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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작가가 말하는 소설 《충칭의 붉은 봄》 사용 설명서 ③<끝>

서명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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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아주 특별한 소설이 출간됐다. 《충칭의 붉은 봄》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게 중국 내부 권력투쟁을 포착한 다큐소설이다. 중국 전문가이자 여행작가인 슈퍼차이나연구소 서명수 대표의 실명 소설. 중국 권부의 실체를 파헤친 실록 다큐면서도 허구다. 작가는 이 소설의 설명서를 《월간조선》에 전해왔다.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보시라이와. 아들 보과과. 뒤는 부친 보이보. 사진=서고 출판사 제공.

(2편에 이어)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치권력의 정점에 거의 다다른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이중행보, 그리고 이후 시진핑과의 미묘한 경쟁관계, 반전드라마보다 더 깜짝 놀랄만한 시 주석의 승승장구와 그를 바라보는 보시라이(薄熙来)의 심정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찾아내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중국권력 핵심을 공공연하게 건드리는(?) 작업은 사실 마음 한 편이 엄청나게 불편한 일이다.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중국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공안이 달려오곤 해서 해명을 하거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때로는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했던 중국에서의 불편한 기억들도 떠올랐다.

실명의 당사자들은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다큐는 직접 팩트와 현장이 다 담보되어야 하지만 다큐소설은 그들이 발표하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면을 포착해서 독자에게 상상력을 더해서 생생하게 전달해줄 수가 있었다. 조각들을 잇고 붙이면 한 장면이 완성되고, 장면들을 확장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들만의 연회장의 풍경이 영화 내부자들의 그것처럼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3-1 ‘산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

 

다시 충칭이다.

중국의 4대 특별시 중에서 충칭은 베이징으로부터 가장 먼 변방이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가 핵심이라면 베이징과 붙어있다시피 한 톈진(天津), 충칭(重庆)은 머나먼 나라와 다름없는 외진 변방도시였다.

보시라이가 정치국 위원급지방 당 서기로 부임한 것은 충칭이 처음이다.

상하이방이 장쩌민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은 후, 상하이 서기직은 7~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로 들어가는 권력의 사다리같은 보직이 되었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6년 공청단 주자 리커창을 랴오닝 서기에서 상하이 서기로 보임하려고 하자 장쩌민이 극구 거부하면서 비리사건과 연루의혹이 있는 한정 시장을 대리서기로 보내고 다음 해 시진핑 저장 서기를 상하이 서기로 앉힌 것은 돌이켜보면, 지금의 중국권력지도가 구축되도록 한 결정적 한 수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보시라이 역시 당시 상하이 서기를 노리고 병석의 부친 보이보를 동원하기 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때 그는 시진핑에게 상하이를 빼앗겼다는 억하심정이 있지 않았을까?

충칭을 상하이보다 더 각광받는 서부내륙의 선도개혁도시, 마오쩌둥 주석의 붉은 영광을 재현한 홍색도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시진핑에 대한 경쟁의식이 바닥에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을 찬양하고, 범죄를 때려잡자는 창홍따헤이 캠페인을 필두도 보시라이는 대대적인 충칭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모든 것을 베이징을 겨냥한 것이다.

 

창홍의 일환으로 모든 충칭시민을 대상으로 새로 만든 혁명가요 홍가(红歌)’를 외워서 부르도록 강제했다. 마오쩌둥 어록도 외우는 것을 충칭시민의 의무로 규정했다.

청년대학생들에게는 문혁 당시의 하방(下方)과 비슷한 성격의 체험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저소득층에게 공짜돈 홍빠오(红包)를 춘절과 단오절 등에 수시로 뿌렸다.

보시라이는 충칭의 황제로 등극했다. ‘공짜 돈을 마구 뿌리는데 좋아하지 않는 시민은 없다.

부자와 대기업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 보시라이의 충칭프로젝트였다.

저소득빈민과 농민공들을 위한 서민주택을 교외에 대대적으로 짓고 충칭을 새로운 서부내륙의 IT 산업 전진기지로 조성하겠다며 외자유치에 나섰다.

레노버와 에이서 등 국내외 대형 노트북기업들이 충칭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충칭은 노트북 생산 전진기지로 거듭났다.

 

2010인민일보인터넷 인민망책임중국-10대 최강 목소리라는 프로젝트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최고의 공직자로 보시라이가 꼽혔다.

해마다 인민일보인터넷이 20여명의 고위공직자를 임의로 선정, 누리꾼들의 투표를 선정하는 프로젝트지만 결과는 중국공산당 중앙의 추인을 받는 구조였다.

