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시스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이 ‘당원권 6개월 정지’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 대표와 현재 그를 감싸는 하태경 의원 등은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새누리당을 뛰쳐나기 '개혁보수신당(개보신당)'을 만들고, 이후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소속으로 활동한 자들이다. 이들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대통합’이란 핑계로 당시 미래통합당으로 합류했다.
현재 이준석 대표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에 반발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어김없이 이들 ‘새로운보수당’ 출신이다. 이들은 소위 ‘유승민계’로 불린다.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 대표는 ‘유승민계’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특정 사건이 있을 때마다 ‘뜻’을 같이 하고, 비슷한 주장을 계속 하고, 함께 행동하는 게 정치 계파의 ‘속성’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분명히 한통속이라고 할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9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소재 아트센터 달에서 열린 자신의 책 관련 행사에서 ‘이준석 징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과 상식에 기반해서 일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윤리위가 의혹만 가지고 중징계를 내렸다”며 “이게 조폭들이 하는 일과 뭐가 다르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유승민 전 의원은 “핵심이 성 상납 의혹이었는데 윤리위가 조사조차 안 한 것”이라며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윤리위 결정이 얼마나 우스운 거냐. 윤리위와 윤핵관들은 엄청난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엄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에는 설득력 있는 논거가 없다. 만일 ‘이준석 징계’ 결정을 내린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 불공정 요소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나서 비판해야 하는데 유 전 의원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당규 제3 조에 명시된 ‘공정 및 비밀유지의 의무’를 어긴 윤리위원이 있다거나, 그런 요소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도중에 규정에 따라 그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각종 언론 매체에 출연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전을 펼치며 사실상 당 윤리위원회를 압박하는 듯한 언행을 이어간 이 대표가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유승민 전 의원은 당 윤리위의 ‘이준석 징계’에 대해 ‘진실’ 운운하며 “의혹만 갖고 중징계를 내렸다”고 반발했는데, 이 역시 과거 논리적이지 못하다. 과거 유 전 의원의 언행과도 전면 배치된다. 당 윤리위원회는 특정인의 위법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당 윤리위원회는 법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런 사실을 국회의원을 네 차례 하면서, 여당 원내대표, 야당 당 대표까지 지낸 유 전 의원이 모를 수가 있을까.
예를 들어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징계 사유인 ‘품위 유지 의무 위반’도 법적으로 따지고 보면, 불법 또는 위법이 아니다. 국민의힘 ‘윤리규칙’에 따른 ‘품위 유지’ 내용을 보면 그렇다. 당 대표가 예의를 지키지 않고,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히 당 윤리규칙상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또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한 것 역시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윤리규칙에서 당원에게 요구하는 ‘품위 유지’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즉,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이번에 내린 징계 결정은 과거 이준석 대표가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로부터 성 상납 또는 성 접대를 받았다고 일각에서 제기한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해당 의혹이 제기된 후 이 대표와 소위 ‘이준석 핵심 관계자(이핵관)’인 김철근 정무실장이 저지른 일련의 행동들 때문이다. 결정적으로는 ‘이핵관’ 김 실장이 ‘이준석 성 상납 의혹’ 제보자에게 뜬금없이 ‘7억원 투자 유치 각서’를 써 준 점과 관련해서 이 대표의 연관성을 전면 배제하는 것은 상식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사실 관계를 외면한 채, 유승민 전 의원은 ‘진실’ 운운하면서 ‘이준석 성 상납 의혹’의 진상을 밝히지도 못했으면서 윤리위가 부당 징계를 내렸다는 식의 주장을 해대는 것인가.
또, 유승민 전 의원은 2016년 10월 24일 JTBC의 소위 ‘최순실 태블릿’ 보도 이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 전 의원은 분명히 이준석 대표 징계와 관련해서 “의혹만 갖고 중징계를 내렸다”는 식으로 불만을 제기했으나, 과거 그의 언행을 보면 유 전 의원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다음은 2016년 10월~11월 당시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쏟아냈던 주장들이다.
“증거가 이제 다 나왔다. 최근 사태를 보면서 ‘이건 정말 나라도 아니다’는 생각을 나도 한다.” (2016년 10월 25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보도 관련)
“이 문제는 대통령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모든 진실을 국민 앞에 그대로 밝히고 사죄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다음에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느냐, 대통령이 어떻게 되느냐는 국민 뜻에 달렸다.” (2016년 11월 2일)
“대통령에게 5년간 한시적 권력을 위임해 국가 일을 돌보라 했는데 그 권력이 아주머니한테 넘어가 장차관 인사하고 재벌 돈 모으고, 딸 부정입학시키고 이런 데 분노가 일어난 것”(2016년 11월 3일)
“대통령께서 권한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포함해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 결단해야 한다.” (2016년 11월 13일)
“이런 사태를 겪고도 아무런 변화도 없이 똑같은 세상이 오면 국민은 크게 실망할 것. 모든 진실을 밝혀내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고 이후 정치권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 (2016년 11월 16일)
당시까지는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서 검찰의 수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기간, 유승민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향해 쏟아낸 각종 비판의 근거는 사실상 언론의 의혹 제기 또는 정치권 인사들의 ‘카더라 통신’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는 “사죄하라” “용서를 구하라” “결단하라” “법의 심판”을 운운했다.
그럼 왜 당시 유승민 전 의원은 ‘의혹’만 가지고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을까. 뭐가 그리 급해서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정치혁명’을 부르짖었을까. 의혹만 갖고 국가원수·행정부 수반·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권한을 완전히 내려놔라”고 한 유 전 의원의 당시 요구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었을까.
유승민 전 의원의 이 같은 과거 행태를 고려하면, 다른 사람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그는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윤리위가 의혹만 가지고 중징계를 내렸다. 이게 조폭들이 하는 일과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이준석 징계’를 비난하는 언행은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