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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X파일' 김영삼(YS)의 '내각제 합의 각서'

윤석열에겐 YS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승부사 기질이 있나?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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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소동을 보면서 30여 년 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세인의 뇌리에선 이미 지워졌지만, 고참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내각제 합의 각서’ 파동이다.


1990년 3당합당으로 YS는 야당(통일민주당)에서 여당(민주자유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신설 합당에 합의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내각제 개헌을 실현하겠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는 이면합의였기에 당시 정치권에서는 說(설)만 난무했을 뿐, 합당의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YS도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차기 대권에 강한 의욕을 보인 YS는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의 내각제에 별 흥미가 없었다. 한마디로 합의를 이행할 뜻이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언론이 노태우, YS, 김종필 세 사람이 서명한 ‘내각제 합의 각서’를 입수해 공개하자, YS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이던 YS는 ‘민정계(노태우계)의 정치공작’이라며 당무 집행을 거부하고 경남 마산으로 내려갔다. 타고난 정치 감각과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전격적으로 벌인 행동이었다.


당시 민자당은 합당으로 인한 계파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가 마치 ‘따로국밥’처럼 움직여 민자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여당 2인자’인 YS마저 각을 세우며 마산행을 결행하자, 노 대통령과 민정계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들은 YS를 가까스로 달래며 다시 서울로 불러들였다. 


이 해프닝은 결과적으로 YS가 대권을 쟁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무에 복귀한 YS는 ‘차기 대권 조기 가시화’를 주장하며 노 대통령과 민정계를 압박했고, 민정계 일부도 슬금슬금 親(친)YS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당내 주도권을 YS가 장악한 셈이다. 힘이 빠진 민정계는 변변한 차기 주자 한 명 내세우지 못한 채 YS에게 예속돼 버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YS의 정치력이 힘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윤석열의 처지도 그때의 YS와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내각제 합의 각서’는 실존했고 ‘X파일’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YS는 너무나 확실한 물증인 내각제 합의 각서를 뭉개버렸다. 그러곤 자기 의중대로 정국을 돌파해나갔다. 윤석열도 소위 ‘X파일’과 관련해 ‘무대응 원칙’에서 벗어나 ‘보고만 있지 않겠다’며 나름의 승부수를 벌이고 있긴 하다.   


윤석열은 YS에 비해 정국을 치고 나가는 기질이 다소 약해 보인다. ‘전언정치’ ‘간보기’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민들은 뒤로 한 발 물러선 채 이것 재고, 저것 재는 정치인을 고운 눈초리로 보지 않는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온몸으로 모든 현안과 부딪혀 보겠다는 강한 의지에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옳고 그름을 떠나 윤석열에게 있어 YS의 정치 감각은 어느 정도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 아닐까.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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