리위안차오 중앙조직부장과 멍젠주 공안부장 등이 10위 안에 함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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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장쩌민의 보시라이 챙기기

 

충칭의 창홍타헤이결과는 어마어마했다. 8개월간 체포된 폭력조직 흑사회 조직원이 3700여명 그중에 두목급만 70여명이었고 1000여 명의 유착 공무원도 적발됐다.

 

장쩌민과 쩡칭홍의 상하이방이 보시라이를 눈여겨본 것도 이즈음이었다.

충칭시 기관지인 충칭일보200910우리를 분노케 하는 범죄를 쓸어버리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장쩌민 전 주석의 어록을 인용 보도하면서 창홍타헤이 캠페인의 성과를 장 전 주석의 유지에 따른 것이라는 투의 사설을 썼다. 이는 보시라이가 마침내 상하이방과 연대했다는 신호였다.

 

반면 보시라이의 경쟁자들은 충칭의 캠페인과 붉은 도시 프로젝트를 독한 이미지 정치라며 깎아내렸다. 그 대표선수는 전임 충칭서기였던 왕양 광둥서기 등 후진타오 주석계의 공청단계였다.

상하이방의 3인자였던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가 충칭을 방문한 것이 그 즈음인 2009년 하반기였다.

2011년 벽두 신화통신은 이례적으로 충칭의 성과에 대해 대대적인 보도를 내놓았다. 노골적인 보시라이 띄우기였다.

신화통신은 충칭의 경제발전상과와 빈부격차 해소 등을 소개하면서 이를 성공적인 개혁사례라고 소개했다.

후진타오 체제하 9명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후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제외한 7명이 충칭을 방문했다.

상하이방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파죽지세의 기세로 보시라이의 차기 정치적 위상은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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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충칭방문 2010년 12월. 서민들과 함께. 

 

#3-3. 두 번의 만남. 시진핑과 보시라이

 

2010년 12월 6일. 충칭은 특히 겨울안개가 심하다. 후진타오에 이어 차기 최고지도자로 확정된 시진핑 부주석이 공식적인 충칭 방문에 나섰다.

23일간의 일정이었다.

 

장강(長江) 기슭 산샤(三狹)댐의 안개가 자욱하게 내린 12월이었다. 시진핑의 충칭방문은 제5세대 중국공산당 지도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중난하이를 적잖게 긴장시켰다.

시 부주석과 보 서기의 평소 관계는 돈독했다. 나이 차도 있었고 서로 경쟁관계인 적이 없었다. 시 부주석 입장에서는 말이다.

보시라이는 타고난 홍위병이었다. 어린 시절 태자당내에서도 잘난 체 하기로 소문난 악동이 보시라이라면 시진핑은 웬만한 일에는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우직한 성격의 팬더로 통했다.

 

시 부주석의 충칭방문은 차기 후계자로 공식활동을 시작한 그가 보 서기를 자기 진영으로 포용하겠다는 신호탄이기도 여겨졌다. 9(시 주석체제에서는 7)의 상무위원 중 최소한 절반인 5명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위정성과 왕치산이 우선적으로 시 주석과 가깝다면 확실한 태자당티가 나는 보시라이의 상무위 진입은 시 주석에게 좋은 카드였다.

게다가 시 주석은 보시라이의 창홍캠페인에 대해서도 차기체제에 도입하기에 적절한 캠페인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물들어버린 인민의 마음을 붉게 다잡아야 하는데 창홍 캠페인은 시의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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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통신이 보도한 충칭의 발전성과 장면이다. 사진=서고 출판사 제공.

 

시진핑은 충칭에서 보시라이와 함께 붉은 혁명가요, 홍가를 함께 부르고 마오어록을 외우는 등 도시전체가 다시 마오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 붉게 물들어져서 즐거워했다.

 

충칭사범대학을 찾아가서는 1시간여 동안 강화(講話, 특강)을 한 후 젋은 학생들의 젊은 생각들의 중국굴기를 앞당겨 중국몽을 실현하게 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틀 째 되는 날 밤 환송연회를 통해, 시진핑과 보시라이는 술잔을 부딪치면서 충성맹세를 하는 등 의기투합했다.

 

좋은 날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다시 만날 때는 그날이 마지막이자 적이 되어있을 줄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3-4. 모든 것이 끝났다.(一切都敗了)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진리다.

 

보시라이는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왕리쥔까지 미국스파이로 몰아붙였다.

아내의 살인사건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 미처 짐작도 하지 못했다.

도화선은 따로 있었다.

왕리쥔 국장과 구카이라이를 둘러싸고도 미묘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을 듣자 그를 더 이상 곁에 둘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승진이나 영전을 통해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라지게 하는 방식을 썼다. 눈치 빠른 왕 국장이 보 서기의 수순을 모를 리 없었다.

