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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가객 김광석이 21년만에 대중 앞으로 돌아왔다

21년전 김광석 죽음을 기사로 쓴 기자가 보는 이 사건의 관전 포인트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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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의 추억1-김광석>
 
김광석이 21년만에 대중 앞으로 살아돌아왔다
 
21년전 김광석 죽음을 기사로 쓴 기자가 보는 이 사건의 관전 포인트
 
정치를 생물(生物)이라고 한다. 언제 어떻게 지형이 바뀔지 모른다는 뜻이다. 나는 1988 46일 조선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올해로 30년차, 정확히 295개월이 넘었다. 정치가 생물이듯, 사건도 생물이라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고있다. 21년전 쓴 기사가 <조선닷컴> 등에 사진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먼저 당시의 기사를 원문(原文) 그대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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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거리에서」란 노래를 유행시켰던 인기가수 김광석씨(32) 6일 새벽 4시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기 집 거실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단채 숨져 있는 것을 부인 서모씨(31)가 발견했다. < 관련기사 29 >
 
부인 서씨는 경찰에서 『전날 밤 1150분쯤 귀가한 남편과 함께 맥주 3병을 마시다 안방으로 잠을 자기위해 들어갔다가 새벽 4시쯤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거실로 나왔더니 남편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전깃줄로 목을 매단채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마포경찰서는 ▲김씨의 몸에 외상이 전혀 없고 ▲김씨가 평소 심한 조울증에 시달려왔으며 ▲유학을 떠날 예정인 부인과 가끔 다툰 적이 있다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에 따라 김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김씨의 부검을 의뢰키로 했다. < 문갑식-리지형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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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내가 1996년 서울 마포경찰서에경찰기자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가객(歌客)이라고 불리는 고 김광석을 21년만에 살려내 세상의 이목 속으로 소환한 사람은 이상호 전 MBC기자다. 이 기자는 지금 고발뉴스 대표라고 하는데 나보다는 같은 대학 출신에 4년 후배이며 당시에는 마포경찰서 수습기자였다.
고 김광석의 사망 일보(一報)는 지금봐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첫째 그는 전깃줄로 목을 매단채 숨져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참으로 인간이 취하기 힘든 자세인 것이다. 현장을 본 기자에 따르면 그는 계단 난간에 전깃줄을 걸고 나머지 전깃줄을 목에 감고 있었는데 그런 자세를 취하기는 상상하기 꽤 곤란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은평구에서 자살사건이 일어났는데 사망자는 도저히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크기의 작은 세탁기안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일부러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기 힘든 그런 곳에서도 자살은 이뤄진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둘째 위의 기사처럼 그의 사체에는 외상(外傷)이 없었다.
셋째 그는 평소 심한 조울증에 시달렸다는데 그것도 논란이 있다.
넷째남편과 함께 맥주 3병을 마시다 안방으로 잠을 자기 위해 들어갔다는 아내 서씨의 진술은 훗날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어쨌든 이런 의문에도 고 김광석의 기사는 이틀 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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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경기도 벽제에서 화장(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른 인기가수 고 김광석씨(32)의 몸에서 대형 사리 10()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일 새벽 4시쯤 자기 집 거실에서 전기줄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김씨의 화장의식은 법정 스님을 비롯、 새미 스님 등 3명의 승려와 친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김씨의 부인 서해순씨(31) 9일 『화장을 끝마치고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름 0.60.5cm 크기의 커다란 사리 10개가 나와 참석자들이 모두 놀랐다』고 말했다. < 문갑식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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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이후 대부분의 기자들은 김광석을 잊었다. 그의 노래를 잊었다기 보다 그의 사건에 대해 잊은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몇몇이 그의 처를 의심했으나 당시에도 그의 처는 대가 세,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소송을 걸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연조가 어린 경찰기자들은소송이라는 말에 겁을 먹기 마련이다.
