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롯데 선수들의 경기력이 갑자기 달라졌다. 승리의 열망에 불탔다고 할까. 호세에 이어 마해영이 솔로 홈런으로 순식간에 2-2 동점이 되었다.

이어 삼성 김종훈과 이승엽의 백투백 홈런으로 경기는 5-3, 삼성이 앞서갔지만 9회초 삼성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롯데 임수혁이 동점 2점 홈런.

결국 연장 11회 롯데 김민재의 좌전안타로 경기가 뒤집히고 말았다.

삼성의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흥분한 관중들이 각종 오물을 롯데 선수들에게 던졌다. 경찰 기동대가 야구장 스탠드를 에워싸며 해산을 시키려 했지만 관중들은 구장 정문 근처에 모여 깃발을 불태우는 등 난동을 이어갔다.

정말이지 야구가 아니라 한편의 전쟁이었다.

이날 삼성-롯데 전이 끝난 후 대구 관중들이 쓰레기를 그라운드에 던졌다. 사진=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