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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신간] 이창복 外大 명예교수 “은퇴하고 20년 살아보니…”

에세이집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 펴내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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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 사진=월간조선DB

1세대 독문학자인 이창복(李昌馥)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김영사 간)이라는 멋진 제목의 에세이를 펴냈다. 이 교수는 늙음, 죽음, 행복, 고통, 사랑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40여 편의 글로 여전히 참 좋은노년의 삶을 사는 법을 들려준다.


이창복 교수는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엔지니어가 되고자 마음먹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서 마음의 소리에 따라 독문학을 선택하여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외대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면서 문학과 철학, 종교, 음악 등 다방면의 영역을 넘나들며, 융합하는 예술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미학적 고찰을 해왔다.


2003년 정년퇴임 후, 열 권의 책을 내겠다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글을 써서 2019년 열 번째 책 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을 출간했다. 여든다섯 살이 된 지금도 매일 서재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 고통의 해석, 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 독일 산문과 시, 독일 문학의 소재와 모티브, 하이너 뮐러 문학의 이해, 독일어 회화등이 있고, 역서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이너 뮐러 문학 선집외 다수가 있다.


이창복 교수는 교수 집안이다. 첫째는 한양대 철학과 이정복(李貞馥·작고) 명예교수, 셋째는 이창복 교수, 넷째는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이정춘(李正春) 명예교수, 다섯째는 베스트셀러 먼 나라 이웃나라를 쓴 덕성여대 이원복(李元馥) 전 총장이다. 다섯 아들 중 넷이 대학교수가 되었다. 둘째 이승복(李承馥·작고)은 공부 대신 사업을 택했다고 한다.


월간조선은 이창복 교수의 에세이집 어제보다 늙은, 내일보다 젊은에 실린 단편 <삶에는 은퇴가 없기에>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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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은퇴가 없기에

 

- 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


정년 퇴임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85세가 된 것이다. 내가 몸담았던 대학도 많이 변했다. 그곳 사람들이 낯설고, 캠퍼스 시설이나 분위기도 생소하며, 교육의 성향도 바뀌었다. 이 변화 속에 어느새 나는 내가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몸담았던 대학 문화에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공적, 사적 일로 1년에 서너 번 학교를 방문하면 소외감이나 이질감만 절실하게 느낄 뿐이다. 여기에 원망도, 감상도, 비관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연의 엄격한 순리일 뿐이다.


내가 나이 들어갈수록 옛 기억은 아름다워지고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 날 오스트레일리아의 동화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숀 탠의 매미를 읽는데, 한 구절이 대학을 떠나던 순간을 생각나게 했다.


17년 일한 매미가 은퇴한다.

파티는 없다.

악수도 없다.

상사는 책상을 치우라고 말한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유충으로 7년에서 길게는 17년까지 땅속에 살다가 지상에 나오면 바로 성충이 된다. 칙칙한 껍데기는 남겨두고 아직은 여린 몸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매미는 기적 같은 변태의 순간을 맞이한다. 매미에게 갈라진 날개가 생기고 나면, 매미는 날개를 힘차게 흔들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러고는 나무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노래 부르며 7일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나무껍질 속에 낳고는 생을 마감한다. 땅속에서 산 세월에 비해 바깥세상에서 보낸 삶은 너무나도 짧다.


이런 매미가 내 인생을 은유하는 게 아닐까? 나는 30년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면서 내가 가져갈 책, 제자들에게 나눠줄 책을 분류하며 책상을 치우고 연구실을 비워줄 때에야 비로소 은퇴를 실감하게 되었다. 직장과 사회생활 속의 고된 시간, 긴 세월 동안 느껴온 가족을 위한 책임감, 틀에 갇힌 것 같은 구속감,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 긴장감에 이제 안녕을 고할 때라 생각하며, 나는 새로운 생활의 시작에 대한 희망과 꿈의 화려한 날개를 힘차게 흔들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바로 매미가 변태하는 순간이다.


은퇴자의 변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생계와 자녀 교육 등 가정을 위해 자신의 취미나 적성을 포기하고 생업에 매달려왔다. 크게 일군 것은 없다 해도 그런대로 가정을 꾸려왔으니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워서 저녁에 멋있게 한 상 차리는 게 큰 즐거움이라 했다. 어떤 이는 그림이나 서예를 연마해서 개인전도 열고, 직접 그린 그림이나 한시로 연하장을 보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통기타도 배우고, 봉사활동도 하고, 여행을 하는 등으로 노년의 시간을 멋지게 보내는가 하면, 아예 낙향해서 살거나 산수가 수려한 곳에 집을 짓고 자연인으로 즐겁게 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사치스럽게 보이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꼭 그렇지는 않다. 두 번째 삶을 멋지고 즐겁게 사는 데 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함으로써 만년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려는 일관된 의지와 노력이다.


나 역시 두 번째 인생의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지겨운 책을 이제 그만 접고, 연구랍시고 억제했던 욕구를 마음껏 풀어 제치고 자유롭게, 멋있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착각은 자유라 했던가? 금세 자유는 방종으로, 멋은 추함으로 바뀌면서 내 삶의 모습도 바꾸어놓았다. 영락없는 삼식(三食)가 된 나는 아내 눈치 보기와 비위 맞추기에 익숙해져 갔다. 쓰레기 버리기, 빈 접시 나르기 등 아내의 잡다한 지시가 어느새 당연해졌다. TV 앞에서의 공허한 시간, 그로 인한 자괴감과 허무감, 그리고 음악 감상으로 자족하려는 낭만적 멜랑콜리, 이것들은 나를 나태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결국 아내는 내게 제발 서재로!” 라는 주방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자유로운 감방’(?)에서 나만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선 상상도 자유롭다. 감방이 괴테가 이번에는 기어이 끝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파우스트(Faust)원고의 먼지를 털어내고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만끽했던 조용한 천국의 한 구석으로 여겨졌다. 유학 시절부터 모아둔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1년에 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이 출간되었고, 2015년에는고통의 해석이란 책이 햇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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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복 교수가 은퇴 후 쓴 좋은 책들.


작업이 끝나면 또 새로 시작해야 생명줄을 이으며 오래 살 수 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는 죽음이 진지한 테마로 다가왔다. 노인이 되기 전에는 품위 있게 살려고 애써왔는데, 노년이 되고 보니 품위 있게 죽는 데에 마음이 더 쓰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해서 누구나 한번쯤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이 존재하니, 곧 죽음에 대한 연구는 삶에 대한 연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학, 예술은 물론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을 포괄하는 학문의 전역을 기웃거려야 한다.


맨 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으니 시간이 더 없이 귀중하게 여겨진다. 그래도 이 새로운 도전이 끝날 때까지 몇 년은 보장받은 기분이라 신명 나고 열정이 치솟았다. 허상이라 해도 좋으니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세우는 데 벽돌 하나를 놓고 싶었다. 마침내 4년이란 산고 끝에삶을 위한 죽음의 미학이 햇빛을 보았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 시간에 지배당하면 시간은 쓰나미처럼 내게 밀려와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이다. 무위로 보낸 시간의 찌꺼기는 공허한 삶의 쓰레기로 쌓이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니 후회 없이 시간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매일이 작은 인생이 아닌가! 오늘이 평생처럼 소중하다는 말이다. 이 소중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삶에 의미가 주어지고, 노년을 즐길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정신을 젊게 유지할 수 있다. 스페인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는 인간은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한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성숙해질 것이고 품격도 함께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인생을 젊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쉬는 자는 녹슨다. 삶에 은퇴는 없고, 늘 새로운 시작만 있어야 한다.

입력 :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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