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출범 이래 4할대 타자가 나온 것은 첫해인 82년 백인천(白仁天)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81년 일본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선수로 뛰다 이듬해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귀국했다. 그해 타율 4할1푼2리. 40년간 깨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쉽게 깨지기 어렵다.

역대 타율 2위는 이종범(3할9푼3리·1994년 당시 해태), 3위는 장효조(3할8푼7리·1987년 당시 삼성)다.

언론에서는 마법의 타율, 혹은 마법 타자라고 칭한다. 일본에서 19년간 프로야구 생활을 한 뒤 귀국해 신기한 요술 방망이를 들고 들어온 것 같다는 것이다.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임을 감안하면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니, 토끼로 가득한 굴에 호랑이가 마음껏 군림했다는 비유도 가능하다.

원년 다승 10걸 투수를 상대로도 0.376(109타수 41안타)를 기록했다. MBC 하기룡, OB 박철순, 삼성 권영호 이선희 황규봉 등이 대표적인 원년 투수들이다. (원년 선발승 10걸은 OB 박철순[16승], 삼성 권영호 이선희[이상 11], 삼성 성낙수[8], 삼성 황규봉 MBC 하기룡 OB 선우대영[이상 7], 롯데 노상수 해태 김용남 이상윤 MBC 정순명[이상 6승] 등이다.)

특히 원년 최고투수인 박철순을 상대로 17타수 7안타 0.412였다.

출처=나무위키 

당시 백인천의 말(조선일보 2013년 8월 24일 자 인터뷰)이다. "박철순도 훌륭했다. 하지만 가장 까다로운 투수는 삼성의 권영호였다. 그를 상대로 홈런을 친 적이 있는데 홈런을 맞은 권영호가 송진 주머니를 패대기 치면서 분해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는 기합이 살아 있었다. 대부분의 투수는 내가 타석에 들어서 노려보면 눈을 피했다. 그는 타자의 허를 찌르고 약을 올리는 노련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근성이 대단했다. 그를 상대로 타율이 좋지 않았다."

원년의 출루율 0.502와 장타율 0.740도 압도적이었다. 훗날 출루율은 롯데 외국인타자 펠릭스 호세(2001년 0.503), 장타율은 NC 외국인타자 에릭 테임즈(2015년 0.790)에게 1위 자리를 내줬지만, 한동안 KBO 연감(年鑑)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KBO의 ‘레전드 40인’에 선정된 백인천

팔이 길다고 할 수 없지만 양 팔을 몸에 최대한 밀착시키되 공이 들어오면 빠르게 배트를 휘둘러 파워 스윙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배트를 거의 90도 가까이 하늘로 세웠는데, 머리쪽으로 배트가 향하는 장거리형 타자와 달리, 다소 타이밍이 늦어도 속구에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삼진 비율이 다른 장거리 타자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배트 2개를 들고 스윙을 연습하던, 굵고 탄탄한 근육, 까무잡잡한 얼굴도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 야구 배트 두 개를 휘두르며 연습하는 이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백인천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2013년 8월 24일 자)에서 자신의 4할 타율 달성 이유를 ‘중독’으로 표현했다.

“4할을 친다는 건 기술이나 실력만 갖고는 안 되는 일이다. 관건은 오히려 야구 외적인 '바이러스'다. 페이스를 망치게 하는 우연적인 사건, 그리고 술·여자·도박 같은 유혹들.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99%는 그런 유혹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거기서 U턴(유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중독자는 유혹에 빠지더라도 금방 뿌리치고 U턴할 수 있다. 야구보다 재미있는 일이 없는 중독단계까지 가야하는 이유다.

한국에 돌아온 1982년 당시의 집중력은 일본에서 3할 4푼을 쳤던 1979년보다 10% 이상 좋았다

나이 마흔이었지만 만약 일본에 있었다면 수위타자를 다퉜을지 모른다. 기록은 깨지는 법이다. 누가 중독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중독자가 되지 않으면 깰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교 2학년 때 이명민 타격상 수상

백인천은 경동고 시절 포수이자 강타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원자탄 투수’로 불린 이재환과 배터리를 이루며 ‘경동고 전성시대’를 열었다.

2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고, 3학년 시절이던 1960년 해방 후 한국 고교생으로는 최초로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에서 홈런을 때려내 화제를 모았다. 백인천을 앞세운 경동고는 그해 무려 32연승 2무승부 무패 신화를 썼다.

1960년 10월에 일본학생야구협회 초청으로 경동고가 한국 고교팀 최초로 일본 원정에 나섰을 때, 백인천은 홈런 2방을 날려 일본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농업은행(농협)에 입단한 백인천은 1962년 1월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 필리핀전에서 비바람과 역풍을 뚫고 좌월 2점 홈런을 날렸다. 베스트9에도 뽑혔다. 당시는 대만과 한국 비행기 직항로가 개설되지 않았던 시절.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친 한국 대표팀은 일본 도쿄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틀간 도쿄에서 묵는 일정. 이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때 도에이 플라이어스(닛폰햄 파이터스 전신) 구단이 최태환 재일한국인야구협회 부회장을 통해 백인천과 접선했다. 여기서 백인천은 도에이 구단과 가계약을 하게 된다. 한신과 다이마이 구단에서도 백인천에게 눈독을 들였지만 도에이가 먼저 낚아챘다.

