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귀멸(鬼滅)의 칼날》을 보며 포퓰리즘과의 투쟁을 생각한다 : 월간조선

화제의 애니메이션 《귀멸(鬼滅)의 칼날》을 봤다. 《귀멸의 칼날》은 2016년부터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고토게 코요하루(吾峠呼世晴)의 작품이다. 일본 다이쇼(大正)시대 (1912~1926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이다.

숯을 구워 팔던 평범한 소년 카마도 탄지로는 혈귀(血鬼)들에게 가족을 잃은 후, 혈귀가 되어버린 동생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귀살대(鬼殺隊)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무술을 단련하고 혈귀들과 싸우면서 탄지로는 한 사람의 귀살대원으로서, 또 인간으로 성장해 나간다. 한 소년이 하나의 적(敵)을 퇴치하면 더 큰 적이 나타나고, 하나의 시련을 넘어서면 더 큰 시련이 닥쳐오지만, 이를 차례로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해나간다는 스토리는 일본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오자와 마사치(大澤眞幸) 박사는 《월간조선》 (2021년2월호) 인터뷰(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통해 생각하는 韓日 내셔널리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탄지로는 강한 인물이 아니다. 압도적으로 강한 흡혈귀에 맞서 싸우는 약한 캐릭터다. 그러나 인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흡혈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일본인이 주목하는 부분은, 인류를 위해 싸운다는 대의명분 또는 사명(使命)에 대한 부분이다. 일본인은 그러한 대의명분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싸운다는 데에 대해 공감하고, 감동을 느낀다.

사실 2021년을 사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러한 엄청난 명분을 만날 기회도 없고, 목숨을 걸 만한 일도 없다.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귀멸의 칼날》 같은 엄청난 스토리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동경(憧憬), 꿈의 대상으로서의 영화인 셈이다. 일본인 스스로가 탄지로의 입장에서 흡혈귀에 맞서는 느낌이다.”

《귀멸의 칼날》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중 <무한열차편>은 금년 1월 국내에서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인간을 귀신으로 만드는 혈귀(血鬼)들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귀살대(鬼殺隊)의 신참 대원 카마로 탄지로와 귀살대 고수 중 하나인 염주(炎主) 렌고쿠 교주로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에 등장하는 혈귀는 사람들을 달콤한 꿈에 빠뜨려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든다. 아니 달콤한 꿈을 꾸고 싶어하는 자들이 혈귀의 하수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렌타로 이하 귀살대원들도 주술에 걸려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혈귀들에게 희생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게 된 탄지로는 한 순간 자신이 꿈속에 있음을 깨닫고 그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속에서 자신의 목을 벰으로서 ‘각성’을 한다. ‘각성’한 탄지로와 귀살대원들은 혈귀와 치열한 싸움을 펼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는 듯 했다. 달콤한 꿈을 꾸게 해주겠다며 약한 인간들을 꾀는 혈귀는 퍼주기식 복지를 약속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그 약속에 넘어가 혈귀의 하수인이 되는 약한 인간들은 그 포퓰리스트들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는 우중(愚衆)들을 은유하는 듯 했다. 탄지로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꿈속에서) 자신의 목을 베는 것은 포퓰리즘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처절한 결단과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포퓰리즘의 특징은 ‘무책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책무를 다할 뿐! 여기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죽지 않는다!”라는 염주 렌고쿠의 결기는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 혈귀와의 싸움 끝에 최후를 맞이하게 된 렌고쿠는 자기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환영(幻影)을 보면서 “어머님. 저는 제대로 했을까요. 해야 할 일을 이뤄야 할 일을 완수했나요?”라고 묻는다. 어머니는 “아주 훌륭하게 잘했다”며 아들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위기에 빠진 탄지로 등을 구해낸 후 렌고쿠가 “주라면 누구여도 똑같이 했을 거다. 새싹을 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카마도 소년. 멧돼지 머리 소년. 노란 소년. 더욱, 더더욱 성장하거라. 그리고 다음에는 너희가 귀살대를 지탱하는 주가 되는 거다. 나는 믿고 있으마. 너희를 믿고 있으마”라는 렌고쿠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그의 말은 포퓰리즘에 맞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기나긴 투쟁임을 일깨워준다. 렌고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전국 곳곳의 귀살대원들은 그 뜻을 이어 혈귀들과 계속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꿈속에서 자신의 목을 베면서 ‘각성’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탄지로, ‘책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렌고쿠는 포퓰리즘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각성’과 ‘책임’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아,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더 있다. 열차를 포획했던 혈귀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항상 귀살대에게 죽는 것은 우리 같은 말단 혈귀들이고, 상현(상급 혈귀)들은 죽지 않는다”고....('대장동 의혹'으로 잡혀들어간 유동규씨도 지금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