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월 28일 포항시청 광장 유세에서 “똑같은 조선(임금)인데 선조는 외부의 침략을 허용해 수백만 백성이 죽게 했고 정조는 조선을 부흥시켰다. 이것이 리더의 자질과 역량”이라고 주장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불러들이고 이순신을 시기했던 못난 임금, 정조는 조선을 부흥시킨 개혁군주, 중흥군주라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인 역사인식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선조나 정조를 다룬 대중소설, TV드라마가 하나 둘이 아니다.
물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이 올바른 인식인지는 의문이다.
선조가 일본의 침략 위협에 좀 더 잘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물론 있다. 하지만 선조는 일본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지자 통신사를 보내 일본 사정을 알아보게 했고, 남부 지역의 성곽을 보수했으며, 대간(臺諫)의 반대에도 이순신을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적으로 끌어올려 발탁했다. 이러한 노력이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선조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이순신의 경우에서 보듯 선조의 전쟁 대비 노력이 기대 이상의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선조가 더 잘하지 못했던 것은 군비를 갖출만한 재력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서였는데, 그건 선조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 유일 시스템 때문이었다.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갔다고 비난하지만, 그러면 선조가 한양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되거나 전사했어야 하나? 그러면 보기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나라는 망하는 거였다. 오히려 선조는 의주까지 파천(播遷)하고 명나라군에 머리를 숙이는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켜냈다고 봐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정조가 개혁군주, 중흥군주라는 신화가 유포되었다. 대개는 1980년대 ‘군사정권’에 반발한 국사학자들이 문민정치, 조선 선비문화를 재조명하면서 ‘영-정조 르네상스’니 하는 관점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정설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조의 치세(治世)는 국사학자들이나 대중소설, TV드라마가 미화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정조는 재위 기간 내내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혔던 인물이다. 즉위 일성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고, 재위 기간 내내 아버지의 원수들을 쫓아내고, 아버지를 복권 시키고, 아버지의 묘소를 다시 짓고, 아버지 묘소 주위에 불요불급한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매달렸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외척 세력을 중용했고, 이는 그의 사후(死後) 안동김씨 60년 세도 독재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조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그러는 동안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정약용이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리다 못해 자기의 성기(性器)를 자른 사내의 일을 읊은 '애절양(哀絶陽)'이라는 한시(漢詩)를 지은 게 정조의 아들 때인 순조 3년이다. 정조가 조선을 부흥시켰으면 왜 그 잘난 정조가 죽은 지 불과 3년 만에 그런 비극이 벌어지나?
선조는 못난 임금, 정조는 개혁군주라는 것은 신화, 아니 미신에 불과하다. 정치 지도자가 역사를 알고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역사지식이 대중소설이나 TV사극 보고 습득한 수준이라면 민망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외교안보관을 보면, 과연 이 후보가 선조를 비웃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개인적 원한에 사로잡혀 ‘과거사’에만 매달렸던 정조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