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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여, 안녕!" 외친 중국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 타계

"지난 100년 동안 '혁명'으로 중국이 얻은 게 뭔가?"라는 의문 제기...중국계몽주의 이끌어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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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대표적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가 11월 2일 미국에서 타계했다. 향년 91세. 

1954년 베이징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중국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 교수, 전국인민대표대회 교과문형위원회 위원, 중화전국미학학회 부회장, 국제철학원(IIP)정식원사, 공자기금회 이사, 국무원학위위원회 철학학과 회원 등,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객좌교수와 홍콩 성시(城市)대학 객좌교수를 지냈다. 문화대혁명 때에는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객관적 시각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학자다. 1980년대 중국에서 ‘중국 계몽주의’라고 일컬어진 사상적 흐름을 이끌었다. 중국 본토보다는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아 프랑스에서는 국제철학아카데미에서 원사로 들어갔으며, 라캉, 데리다 등에 필적하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라는 평을 받았다.

기자는 철학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지만 오래 전 우연한 기회에 리쩌허우와 작가 류짜이푸(劉再復)의 대담집인 《고별혁명(告別革命)》을 발견,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혁명이여, 안녕!’을 외치는 책이다. 신해혁명, 공산혁명, 문화대혁명.... 20세기 내내 중국은 혁명을 ‘성물(聖物)’로 떠받들면서 그 난리를 쳤고, 수천만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지만, 그래서 중국이 얻은 게 뭐냐는 자성(自省)이다. 

리쩌허우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혁명은 물론이고 쑨원(孫文)의 신해혁명도 과연 필요한 것이었는지 묻는다. 심지어 그는 캉유웨이(康有爲)나 양치차오(梁啓超)가 생각했던 점진적 개혁과 입헌군주제가 실현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내비친다.  

리쩌허우와 류짜이푸는 ‘혁명의 저울’에 의존해온 역사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며, 21세기의 역사는 ‘개량(改良)의 저울’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량의 저울’에 필요한 것은 이성(理性), 법치(法治), 과학적 사고(思考) 같은 것들이다. 

리쩌허우의 이런 주장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리저허우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고별혁명'이라는 생각을 다듬고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의 변화에는 이에 대한 철학적 뒷받침이 수반된다는 생각, '문화대혁명'이라는 그 엄혹한 시대에 '고별혁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 그 지적(知的) 치열함에 숙연함을 느꼈다. 결국 그의 생각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에 대한 철학적 바탕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리쩌허우는 덩샤오핑 시대의 어용철학자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쩌허우는 공산혁명에 대해서도 “그게 정말 중국인들을 위해 필요했던 거야?”라고 의문을 던졌다. 때문에 그는 중국공산당 정권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리쩌허우는 1989년 천안문사태의 주역들을 비롯한 중국 민주화운동세력과도 거리를 두었다. 리쩌허우와 류짜이푸는 천안문사태 등의 민주화운동도 중국이 지난 100년간 벌여온 '혁명놀음'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천안문사태 이후 민주화운동세력으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다.

두 사람은 결국 이역만리 미국 콜로라도에 삶의 둥지를 틀었고, 리쩌허우는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절판된 지 오래인 책이지만, “혁명은 역사의 지름길이 아니었다”는 리쩌허우의 주장은 철지난 ‘혁명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큰 울림을 준다.

입력 :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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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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