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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오적어(烏賊魚)’ 대신 ‘오징어’로 썼을까

1920~30년대 《조선일보》 기사로 유추해 보니...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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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9년 7월 23일자에 실린 <오적어 풍어> 기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크게 유행하면서 오적어(烏賊魚)’라는 말이 종종 소셜 네트워크와 인터넷에 등장한다.

오징어와 오적어는 같은 말이다. 언제부터 오적어가 오징어로 변한 것일까. 우선 오적어를 풀이하자면 까마귀의 적(, 도둑)인 물고기라는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오징어는 해면에 죽은 체하고 떠 있다가 까마귀가 쪼러 들면 열개의 발로 얽어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 하여 붙어졌다는 설이 있다. (조선일보1992524일자 이규태 코너참조) 오적어가 오징어가 된 것은 부르기 쉽게 전설모음화하여 바뀌었다고 설명하는데, 언제 변했는지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일보1921616일자에 실린 <동경에 호군(虎軍) 침투>라는 기사에 오적어라는 단어가 나온다.

 

<수일젼에 호렬자가 비로쇼 발생한 신내쳔 진학빈(神奈川 眞鶴濱))에셔 오적어(烏賊魚) 여달마리를 사다가>

 

조선일보192474일자에 실린 <어기(漁期) 특이사항> 기사에도 오적어가 나온다.

 

<개야도 부근(開也島 附近)에는 오적어(烏賊魚)의 사유(泗游)가 다()하야>

 

조선일보1939723일자에 실린 <오적어 풍어> 기사에도 낙지와 동의어로 오적어가 등장한다.

 

<…【주문진(注文津)금춘(今春)에 청어와 정어리로 어항(漁港)의 경기(景氣)를 독점(獨占)하고 잇는 강원도 주문진항(江原道 注文津港)에 요지음 낙지(오적어(烏賊魚))의 대어(大漁)로서 다시 활기(活氣)를 띄우고 잇다.

이주(二週)간을 계속(繼續)하여 순조로히 잡히는 낙지는 십칠일(十七日)에는 무려 얼만이천 미의 대수량을 육양(陸揚)하엿다고 하며 시가(時價)는 일련(一連) (이십미(二十尾))삼십오전인대 이 고기는 말려서 술 안주감으로 가장 총애를 바드므로 지금 서조선(西朝鮮)과 북지(北支)에 인기적 진출(進出)이 되고 잇다 한다.>

 

이로 볼 때 일제 강점기 시절에 오징어 대신 오적어’를 일반적으로 썼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일보192847일자 <신학기에 어머니가 주의할 자녀들의 점심> 기사에 오증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기사의 문맥 상 오징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1929612일자 <어린애 버릇은 누가 그릇치나> 기사에 오징어가 처음 등장한다.

 

<한아버지한테 잔돈푼을 타서는 가지고 나가 장어다리, 오징어, 점북 가튼 고기를 사먹곤 들어왓습니다>

 

추측건대 1920년대 말부터 문어체 ‘오적어’와 함께 구어체 오징어가 일상에서 함께 쓰이다가, 점차 부르기 쉽고 말하기 편리한 오징어가 단어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오적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으로 유추해본다.

마른 오징어라는 뜻의 일본어 스루메라는 단어도 잠시 언급(조선일보 192648일자 상품시황) 되지만 언론에선 거의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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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쓴 지봉유설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는 단어가 실려 있다.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해를 넘기면 먹이 없어지고 빈 종이가 되듯이 믿지 못하거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뜻한다.

입력 :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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