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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별이 된 '탐사 보도의 거장(巨匠)'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日 정국 뒤흔든 다나카 총리의 '금맥과 인맥' 기사로 명성 떨쳐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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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사진=유튜브 캡처

기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일본 ‘탐사보도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지난 4월 30일 향년 81세로 세상을 뜬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뇌물 의혹을 파헤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 금맥과 인맥’이란 기사를 일본 《문예춘추(文藝春秋)》에 게재해 화제를 낳았다. 다나카 당시 총리의 검은돈 문제를 광대한 자료를 기초로 밝혀낸 이 기사는 다나카 총리 퇴진의 계기가 됐다. 동시에 일본에서는 ‘탐사보도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기사가 처음 나왔을 당시 일본 정치부 기자들은 이를 묵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다카나 총리의 부패를 알면서도 기사를 안 썼던 것이다. 다치바나의 기사는 거꾸로 일본 주재 외국 특파원들이 거론하면서 큰 스캔들로 확대됐다. 결국 집권당인 자유민주당 내부 권력투쟁으로 이어져 다나카 총리는 실각하고 말았다. 


다치바나는 일반 기자들과는 취재 방식이 조금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기자라기보다는 작가로서의 경향이 강하다(사실 접근을 게을리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일반 기자들과 달리 다치바나는 주제를 정하면 광범위한 자료를 섭렵한 후,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는 소속 매체 없이 활동했다. 대신 자기 밑에 스태프를 뒀다. 스태프로 하여금 자료를 구하게 하고 이를 정리해 필요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다시 정리해 기사화하는 ‘작가적 에디터(editor)’로서 활동했다.


다치바나의 관심사는 폭이 넓었고, 깊이도 깊었다. 국내 탐사보도의 선구자라 불리는 조갑제(趙甲濟) 전 《월간조선》 대표는 2002년 일본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다. 조갑제 전 대표는 다치바나를 “언론의 새로운 유형을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조 전 대표가 당시 《월간조선》에 쓴 다치바나에 관한 기사 중 일부다.


<다치바나씨는 그 뒤에도 줄곧 사회·정치 문제에 관한 심층취재를 계속하였고 수많은 저작을 남겼습니다. 그가 쓴 책명(冊名)만 봐도 관심의 폭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공산당 연구, 《아메리카 성(性)혁명 보고서》, 《록히드 재판 방청기》,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腦死)》, 《농협(農協)》, 《증언·임사(臨死)체험》, 《신세기 디지털 강의》, 《로봇이 거리를 거니는 날》, 《원숭이학(學)의 현재》 등등. 과학과 컴퓨터에 전문적인 저서를 남긴 그지만 지금도 만년필로 원고를 쓰고 있었고 자료 관리는 부인이 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집체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고독한 단독 작업이란 것을 새삼 확인하니 저도 안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언론의 새로운 유형을 만든 사람입니다.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도 세상을 바꾸는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셈입니다. 다치바나씨는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우리 집 서재엔 소설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직업인 기자는 상상(想像)이나 가공(架空)을 습관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가 봅니다.>


조갑제 전 대표는 “젊었을 때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많이 다뤘던 다치바나씨는 최근엔 사후(死後) 세계의 존재 여부, 디지털 세상, 우주 이야기를 많이 쓰고 있다”며 “죽었다가 깨어난 적이 있다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쓴 《임사체험(臨死體險)》이란 기사는 《월간조선》에 번역되어 실린 적도 있다”고 썼다. 


조 전 대표는 다치바나에게 “인간의 영혼이 사후에도 살아 있다고 믿느냐”고 했더니 의외로 “없습니다”란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다치바나는 “내 책의 결론도 그런데,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은 사후 세계의 존재를 입증한 글이라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몰랐던 듯하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한 것은 다분히 그의 명성 탓이었다. 다치바나가 썼으니 사람들은 으레 그가 사후세계를 입증이라도 한 것처럼 여긴 것이다. 다치바나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치바나가 남긴 유산은 일본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제 탐사보도는 저널리즘의 한 영역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비록 긴 기사를 읽지 않는 디지털 시대이지만, 언젠가는 탐사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악(惡)의 굴레가 낱낱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월간조선》이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 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언론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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