그렇게 세월이 20년 넘게 흘렀는데 당시 나와 함께 이 사건을 취재했던 이상호 기자가 영화김광석을 들고 나와 이제 김광석 사건은 미궁(迷宮)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수사의 대상이 됐다. 그 결말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이상호 기자가 영화에서 주장한 새로운 사실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이상호 기자는 고 김광석의 아내가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다고 밝혔다.
방에서 TV를 보다가 거실에 나가보니 남편이 죽어있었다-거실에 나가보니 남편이 계단에서 자고 있어 이불을 덮어줬다-실수였다. 그건 장난치다가 사고로 그런 것이다-술에 만취돼있었다-3병이 아니라 맥주 1병을 마셨을 뿐이다로 바뀐 것이다.
둘째 이상호 기자는 고 김광석의 아내가 숨진 남편이 목에 여러 차례 전깃줄을 감고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정작 경찰이 왔을 때는 전깃줄이 풀려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광석의 아내는 너무 놀라서 그걸 풀었다고 했다.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김광석의 목 뒤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자살이라면 목 앞뒷부분에 전부 흔적이 있어야한다. 만일 앞에만 흔적이 있고 뒤는 멀쩡하다면 누군가 뒤에서 줄을 잡고 졸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라고 한다.
셋째 김광석이 자살했다면 그 원인이 문제인데 김광석의 여자 문제가 부부 갈등을 일으켰다는 설()과 정반대로 김씨의 아내 서씨가 다른 남자를 사귀어서 부부 갈등이 벌어졌다는 설이 있다.
김광석의 여자 문제와 관련, 아내 서씨는 이상호기자에게 김광석이 사망한 후 7년 뒤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김광석이 복잡한 인생을 끝내고 싶어했다. 깔끔하게 가고 싶어했다. 그런 것을 눈빛으로 나에게 말해왔다.’
이 말은 김광석이 남긴 일기장에서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김광석이 남긴 일기장에는 생전에 김광석이 아내와 함께 미국 LA에 갔는데 아내가 24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된 일이 기록돼있다고 한다. 밤새 아내를 찾다 실패한 김광석은 잠도 못잔 채 무대 위에 올랐는데 나중에 충격을 받게된다.
알고보니 아내가 미국에서 처음만난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남자는 김광석의 고교동창이었으며 아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에서 만난 김광석의 남자친구에게 사적인 감정이 담긴 쪽지를 썼는데 이 사실을 김광석이 알아챘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상호 기자가 입수한 일기장에 있다고 한다.
넷째 김광석의 아내가 김광석과 결혼 전에 이미 한차례 이혼한 경력이 있었지만 이런 사실을 숨겨왔고 유산시기를 놓쳐 임신 9개월된 영아를 출산한 뒤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김광석은 이혼을 결심했지만 아내 서씨는판권을 모두 내놓으라고 주장해 갈등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주장에 대해 아내 서씨는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관련자들에게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은 이상호 기자의 고발을 받아들여 재수사를 경찰에 지시했고 서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베일 속에 가려진 김광석의 사인(死因)과 함께 이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있다.
첫째 김광석의 유일한 혈육이 2007년 사망했다.
둘째 김광석의 아내는 그 딸을 내세우며 딸이 죽은 지 1년 뒤인 2008년 김광석이 남긴 저작권 소송에서 이겨 매년 거액을 받고 있다.
셋째 김광석의 아내가 현재 함께 살고있다는(정식 결혼을 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남자가 고 김광석과 아내의 갈등을 불러온 김광석의 고교 동창인지 여부가 가려져야한다.
넷째 김광석 아내의 오빠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명백히 밝혀져야한다.
그러고 보니 1995년말부터 1996년까지는 참으로 사건이 많았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격동의 시기였다. 김광석 사건이 있기 바로 두달전에는 댄스그룹 듀스의 김성재가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 역시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다음에는 이 사건을 다뤄보기로 한다.
문갑식 월간조선편집장

입력 : 2017.09.23

조회 : 1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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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세상읽기’

gsmoon@chosun.com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스포츠부-사회부-정치부를 거쳐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기자 당시 중국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삼풍백화점 참사-씨랜드 화재-대구지하철화재 등 대형사건의 현장을 누볐다.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기자로선 처음 현장에서 들어가기도 했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이 간다'같은 고정코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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