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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10> 이승엽을 ‘주인공’으로 만든 우즈와 심정수

이승엽, 우즈와 심정수 경쟁 통해 홈런 타자로 거듭 나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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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우즈와 심정수. 사진=조선DB

이승엽(현 두산 감독)이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가 되기 위해 조연(助演)이 필요했다.

 

OB 베어스의 타이론 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 분명 원치 않았겠지만, 이승엽을 위해 조연 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둘과의 경쟁을 통해 이승엽은 긴장감을 줄곧 유지할 수 있었고 대기록(아시아 홈런 신기록, 세계 최소 경기 40홈런,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세울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승엽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특출한 타자는 됐어도 레전드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역으로도 성립된다. 이승엽과의 도전을 통해 우즈와 심정수 역시 잊히지 않는 인물이 될 수 있었고 이승엽을 통해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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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와 이승엽. 1999년 8월 2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삼성전에서 지난해 이승엽을 추월해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두산 타이론 우즈가 1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1루에서 최근 홈런포가 침묵하고 있는 이승엽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승엽과 우즈

 

1995년 데뷔해 1997년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쥔 삼성 이승엽은 거칠 것이 없었다. 펄펄 날았다. 야구팬들은 새로운 홈런왕의 등장에 열광했다. 1998년 첫 도입된 외국인 용병제도로 타이론 우즈가 OB 베어스에 오면서 홈런 경쟁이 이뤄졌다. 한국 생활 첫 해, 우즈는 한화 장종훈이 가진 41홈런 기록을 가뿐히 지워버렸다. 42홈런. 전년도 홈런왕 삼성 이승엽은 32홈런에서 6개 끌어올린 38홈런을 쳤지만 우즈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1998년 홈런 순위는 이랬다. 우즈는 42홈런, 이승엽 38홈런, 김기태(쌍방울) 31홈런, 박재홍(현대) 30홈런, 양준혁(삼성) 27홈런 순이었다.

 

절치부심, 이승엽은 열심히 방망이를 갈고 닦아 이듬해 199954홈런(123타점)을 기록, 바야흐로 50홈런 시대를 열었다. 어마어마한 대기록이었다. 우즈는 그해 34홈런(101타점)에 그쳤다.

 

화면 캡처 2022-10-17 092042.jpg

조선일보 1999년 9월 3일자 34면에 실린 <이승엽 50호는 메이저 60호 이상기사


당시 언론은 이승엽의 홈런기록에 대서특필했다. 국내 야구가 시즌 132경기로 미국 메이저리그(162경기), 일본(135경기)보다 적은 점을 감안하면 이승엽의 54홈런은 일본 왕정치의 55홈런( 1964)와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70홈런(1998)과 비교해 절대 밀리거나 평가절하되지 않았다.

 

1999년 조선일보 93일자 34<이승엽 50호는 메이저 60호 이상> 기사에 따르면 129년 된 메이저리그에서 그해까지 총 17명이 29차례 시즌 50홈런 고지에 올랐다.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뉴욕 양키스 시절인 1920~2127~28)와 맥과이어(96~99·현재 52)4년 연속 50홈런으로 최다. 그 뒤를 미키 맨틀(뉴욕 자이언츠)윌리 메이스(뉴욕 자이언츠-샌프란시스코)랄프 카이너(피츠버그)지미 폭스(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보스턴·이상 은퇴)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 매리너스·97~98)새미소사(시카고 컵스·98~99·현재 56)2차례씩 기록했다.

 

36년 프로가 생긴 일본은 1999년 시점으로 5명이 8차례 50홈런 고지를 밟았다.

왕정치가 3차례(64, 73, 77)로 가장 많았고 오치아이가 2차례(85~86) 날렸다. 노무라(난카이 호크스·63)고츠루(쇼치쿠·50)랜디 바스(한신·85)가 각각 한 차례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이승엽의 50홈런은 구장규모나 야구수준을 생각할 때 미국 일본과 절대 비교는 곤란하지만 ‘60’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데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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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시절의 우즈.


1982~2022KBO 역대 홈런 10위

 

순위

선수명

팀명

기록

연도

1

이승엽

삼성

56

2003

2

이승엽

삼성

54

1999

3

심정수

현대

53

2003

4

박병호

넥센

53

2015

5

박병호

넥센

52

2014

6

나바로

삼성

48

2015

7

이승엽

삼성

47

2002

7

테임즈

NC

47

2015

7

로하스

KT

47

2020

10

심정수

현대

46

2002

10

최정

SK

46

2017

 

그러자 2000년 우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39홈런(111타점)으로 이승엽의 36홈런(95타점)을 넘어섰다. 전년도 54홈런을 달성했지만 홈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주춤하고 말았다. 그해 홈런왕은 현대 박경완으로 40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 이승엽은 39홈런(95타점)으로 다시 홈런왕, 우즈는 113타점(34홈런)으로 타점왕을 기록했다. 홈런 2위는 롯데의 호세로 36홈런이었다. 우즈는 홈런 3. 전년도 홈런왕 박경완은 홈런 24개에 머무르고 말았다.

