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내내 갓 채취한 생나물 신선함 그대로

“영월에 유배 온 단종이 맛보고는 정순왕후의 분향(粉香)을 떠올리며 즐겨 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져요. 그만큼 향이 좋죠. 나물밥을 지어도 좋지만 된장에 무치거나 들기름에 살짝 볶아도 여느 나물 못지않은 맛을 냅니다.”

‘박가네(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149)’를 운영하는 박금순(53) 대표는 어수리 예찬론자다. 영월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월만의 음식을 고민하던 중 찾게 된 어수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영월에는 어수리 재배 농가가 많았다. 산나물을 급속 냉동하는 시설도 갖춰 사계절 내내 갓 채취한 생나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곧장 어수리 연구에 들어갔다. 어수리가 궁중음식 재료로 쓰였다는 기록을 보고는 국가무형문화제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내친김에 궁중음식연구원의 전문 교육 과정도 수료했다. 

그렇게 어수리밥을 비롯해 김치, 무침, 장아찌, 전병, 잡채, 떡갈비 등 어수리를 재료로 한 다채로운 음식이 박 대표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지난해 11월에는 ‘영월군어수리나물연구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이끌며 영월 어수리를 알리고 더욱 체계적인 어수리 음식 연구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특유의 은은한 향··· 철따라 바뀌는 밑반찬도 별미

박가네는 원래 곤드레밥으로 유명했다. 주말과 휴가철이면 손님이 줄을 서는, 이미 오래전 소문난 맛집이지만 지난 2020년 5월 어수리밥을 시작하면서 곤드레밥 대신 아예 어수리밥을 대표 메뉴로 삼았다. 박가네에는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박 대표가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건 ‘어수리 더덕 정식(1만7000원)’이다. 

어수리밥에 더덕구이를 곁들인 상차림으로 반죽에 어수리를 갈아 넣어 부쳐낸 어수리전을 비롯해 시금치 대신 어수리를 넣어 만든 잡채, 무침, 장아찌, 전병, 떡갈비 등 다양한 어수리 요리가 함께 상에 오른다. 

밑반찬은 철따라 조금씩 바뀐다. 수확철마다 삼잎국화꽃나물, 곰취, 두릅, 가죽나물, 고사리 등 다채로운 나물 반찬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월 막장에 무청시래기를 넣고 끓여낸 된장찌개에도 자꾸만 손이 간다. 행여나 채소 위주 상차림이 아쉬울까봐 제육볶음도 한 접시 푸짐하게 내준다.

무쇠 가마솥에 지은 어수리밥은 초록 생나물의 색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눈이 먼저 즐겁다. 어수리 특유의 은은한 향 또한 입맛을 돋우는 요소다. 곤드레에 비해 식감이 부드러워 어르신들에게 특히 인기다. 고명 삼아 푸짐하게 올린 영월산 표고버섯과 감자도 어수리밥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몸에 좋은 건강식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박 대표는 “어수리는 동의보감에 피를 맑게 하는 식물로 기록돼있고 당뇨, 변비, 기침 등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식이섬유와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고 특히 각종 염증 완화에 좋은 건강식품”이라고 소개했다.

잘 비빈 어수리밥, 매콤달콤 더덕구이와 ‘찰떡궁합’

더덕구이는 양념과 함께 뚝배기에 담아 상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려 직접 볶아 먹을 수 있게 차려진다. 뚝배기에 볶으면 양념이 고루 잘 배이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 어수리 수확철인 4월 말~5월 초에는 더덕구이에 어수리 잎을 넣어 함께 볶아 더욱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어수리밥을 먹을 때 양념간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나물 본연의 맛을 헤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어수리밥에 양념간장 한 숟갈을 넣어 잘 비빈 뒤 구운 더덕을 얹어 먹는 게 박 대표가 추천하는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더덕 특유의 향과 식감이 어수리밥과 어우러지는 궁합이 근사하다.

박가네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는 이밖에도 다채롭다. 어수리밥에 불고기를 곁들인 ‘어수리 불고기 정식(2만2000원)’을 비롯해 ‘해천탕 오리 백숙(10만원)’ ‘능이 한방 토종닭 백숙(6만원)’ ‘묵은지 닭볶음탕(4만5000원)’ ‘오리 버섯 주물럭(6만원)’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메뉴다. 

캠핑장 등 숙소에서도 어수리밥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락 메뉴도 개발했다. 더덕구이를 곁들인 ‘어수리 정찬 도시락(1만5000원)’과 제육볶음을 더한 ‘어수리 정찬 도시락(1만2000원)’, 각종 나물 무침과 장아찌 등 밑반찬으로 구성한 ‘어수리 알찬 도시락(1만원)’ 등이 마련돼 있다.

박가네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오전 10시~오후 8시 문을 연다. 영월역에서 멀지 않아 기차로 영월에 간다면 고즈넉한 시골 역전 풍경을 구경하며 슬렁슬렁 걸어가기도 좋다. 어수리밥은 짓는 시간이 15~20분쯤 걸려 미리 예약을 하는 게 좋다. 문의 (033)375-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