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에 가려져 있는 북한을 두고 우리는 이런 저런 추측을 한다. 김정은의 건강 상태, 누군가가 숙청을 당했는지 아닌지. 정작 우리 안에 들어와 살고 있는 탈북인들, 그 중에서도 탈북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걸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수도에서 어린 아들과 엄마(한성옥 모자)가 굶어 죽은 일을 당하고도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죽어야만 관심을 주는 사회적 습성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탈북 여성인들을 돕는 모임인 통일맘연합회는 탈북여성의 삶을 추적해왔다. 중국을 거쳐 탈북한 탈북 여성들이 당한 일들을 고발하고,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증언을 듣고 기록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통일맘연합회는 이번엔 탈북여성과 그들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고발하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진미정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와 김희정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이 함께 취약한 인권상황에 놓인 탈북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을 조명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 221명과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남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연구진은 조사를 통해 탈북 여성들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을 실증적으로 파악했다.
연구팀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북한에서 시작된 불안한 여정이 현재 탈북여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남녀 성비가 불균형한 중국 혼인시장 때문에 탈북여성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북한여성을 유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브로커 등을 통해 전파된다. 중국 생활에 대한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가 전해지면서 탈북여성들은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국경을 넘는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굶주려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한성옥 모자의 분향소.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는 국경을 넘는 출발점부터 발생한다. 양적 연구 결과를 보면, 인신매매를 경험한 사례가 응답자의 90%에 해당하며, 국내 거주 중국인 남편들의 75.0%도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시장의 심각성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모든 인신매매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거래를 통해 이루어진 결혼은 부당한 노동, 가정폭력, 성폭력, 감시 등을 동반하기 쉽다. 동등한 입장에서 결혼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부터 불공정하고 위계적인 방식으로 관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신매매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북여성의 욕구가 존재하므로 관계성이 불안정하고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탈북여성 뿐 아니라 남편과 그 가족, 궁극적으로는 자녀까지 모든 가족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탈북여성과 중국남편은 항존하는 강제북송 위협에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심한 경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점 역시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를 통해 모두 확인되었다. 중국에 있었을 때는 물론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도 반복적으로 악몽을 꾸거나 불안함을 느낀다.
탈북여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남편과 가족들도 쫓기는 악몽을 꾸고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중국 남편들 열 명 중 여섯 명은 인신매매혼이나 강제북송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강력한 조치만 있다면 근절될 수 있다고 응답하였다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 조사 대상자들은 중국에 거주한 지 10년 이상 된 경우가 많았고,
인신매매혼이었지만 다행히 중국남편과 적응하여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과반수 이상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계속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미 중국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었고, 자녀를 키우고 있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 가족들이 중국에서 신분을 보장받고, 중국-북한 다문화가족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입국한 탈북여성들은 탈북과정에서 이중, 삼중의 가족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현재 삶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에 남겨 둔 원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나 중국에서 은신처를 제공했던 중국남편에 대한 책임감으로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가족에게 돈을 보낸다. 복잡한 가족관계에 대해 남에게 얘기하기 어려워 북한가족이나 중국가족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의논할 상대가 없이 혼자 감당한다. 특히, 이러한 일들이 현재 남편과의 관계나 현재 자녀와의 관계에 갈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한다.
연구결과를 분석한 후 이들은 세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하나원과 지역하나센터, 그리고 탈북자 단체 지원방법 변화다.
첫째 하나원의 변화다. 하나원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국정원 조사를 마친 후 6개
월간 정착지원 교육을 받는 기관인데, 앞으로는 북한정부의 탈북을 막는 강화정책으로 이런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을 탈북민은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원 정책은 한국사회 정착을 시작하는 소수 탈북민을 위한 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내 불법체류로 거주하는 탈북민 역시 가족이라는 족쇄 아닌 족쇄로 중국에 체류하는 것을 선택했고 2019년 한성옥 사건의 스토리가 와전되어 중국에 전달이 되며 한국행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현상들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원의 역할은 과거 탈북민의 정착실패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개선점이 필요하다. 탈북민의 한국정착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인 하나원의 운영은 다음 세 가지에 대한 새로운 프로그램 구성이 필수적이다. 1. 그들이 지나온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2. 사회에 대한 경험을 교육이 아니라 실전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중심의 현장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3. 건전한 가족문화에 대한 체험과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하나센터 개선이다.
1. 지역하나센터의 입국 5년 이내 탈북민만 이용한다는 기존의 이용제한을 낮추고 지역 내 탈북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함
2. 지역하나센터 내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되 단독운영이 아닌 탈북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나 보건소들과 소통하며 협력하여 탈북민의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 내 탈북민 관리에 정부를 대신하여 적극 나서서 운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함
3. 지역 내 탈북단체들과 소통을 통하여 사각지대 탈북민을 찾아내고 고독사와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할 시스템이 필요함
셋째, 탈북단체 지원정책 개선이다.
1.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의 예산집행을 위한 프로젝트 집행 기간에 탈북단체 운영비 지원과 대표와 임직원에 대한 인건비를 프로젝트 참여여부에 따라 지급하여 불안정한 탈북단체들 운영방식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의 시스템화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함
2.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의 예산집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예산집행 결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평가제도 시스템이 필요함
3. 비영리 민간단체 운영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현장에 맞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여 지자체와의 소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통일부 역할 개선이 필요
글=하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