 

2002년 이승엽이 우즈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47홈런(126타점)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이었고 우즈는 25홈런(82타점)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대신 현대 심정수가 46홈런, SK 페르난데스가 45홈런으로 불꽃 경쟁이 이뤄졌다. 어떻게 보면 이승엽은 간신히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달리 보면 우즈 대신 심정수와 페르난데스가 이승엽의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선 셈이 되었다.

 

우즈가 일본으로 떠난 2003년 이승엽은 56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현대 심정수는 53홈런. 국내를 평정한 이승엽은 이듬해 우즈가 있는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서도 숙명 대결

 

스포츠서울 야구팀이 펴낸 이것이 야구다(2011)에 따르면 이승엽은 2006년 일본 퍼시픽리그의 지바 롯데에서 30홈런을 터뜨리며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로 이적한 이승엽은 일본에 진출해 요코하마에서 주니치로 옮긴 우즈와 또 한 번 숙명의 대결을 펼쳤다.

 

200744, 첫 시즌 맞대결을 앞둔 우즈는 이승엽이 홈런을 많이 치는 것은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기 때문이라며 이승엽을 자극했다. 이승엽은 그렇다면 한 번 최고 명문인 요미우리에서 뛰어보라고 응수했다.

 

이승엽은 시즌 중반까지 홈런 레이스를 주도했지만 우즈에 막판 뒤집기를 허용하며 홈런왕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즈가 35홈런, 이승엽은 30홈런을 기록했다.

2008년 이승엽은 부상 등으로 부진을 거듭했다. 45경기 출장에 8홈런 27타점 타율 0.248, 출루율 0.324, 장타율 0.431, OPS 0.75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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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절의 심정수.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뒤 심정수는 FA를 통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사진=조선DB


이승엽과 심정수

 

우즈가 일본으로 떠나자 현대 심정수가 홈런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심정수는 2000년까지 우즈와 함께 두산에서 뛰다가 2001년 현대로 팀을 옮겼다. (심정수가 있던 두산 시절,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는 삼성의 이마양’[이승엽-마해영-양준혁] 트리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배정섭이 쓴 프로야구 투타의 전설(2010)에 따르면 2002년 우즈가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이승엽이 47홈런, 심정수가 46홈런을 기록해 KBO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심정수는 1999년 이후 슬러거로 변신해 그해 31홈런, 200029홈런, 200118홈런, 200246홈런을 기록했다. 홈런기록이 들쑥날쑥해도 타구 비거리 면에서 이승엽과 비견할 만큼 성장했다.

 

무엇보다 우즈가 사라진 2003년은 이승엽과 심정수의 대결이 불꽃을 피웠다. 시즌 초반 이승엽과 심정수는 마해영과 더불어 홈런 경쟁을 이어갔다. 이승엽이 5월에 15홈런, 6월에 14홈런으로 29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는 MLA의 배리 본즈가 가지고 있는 세계 최소경기 40홈런(82게임) 기록을 4경기나 단축시키면서 99년에 이어 또다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승엽은 그해 622일 대구 SK전에서 김원형을 상대로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LG 서승화와 싸우면서 2경기 출장정지를 당하는 등 주춤하던 사이에 심정수가 8월에만 5개의 아치를 그려내며 40호를 기록, 81442호 홈런으로 이승엽을 2개차로 추격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이승엽-심정수, 심정수-이승엽은 핑퐁 게임을 하듯 경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승엽은 결정적일 때 강했다. 특히 강력한 경쟁자가 있을 때 더욱 힘을 내는 승부사였다. 결국 이승엽은 특유의 몰아치기로 56홈런을 기록했다.

 

이승엽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 해도 심정수는 53홈런과 타율 0.355, OPS 1.198(출루율 0.478/ 장타율 0.720)이라는 말도 안 되는기록을 달성했다.이승엽에게 홈런만 뒤졌지 모든 타격지표에서 앞섰다. 이승엽의 OPS1.127(출루율 0.428/ 장타율 0.699) 타율은 0.30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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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프로야구 부문별 수상자들이 한데 모여 포즈를 취했다. 이승엽과 심정수 모습이 앞뒤로 보인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삼성 이승엽, 현대 정민태, 기아 이종범, SK 조웅천, 두산 차명주, 두산 김동주, 박진규 심판, 현대 이동학, 현대 이상열, LG 이승호, 삼성 박한이, 현대 바워스, 현대 심정수. 사진=조선DB


이승엽 없는 심정수, 갑작스런 은퇴

 

이승엽이 떠난 홈런왕 경쟁은 당연히 심정수의 독주로 예상했지만 2004년 홈런왕은 SK 박경완에게 돌아갔다. 34홈런. 반면 현대 심정수는 22개로 홈런부문 8위에 그쳤다.

 

2005FA를 통해 60억 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는 28홈런(2)을 기록했다. 그러나 35홈런을 친 현대 서튼에 한참이나 모자랐다.

 

2006년 심정수는 왼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으며 한 해를 재활로 보내게 되었다.

 

돌아온 심정수는 200731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평생 처음 차지한 홈런왕 이었다. 그러나 2008년 홈런 3개로 몰락하더니 33살이란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다. 이승엽 없는 심정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했다. 은퇴 이유는 계속된 부상과 라섹 수술로 인한 두통과 어지럼증 후유증 등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입력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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