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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전시] 운경고택 전시 ‘최정화:당신은 나의 집’

서울 사직동 운경고택에서 6월 17일까지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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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아줌마_03.jpg

<천하대장군 아줌마>

 

 

사직단 돌담길 옆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단정한 고택이 지금 기다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올 당신을. 서울 사직동 운경고택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최정화:당신은 나의 집’ 얘기다. 최정화는 미술에서 시작해 공예, 영화, 공연, 국제 스포츠 행사, 건축에까지 예술의 지경을 넓혀온 작가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그가 이번엔 고택에서 난장을 벌인다.


운경고택은 12대 국회의장이었던 운경 이재형(1914~1992) 선생이 생전 기거했던 한옥집이다. 도정궁이 있던 자리에 들어서 있다. 도정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그의 사손(嗣孫)이 살던 궁이다. 운경도 선조의 후손이다.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의 10대손이다.

운경은 1953년 조상이 살던 곳에 들어선 한옥으로 돌아왔다. 300여평 남짓한 대지에 안채와 연못, 사랑채와 대문채가 아늑히 자리한 공간이다. 사랑채 현판에 쓰인 긍구당(肯構堂)이 운경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긍구당은 서경(書經)에서 따 온 귀절로,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 받는다는 뜻이다. 운경은 조상의 터전이었던 그 곳에서 나라의 안녕과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꿈꿨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엔 자손들이 그의 뜻을 이루고 있다. 비영리 공익재단인 운경재단을 통해서다. 강창희 전 국회 의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돕는 장학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사업을 꾸려왔던 운경고택이 최근 들어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문화 행사를 통해서다. ‘최정화:당신은 나의 집’ 운경고택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다.

전시 기간동안 운경고택은 미술과 소설이 결합한 독특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최영 소설가가 전시장을 배경으로 소설 '춘야(春夜)‘를 썼다. 복지오 교수(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에서 따온 이름이다)가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끼고 떠올린 상념과 기억이 작품 해설과 함께 녹아들어 있다.


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어느 오후, 전시장을 찾았다. 대문을 열고 고택에 들어서니, 두 명의 경찰이 기다리고 있다. 본능적으로 교통 경찰을 등신대로 본뜬 마네킹이다. 최정화의 작품 (1998). 원래 교통사고 다발 지역에 설치했으나 설치 후 사고가 더 빈번해져 퇴출된 사연이 있다. 경찰들 사이에 서서 천천히 전경을 살펴봤다. 한옥 곳곳에 작품들이 무심한 듯, 사려깊게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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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21세기> 

 

이미혜 운경재단 이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랑채로 들어섰다. 방안 가득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그 위엔 승리의 여신들이 서있다. <나의 아름다운 21세기> 플라스틱은 최정화의 작품세계에서 주연급 소재다. 아니, 플라스틱은 우리 삶전체에서 가장 주요한 배경 물질이다. 인류의 과거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나눈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 불러야 한다고 할 정도다.

최정화는 플라스틱 중에서도 시장표 플라스틱 상품들, 버려진 플라스틱 제품들에 주목해왔다. 원색의 소쿠리를 쌓고 버려진 플라스틱을 숲처럼 배치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어떤 감성을 표현했다. 그 풍경은 색채 대비가 주는 생명력과 함께 묘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어린 어떤 기억들 때문일까. 우리는 플라스틱을 경멸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엔 태어난 직후부터 죽기 직전까지 플라스틱에 의존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젖병, 유모차, 우산,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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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안채로 들어섰다. <인피니티> 같은 작품이 눈에 띈다. 전시는 안채의 한 구석방으로 이어졌다. 안채의 창고방으로 쓰였을 것 같은, 입구가 좁은 방이다. 그 안이 우주가 되어 있다. (2022)다.


