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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우리 시대의 스승, 이어령 선생(1933~2022)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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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저녁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삼가 위로의 말씀 드린다.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선생님 책을 많이 보았고 감화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의 큰 스승이신데 황망하게 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호적상 1934년생)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를,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선생은 언론과도 인연이 깊다. 1960년부터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1972∼73년에는 《경향신문》 파리특파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식전 문화행사, 대전 엑스포의 문화행사 리사이클관을 주도했으며 초대 문화부 장관(재임 1989.12~1991.12)을 지냈다.


그는 60년 이상 평론과 소설, 희곡, 에세이, 시, 문화 비평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써왔다. 대표 저서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생명이 자본이다》 《가위바위보 문명론》 《보자기 인문학》 《언어로 세운 집》 《지의 최전선》 《한국인 이야기-탄생 편》등이 있다.

 

선생이 남긴 족적은 연대기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20대 - 《저항의 문학》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다.

  30대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한국을 놀라게 했다.

  40대 -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을 놀라게 했다.

  50대 - ‘벽을 넘어서’를 기치로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기획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60대 -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슬로건으로 IT 강국의 정신적 기반을 제시 했다.

  70대 - ‘디지로그 선언’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 융합을 통해 인류의 인간적 미래를 제 시했다.

  80대 - ‘한국인 이야기’로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분석하여 우리가 생명화 시대의 주역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길고 길었던 지적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집필 중이었다. 현재 제1권 ‘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 편이 2020년 2월 발간됐다.

또 2021년 10월부터 《월간조선》에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를 연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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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대해 생전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내가 7대의 컴퓨터를 놓고 작업하는 것으로 알지만, 그게 다 무용지물이 된 것이지요. 만 권의 책이 있으면 뭘 합니까. 돋보기로도 보기 힘들지요.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내 가물거리는 기억력과 구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니 그 원고가 내 마음에 들 리 있겠습니까. 옛날 원고지에 쓴 글 같았으면 북북 찢어 버렸겠지만, 이건 만져볼 수도 없는 컴퓨터 속의 파일들이 아닙니까. 여러 조력자의 땀방울이 물거품이 되는 병고보다 더 아픈 내상을 입게 된 거죠.”


《월간조선》과 시작한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5회 연재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인 이야기’에 대한 선생의 열정은 “인류 역사의 원형이, 그 시작이 꼬부랑 할머니에서 비롯된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옛적 고리짝 옛말에’와 같은 인류 최초의 할머니인 꼬부랑 할머니는 21세기 이야기 속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꼬부랑 할머니라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미토콘드리아 같은 최초의 할머니야. 그 시원(始原)의 형상이 남아 있는 게 우리의 상징계 속에서는, 딴 동요 다 잊어버려도, 지금도 아이들이 부르는 ‘꼬부랑길 이야기’란 거지.


그런데 그 할머니가 뭘 해? 꼬부랑 똥을 눠. 배설한다고…. 인공지능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러니까 인조인간을 만든 시조(始祖)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1709~1782)이 아무리 사람처럼, 근육이나 호흡까지 닮은 ‘피리 부는 사람’을 만들어도 마지막 배설하는 오리를 만들다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 똥 누는 ‘로봇 오리’는 못 만들어. 생명이 뭐야? 먹고 싸는 거야. AI나 기계는 생명이 없어.


하지만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고 점점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똥이니 욕이니 나쁜 것처럼 여기잖아. 그래도 그 욕이 꼬부랑 할머니의 세계로 들어서면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금기(禁忌)가 현실공간에서 시민권 대접을 받잖아.


또 막문화로 막사발, 막걸리, 막말…. 정사(正射)에서 벗어난 ‘막이야기’가 우리 토박이 문화에서는 생명력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어요. 어쩌면 세계가 열광하는 BTS(방탄소년단)의 몸짓도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막춤의 전통과 관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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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꼬부랑 할머니의 찬가인 ‘꼬부랑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노래는 끝이 없는 ‘네버 엔딩 스토리’였다.


“많은 버전이 있지만 우리의 상징계의 원형을 이루는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지팡이랑,

  꼬부랑 강아지랑, 꼬부랑 토끼랑,

  꼬부랑 다람쥐랑, 꼬부랑 황새랑,

  꼬부랑 나무랑, 꼬부랑 여우랑,

  꼬부랑 칡덩굴이랑 모두 모여

  꼬부랑 노래를 꼬부랑꼬부랑 부르며,

  꼬부랑 춤을 꼬부랑꼬부랑 추고,

  꼬부랑 떡을 꼬부랑꼬부랑

  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바로 이것이 자연계와 상징계와 법·제도의 사회가 오늘까지 이르게 한 핵심적인 키워드가 되는 것이지.”


말년에 선생은 무척 외로워하였다. 어느 지인이 10대 손자를 데리고 왔길래 그의 저서에다 사인을 해줬더니 몇 장 들춰보다 말고 ‘할아버지 글 잘 쓰시네요’ 하더란다.

책도 방송도 안 보는 애들이라 선생이 누군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선생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나만 섬처럼 남았구나.’

 

그러나 선생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대통령이 찾아오고, 정파와 상관없이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애도를 표하며 성명을 내고 조문을 왔다. 선생의 글을 읽었던 많은 국민이 우리 시대 큰 스승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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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 한쪽에 새겨진 이어령 선생의 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진다/ 어둡고 거친 흙 속으로 향하는 나뭇잎들을 본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피가 뜨거워질 때 잘 있거라 잘가라/ 인사말을 잘하고 떠나야 한다.’

입력 :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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