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궁금했다. 과연 한국이 이룬 발전이 이식받은 민주주의만으로 가능했던 걸까. 한국 민주주의를 말할 때 ‘이식받았다’는 표현을 쓴다.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를 보고 그 의문이 조금 풀렸다. <1919 필라델피아>는 올해 3월 초연이 전회 전석 매진됐다. 4월에 시작한 앵콜 공연 역시 큰 인기를 얻어, 3차 앵콜 공연이 결정됐다. 7월 15일, 용산아트홀에서 3차 앵콜 공연 첫회를 관람했다.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는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자유대회(1st Korean Congress)를 극화한 작품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 당시 미국의 수도였다. 1776년 7월 4일 영국 식민지 13개주 대표가 모여 미국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기록한 회의록을 기초로 하고, 당시 대회의 기획과 진행을 도왔던 조지 베네딕트 기자의 회고록을 보조 텍스트로 활용했다. 공식 회의 기록에 베네딕트의 기억이 어울려 극적 완성도가 더해졌다.

제1차 한인자유대회 회의록의 내용은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 주권재민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미국 대륙의회에서 결의한 독립선언서의 기본 사상이기도 하다.

서재필 박사

1919년 4월 14일 필라델피아 리틀시어터에는 서재필, 이승만, 유일한, 정한경, 민찬호를 비롯한 한인 대표 150여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위인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3·1운동과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호소문,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에 대한 결의, 양식이 있는 일본인에게 보내는 서한문을 작성하고 선언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을 극중극 형식으로, 서재필 박사의 차녀인 뮤리엘과 베네딕트 기자가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으로 부드럽게 다듬었다. 소설로 치면 사실성이 짙은 팩션이라 할 수 있겠다.

앵콜 공연 첫회차 객석은 관객들로 붐볐다. 방학이라 그런지 중고등학생들이 관객석에 꽤 많았다. 공연의 내용이나 대사에 난해한 부분이 없어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을 듯 하다. 무엇보다 우리 선조들이 훗날의 독립을 생각하며 새나라,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정해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어떻게 만든 헌법인데 한국은 헌법을 바꾸며 헌법 전문에 손을 댔다. 이건 아주 좋지 않다. 헌법 전문은 헌법 제정의 목적과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나아가려는 방향을 담는다. 때론 본문보다 더 중시된다. 미국과 독일은 여러번 개헌을 하면서도 전문엔 손을 대지 않았다. 독일은 1948년 이후 40여차례 개헌을 했다. 전문에 손을 댄건 단 한 차례다. 뭘 바꿨는가 하면, 통일 직후 ‘통일을 성취할 사명’을 ‘통일을 완성했다’로 고쳤다. 사실상 수정을 안한거나 다름없다. 한국은 9차례 개헌을 하며 전문을 4번 바꿨다.

공연을 보며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첫째, 여성 참정권이다. 한인대회에는 노디김(김혜숙) 등 여성들이 참여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920년에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가 통과되며 비로소 확립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권을 잃은 나라의 여성들이 조국의 미래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무척 감명깊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의 도움이다. 한인대회의 기획과 진행을 도운 베네딕트 기자 등 유대인 지도자들이 타국에서 한국(조선)의 독립을 응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눈에 띄었다. 각종 보수성향 집회에 이스라엘 국기가 왜 등장하는지 약간 의문이었는데, 이해가 가는 듯도 하다. 서재필 박사 역을 맡은 배우 이지형 등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도 눈에 띄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 관람해도 좋겠다. 공연 중간에 찬송가 선율이 나오는 등 기독교 색채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이 주된 줄거리이기에 그리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무엇보다 진영논리에 휩쓸려 금배지를 볼모로 칼춤을 추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원들, 용산의 어느 공무원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