천장이며 벽, 바닥 모두 은색으로 반짝거린다. 공중엔 색색의 구슬들이 줄에 꿰어 걸려 있다. 못을 박거나 해서 걸어놓은게 아니다. 한옥 벽체에 손상이 안가도록 방에 맞게 아예 틀을 짰다고 한다. 좁은 입구 탓에 상체를 아무리 기울여도 보이는 공간엔 한계가 있다. 우주의 전모를 전부 파악한다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시도. 눈을 떼기 힘들만큼 이채롭고 영롱한 광경 탓일까,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일상의 감각이 눅어졌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화엄경’(박노해의 시 ‘인다라의 구슬’中)


석기 시대든, 청동기 시대든 인류는 일상용품을 만드는 기술이 손에 익으면 제의 용품을 만들었다. 돌로 만든 무기, 청동 거울 등이다. 최정화는 버려진 일상의 조각들로 플라스틱 시대의 제의 용품을 만들고 있구나, 그의 작품이 플라스틱 제석천으로 보인 이유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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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너도 너 없는 나도>

 

사랑채와 안채를 둘러본 뒤 안채의 뒤편으로 향했다. 오솔길의 중간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 있었다. 그 옆엔 커다란 배추가 서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서 있는게 아니라 숨을 쉬고 있었다. 모터가 달려있어 움츠러들었다 다시 일어나는 모양새가 꼭 살아있는 것 같다. 작품 <나 없는 너도 너 없는 나도>다. 문득 생뚱맞게도 우크라이나가 떠올랐다.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폭탄을 떨어트리는 세상의 한쪽 끝에서 나는 플라스틱 배추에게서 위안을 받고 있다.

 


실크로드와 고택_01.jpg

<실크로드>

 

마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금색, 보라색, 빨강색이 강렬히 빛난다. 작품 <실크로드>다. 소설 <춘야>의 복지오는 <실크로드>를 보며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야구르트 아줌마’였다.

‘엄마의 리어카는 신전이었다. 야쿠르트는 신전 기둥이 되어 솟아 올랐다.’


나는 나를 떠올렸다. 그리스 신전의 일부처럼 보이는 화려한 기둥과 그 밑을 떠받치고 있는 리어카를 보며, 배금주의적 욕망을 싣고 가는 내 평범한 몸뚱이를 생각했다. 저 존재의 주체는 신전 기둥일까, 리어카일까. 복잡해지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둥은 영원히 풍화되지 않을 듯이 서 있었다.


마당의 다른 쪽 끝에 오후의 햇살이 반사되고 있다. 다가가보니 세로로 긴 커다란 거울이다. 전체에 금이 가 있었다. 작품 <풍風경鏡>(2020)이다. 가장 고택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 그 곳에 서있는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신기했다.


깨진 거울 속은 현실과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다. 다른 세계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이 작품을 두고 최 작가와 이사장은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아무리 작품이라도 깨진 거울을 집 안에 들이는게 괜찮은가 하는 이유에서였다. 이미혜 이사의 설명을 들으며 거울을 응시했다. 깨진 거울 속 고택은 내가 방금 둘러본 그 운경 고택이 아니다. 바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체되고 재구성된 익숙한 낯선 공간. 혁신은 파괴를 거쳐 나온다.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번은 친숙한 집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문지방을 밟으며 방문을 지나고, 등 뒤에서 닫히는 대문 소리를 들을 때 영혼의 가장 바깥쪽 허물이 찢어지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운경의 3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다. 최정화 작가에겐 작품 활동 30년을 돌아보는 ‘미니 회고전’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들과 신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최영의 소설 <춘야>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작품이다. 전시를 본 후 마당에 놓여있는 의자(역시 최 작가의 작품이다)에 앉아 소설을 읽어도 좋겠다. 복지오의 눈으로 전시를 재관람할 수 있다.

 


운경 고택엔 운경의 사유와 그에 대한 자손들의 추억이 놓여 있다. 최정화의 작품은 낚싯대에 달린 루어(플라스틱이나 쇠로 만든 미끼)처럼 관람자를 한순간 낚아채 각자의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 발길질 한 번으로 부숴질 것 같은 약한 물성이 많은 이의 기억을 꿋꿋이 짊어지고 있다. 최정화의 작품이 어쩐지 오랜 후에도 현대적일 것 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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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 속의 어떤 광경을 되살리려 걷고 뛰며 지구 위를 살아간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 생일 케익에 꽂혀있던 촛불, 귀가를 축하하는 강아지의 몸짓. 소중한 것들은 집에 있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 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의 집이 되고 싶다. 순전히 고백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당신 안에 내 귀중한 기억들이 놓여있다고. 그러므로 당신은 나의 집이라고.

 


이번 전시를 보려면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네이버에서 ‘운경고택’을 검색하면 된다. 하루 5회 관람할 수 있다. 회당 최대 16명이, 1시간20분 동안 관람한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있는 도슨트와 함께해도 좋겠다. 전시는 6월 17일까지 열린다.

 

입력 :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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