 

정협과 전국인민대표회의 등 양회가 임박하는 바람에 보시라이에 대한 처분은 일시유예됐다.

보시라이는 충칭시 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예년처럼 정치국 위원들이 머무는 숙소인 징시빈관(京西宾馆)을 배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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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양회가 끝나자. 곧바로 연금된 보시라이. 초대소에 갇히다. 사진=서고 출판사 제공.

 

201233일 정협이 개막됐고 전인대는 5일 개막됐다. 전인대가 폐막되는 14일 보시라이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돼서 베이징교외의 한 초대소에 연금됐다.

 

그 사이 보 서기의 집사노릇을 해 온 따리엔 스더그룹 쉬밍 회장의 신변을 둘러싸고 쿠데타에 버금가는 군사적 충돌이 빚어졌다.

상하이방의 저우융캉이 지휘하는 정법위가 미리 쉬밍을 빼돌리자, 중앙기검위가 신병확보에 나서면서 장갑차가 정법위를 포위하면서 총격이 벌어지는 등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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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기검위 션양시 한 지부의 사진이다. 사진=서고 출판사 제공.


베이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연금된 보시라이는 후 주석과의 면담을 요청하면서 기검위 요원의 조사에 불응하면서 버티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시진핑이 연금된 보시라이를 찾아가서 면담한 사실은 아직 세상에 단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를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불과 1년여 전 충칭의 밤을 기억하는가? 충칭의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중국을 개혁하겠다며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는가? 형제처럼 의지하며 <붉은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는 거짓이었던가?’

 

시 부주석은 상하이서기로 간 이후 5년여의 시간의 기억을 더듬었다. 보시라이가 배신하게 된 계기를 정확하게 짐작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있다면 헛된 황제의 꿈일 뿐이었다.

 

#3-5 홍색중화방이라는 유령단체.

 

 충칭의 붉은 봄2022년의 상황을 불안하게 예측한다.

2022년 새해벽두는 아마도 베이징과 인근 허베이성 장자커우에서 펼쳐지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집중될 것이다.

베이징은 2008년 하계올림픽에 이어 14년 만에 동계올림픽까지 개최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상황은 성공적 동계올림픽에 대한 시 주석의 기대를 저버릴지 모른다.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1주년을 전후한 시점에 벌어지는 장 전 주석의 신변이상은 시진핑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변수로 등장했다.

 

*8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가 잇따라 열렸고 중국 중남부지방에서는 때이른 연속 태풍의 습격으로 인한 역대급 수해를 입는다. 민심이 흉흉해졌지만 원자바오 전 총리나 리커창 총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 주석의 힘이 강해진 지금와서 진짜 2인자는 왕치산 부주석으로 통했다. 시 주석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면서 2012년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왕 부주석은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아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사실상 쿠데타를 기도한 주범격인 저우융캉과 보시라이를 처리하면서 호랑이와 파리를 때려잡은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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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따퉁 윈깡석굴 방문한 시진핑 주석. 사진=서고 출판사 제공.

 

산시성 핑야오고성에서 아시아-호주 뱅크 컨퍼런스’23일간 열렸다.

호스트는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었지만 실제 좌장은 금융차르 왕치산 부주석이었다.

 

중국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며 당과 정부가 보증하는 중국금융의 견고한 보안시스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가 갑자기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소문이 분분했지만 그는 핑야오고성에서 실종됐다. 베이징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차단되고 비상계엄을 방불케하는 경계령이 내려졌지만 그의 행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사라진 핑야오고성 골목에서 홍색중화방’(紅色中華幇)이라는 붉은 깃발이 여럿 발견됐다. 왕 부주석의 실종과 관련있었다. 반시진핑세력들의 공개적인 경고성격이 짙었다.

 

소설은 이제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시진핑세력은 좌장을 잃은 상하이방일수도 있다. 혹은 여전히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공청단일 수도 있고, 산시방(山西幇)일 수도 있었다. 계엄과도 같은 엄중한 긴장감이 지속되었고 피로감도 높았다.

 

# 폭풍전야도 지났다.

 

중국인민들에게 10여 년 동안 잊혀진 이름이 있다.

 

보시라이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잠시 잊혀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살아서 베이징 교외에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주석의 유훈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누가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가? 중국공산당은 마오의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为人民服务)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실천하고 있는가. 중국인민은 마오 주석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마오 주석은 항상 옳았다. 시진핑은 어디로 가는가?….

 

보시라이는 격정적으로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해외언론을 통한 통렬한 반격의 시작이었다. 한 중화권 매체를 통한 인터뷰였다.

 

시진핑의 세[번째 연임은 중국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충칭의 붉은 봄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중국의 미래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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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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