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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에 뉴타운이?

서울 장위동으로 본 ‘서울 택지개발 60년史’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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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장위동 내 대한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이 건설한 주택지의 모습이다.

서울역사박물관장(배현숙)은 서울 성북구 장위동의 생활문화 현장의 역사를 담은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성북구 장위동은 해방 이후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다양한 주택 형태가 공존하며 독특한 주거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동북쪽 외곽 지역의 평범한 동네가 경험한 사회적·공간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서울에서 지난 60여 년간 시행된 다양한 택지개발사업의 전개를 장위동에서 찾을 수 있다.

 

장위동 주민생활 모습(1972).jpg

장위동 주민들의 모습(1972)이다.

 

장위동의 역사


장위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의 동북쪽 끝자락에 있던 농촌마을이었다. 조선시대 장위동 주변에는 공무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주요 길목에 설치했던 송계원(松溪院)과 중랑천을 건너 송계원·동구릉으로 향하는 다리인 송계교(松溪橋)가 있었다.


장위동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우이천과 주변 물길, 그리고 물길을 따라 저지대에 자연촌락이 형성된 성밖 마을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경춘선의 부설이 결정되고, 1938년 경춘철도주식회사는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정지사업을 시작하고 주택지 개발을 본격화하였다. 그러나 경춘철도주식회사의 개발 사업은 본격적인 주택지 개발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장위동이 주택지구로 개발된 것은 1958년 이후이다.

 

장위동 국민주택(1964).jpg

장위동 국민주택(1964)의 모습이다. 입주 당시 언론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개발기 장위동 주택(1972).jpg

개발기 장위동 주택(1972) 모습이다.

 

장위동 아이들(1972).jpg

장위동 아이들(1972)

 

주택단지 개발과 장위동의 도시화


6·25전쟁 이후 대한주택영단에서는 경춘철도주식회사의 소유 부지 및 그 인근에 재건주택과 부흥주택(1958년), 국민주택(1962, 1964년)을 대규모로 건설하였다. 이로써 장위동의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58년~1964년 사이 대한주택공사의 세 가지 유형의 주택 사업이 인접하여 연달아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장위동 주택지들을 주목할 만하다.


1958년 경춘철도주식회사 소유 부지였던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정부가 공급한 부흥주택 171세대, 재건주택 200세대의 총 371세대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전체 건축면적은 4,617.5평으로 재건주택은 2호 연립, 부흥주택은 4호 연립 복층 형식으로 지어졌다. 현재 재건주택은 10여 호 남아 있으나 2호 연립의 온전한 형태를 갖춘 재건주택은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부흥주택은 처음 지어진 46동 중 36동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재건주택을 관통하는 남북도로에는 장위골목시장이 들어섰고 시장에 면한 주택은 상가로 바뀌었다.

 

동방주택지 분양 광고.jpg

동방주택지 분양 광고

 

별들의 고향, 동방주택단지


장위1동에는 동방고개로 부르는 경사지가 있다. 그리고 이 동방고개에 위치한 주택들을 동방주택이라 부른다. 동방주택이 세워진 일대는 윤용구 일가 소유의 토지였다.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은 1960년 장위동 산3-1번지 일대를 윤용구의 후손에게 매입하였고, 1962년 대대적인 택지조성사업을 시작하여 신흥 부촌이 형성되었다.


 장위동 동방주택은 동방생명이 진행한 가장 규모가 큰 택지조성사업이었다. 이렇게 조성된 필지는 분양공고를 통해 분양되었다. 개인이나 주택건설업자에게 필지를 매각한 후 필지를 구매한 사람들이 각자 주택을 짓는 방식이었다.


장위동의 동방주택은 100평이 넘는 필지에 잔디가 깔린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호화로운 고급 주택지였다. 태릉 육군사관학교와 인접해 군장성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이 다수 거주하였으나 강남 개발 이후 부자들이 대거 장위동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장위동 지역의 도시발전은 정체되었고 저지대 단독주택지 대부분이 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전환되어 서민주거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장위동은 서울 동북부의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로서 2005년 뉴타운 개발사업 대상지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장위동 동방주택단지(김중업건축문화의집).jpg

장위동 동방주택단지(김중업 건축문화의 집)

 

장위뉴타운 개발 모습.jpg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위뉴타운 개발 현장이다.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는 서울역사박물관(museum.seoul.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도서 구입은 서울책방(store.seoul.go.kr)에서 가능하다.  (문의 02-739-7033)

입력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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