백인천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국내에서 성장한 선수 중 해외 프로 구단과 정식계약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말하자면 ‘한국 스포츠 선수 수출 1호’라는 역사를 쓴 셈이다.

백인천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거둔 성적은 1963년 81년까지 1군 생활의 통산 성적은 1969게임에 출전해 6579타수 1831안타로 타율은 0.278. 3할을 돌파한 해는 1972년(0.315), 75년(0.319, 퍼시픽리그 타격왕), 79년(0.340) 등 3년이다. 귀국 직전 5년간(77~81년)의 통산성적인 1399타수 392안타로 0.280이었다.

1982년 서울 연고의 문화방송이 창단한 프로야구단 MBC 청룡을 창단식에서 단기를 받고 필승을 다짐하고 있는 선수와 단장들, 맨앞 왼쪽이 4할 타자였던 백인천 선수 겸 감독. 사진=조선일보DB

타율 관리? 오히려 저평가된 원년 4할

그러나 야유도 많이 받았다. 타율 조절을 위해 상대하기 어려운 팀과의 대전을 일부러 회피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근거 없는 얘기라는 주장을 한다.

백인천이 원년에 실제로 결장한 경기 수는 3경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6경기는 몰수게임과 관련이 있다. 타율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시즌 막판 결장하는 게임이 있어야하는데, 백인천은 몰수게임 징계 이후 MBC 청룡의 잔여 14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했다.

“치기 까다로운 투수는 회피했다”는 말도 호사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깝다.

백인천이 4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타율 관리’보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와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 차, 선수층, 적은 경기수(전기 40, 후기 40을 더한 80경기)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국 프로야구에선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4할 6리를 때린 것이 마지막이고 일본도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을 만큼 4할의 타율은 경이적인 기록이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타율 기록은 1986년 한신 타이거즈의 랜디 바스가 기록한 0.389이다.

마의 4할 이후...

마의 4할대 타율을 올린 뒤 연봉인상 문제로 MBC 측과 대립해서 팀을 떠났던 백인천은 자유계약선수로 OB, 해태, 삼미 측과입단 교섭을 벌렸지만 신통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1982년 12월 14일자 기사 <유랑 18일...백인천, MBC 복귀>에 따르면 연봉인상 문제는 금명간양자가 한발씩 물어난 선에서 재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자신을 끝으로 4할 타자가 사라진 현상을 두고 백인천은 "그때의 나만큼 야구에 중독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진=조선일보DB 

그러나 끝내 1983년 삼미로 이적했고, 1984년을 끝으로 선수로서 유니폼을 벗었다. 이적 후 타율은 83년 0.190, 84년 0.261에 불과하다. 경기수도 83년 35경기, 84년 10경기에 그쳤다. 야구계를 떠나 사업을 하며 야인으로 지내던 백인천은 1989년 말 MBC 청룡 감독으로 컴백했다.

곧바로 럭키금성그룹이 MBC 구단을 인수하면서 LG 창단 감독이 된 백인천은 페넌트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을 4승 무패로 격파하며 완전무결한 우승을 지휘했다. 청룡은 한 번도 승천하지 못하고 팬들과 작별했지만, 트윈스는 출발부터 우승으로 새 역사를 시작했다.

그는 삼성 감독(1996~1997년, 사진 아래)과 롯데 감독(2002~2003년)을 끝으로 그라운드 일선에서 물러났다.

삼성 감독시절 백인천. 사진=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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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일보 1970년 8월 29일자 6면에 실린 박스 기사다. 제목은 <일본야구계서 활약하는 세 한국선수의 꿈>.

백인천과 장훈, 김정일(일본명 가네다 마사이치, 金田正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東映)에서 활약중인 백인천(白仁天) 선수는 『앞으로 남은 3년은 나의 야구 생활의 고비다. 3년간의 보장만 있다면 분골쇄신하여 대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사카 근교 닛세이(日生)구장에서 긴떼쓰(近鉄)와의 대전을 앞두고 장훈(張勲)선수등과 자리를 같이한 백 선수는 그러나 『고국에서 강력히 귀국을 종용한다면』 귀국할 도리밖에 없지 않느냐는 태도였다.

그의 일본 귀화설에 대해선 몹시 불쾌한 태도로 이를 부인하면서 『생각해 본 일도 없으며 입밖에낸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병역문제도 고국에서 말썽난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는데 『이제까지는 일본 야구계에서 기초를 닦아 놓았을 뿐 앞으로가 인정을 받을 시기인데 만일 군(軍)에 입대한다면 자기의 야구생명은 빛을 못 볼 것이며 장차 한국선수들의 일본  프로야구 입단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장훈 선수도 옆에서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군은 도일한 지 9년, 그동안 800여 게임을 치렸는데 소원은 1000 게임을 돌파하는 것이라고말했다.

한편 장훈 선수는 타율 4할을 돌파하기에 매우 안간힘을 다하는 품이었는데 오는 11월 재일교포 및 한국선수들로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모두 이끌고 모국을 방문하여 경기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구장에서는 김정일(전 巨人 투수)씨의 동영(東映)팀 감독 후보설이 나돌아 화제가 됐는데 장훈(張勲) 선수는 『고생을 많이해온 사람인만큼 우리 기분을 이해하여 적은 일까지 신경을 써줄사람』이라고 찬성하는 눈치였다.

【대판(大阪)에서 조종무 특파원(趙鍾武 特派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