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 7일 소련군이 나치로부터 바르샤바를 '해방'시켰다. 6년 전 히틀러와 야합해 독립국가 폴란드를 지구상에서 말살했던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해방'한 것은 역사의 코미디였다.

6년 전 폴란드의 정부는 하나였다. 하지만 이때는 두 개였다. 영국 런던에 망명하고 있던 합법정부와 소련이 르블린에 세운 공산주의자들의 괴뢰정부가 그것이었다. 런던의 망명정부는 자기들의 정통성을 주장했지만, 이미 폴란드 전역이 소련군의 점령하에 놓여 있었다. 한 달 후 얄타에서 미국과 영국은 동구에서 소련의 우위를 인정했다. 미국과 영국은 좌우연립정부의 수립과 민주선거라는 외양을 갖춘 후 폴란드에서 발을 빼려 했다. 외양은 좌우연립정부였지만 소련군의 후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군대와 공안기관을 장악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빠르게 폴란드를 공산화시켜 나갔다.(해방 후 한반도에서 좌우합작정권이 수립됐을 경우, 그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치 치하에서 6년 내내 저항했던 폴란드 국내군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소련군은 18세기 후반 이래 123년간 폴란드를 분할지배했던 제정러시아의 후예들이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팔아넘기는 부역자들이었다.

1944년 소련군이 폴란드에 진입할 때부터 저항을 시작한 이들은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에도 계속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것은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폴란드인끼리 싸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내전이었다. 소련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좌익세력과 민족주의적 전통에 기반한 폴란드를 부활시키려는 우익세력간의. 1963년 저항군의 마지막 병사가 사살될 때까지 저항군 8608명이 전사하고 7만9000여명이 체포됐다. 폴란드 공산정권의 군인과 보안군은 1만 2000여명이 전사했다. 소련군도 1000여명이 죽었다. 이 사이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마지막 병사 유제프 프란차크를 다룬 영화다. 제목 '저주받은 병사'(콘라드 렉키 감독)는 공산정권에 저항했던 폴란드 저항군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저주 받는 병사'였다. 그들은 나치 독일과 싸우다가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다시 소련 및 폴란드 공산정권의 군대와 싸워야 했다. 스스로는 폴란드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한다고 자부했지만 오랜 전쟁에 지친 민중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공산정권을 받아들였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빨치산'의 삶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이 영화 속 유제프와 그의 동료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앞부분에서만 해도 제대로 된 군복과 군장을 갖추고 있던 그들은 점차 숫자가 줄어들고 입고 있는 옷도 민간인 복장으로 바뀌어 간다.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동료들끼리 배신하고....

진압군에 쫓기면서 유제프는 일기를 쓴다.  그는 "견디기 힘든 것은 악과 맞서는 내가 악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탄식하고, "외롭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리고 1963년, 보안대에 포위되어 사살된다. 그의 아내 역시 공안부(비밀경찰)의 핍박을 받다가 살해된다.

그리고 화면이 바뀐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저항군 진압에 가담했던 보안대원이 재판에 회부된다. 처음에는 발뺌하던 그는 증거가 제시되자 이렇게 말한다.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때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항군들의 시신들이 잇따라 발견되는 가운데, TV에 나온 국회의원은 저항군을 '숲속의 보이스카우트'라고 칭하면서 "이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제프의 아들은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대통령은 "폴란드공화국은 영웅을 너무 늦게 발견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손에는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이 쥐어져 있다. 아버지는 일기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편지를 남기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 곁에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어른이 됐을 때는 폴란드가 더 나은 나라이기를 바란다."

영화는 무겁다. 폴란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보기 어려운데다가, 영화 자체가 불친절하다. 스토리 라인을 챙겨주기보다는 나치 하에서 6년, 공산정권 하에서 18년을 레지스탕스활동만 하다가 죽어간 사나이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주려 한다.

영화는 그래도 소련 해체 이후 자유와 독립을 되찾은 폴란드가 영웅을 발견하고 상응하는 예우를 해 주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반공저항군들은 대개 민족주의자였지만, 이는 그들에게 파시스트적인 속성이 상당히 내재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은 일부 지역에서 유대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시인들을 학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국가 건설 방향을 놓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내전을 치른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는 것,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아직도 다투고 있는 것도 우리만이 아니라는 것, 역사는 두부 자르듯이 일도양단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