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방송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월간조선

방송가에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가 하면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을 들락거리고 있다. 우종범 교육방송(EBS) 사장은 임기를 1년 넘게 남기고 물러났으며 장관급 정무직공무원인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은 노조에 가입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 시나리오가 각본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9월 1일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부당노동행위 고발 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는 것이다. 물론 출석요구에 불응하면 체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비이락'이라하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체포영장의 발부에 있어서 재판부가 판단할 때는 객관적인 요건이 존재해야 한다. 즉 수사기관이 주관적 판단으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체포영장을 청구하더라도 영장담당 판사는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을 살펴서 발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고 공영방송 사장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재판이 곧 정치라고 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장겸 MBC사장은 8월 23일 MBC 확대간부회의에서 "언론노조가 회사를 전면파업으로 몰고 가려는 이유는 ▲유례없이 언론사에 특별근로감독관을 파견하고 ▲각종 고소·고발을 해봐도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으니 ▲이제는 정치권력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선임된 경영진을 억지로 몰아내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국회를 보이콧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이러한 반민주적 강압조치는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탄압이고, 비상계엄 때도 없었던 유례없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공영방송이 참담하게 무너졌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8월 8일 방통위 업무 보고회)이나 "사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발언(8월 11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예방 자리)등에 비춰봐서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기소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8월 3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7월 20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고 이사장은 2013년 1월4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돼 발목 잡혔다. 당시 이 행사에는 구제태 재경경우회장, 김동길 연세대명예교수, 김경묵 前 경희대명예총장,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이사장, 소설가 복거일 등 보수인사 상당수가 참여했었다. 고 이사장은 당시 국가정상화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

“여러분은, 설마 대한민국이 실제로 적화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경험을 통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에 있을 때, 부림사건의 수사검사를 맡았습니다. 이 사건 변호인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있었으며, 그는 나중에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에 눈을 떴다’고 해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사건 내용을 축약하면, 부림사건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부림사건을 공산주의운동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사건 피의자가 제게 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의자 중 한명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검사님한테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옵니다. 그러면 역사가 바뀌고 기록도 바뀝니다. 곧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텐데, 그때가 되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입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운동이라는 사실, 이 이상 어떻게 더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모두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란 걸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사건 변호인으로서 기록을 다 봤는데, 어떻게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란 걸 몰랐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란 걸 알고 변호를 한 것입니다.
그 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5년 내내 핍박을 받고, 검사장직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개업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있으면서 저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한 자가 바로 문재인 비서실장입니다. 노무현 정부에는 부림사건 관련 인맥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고 이사장이 언급한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2014년 당시 사건 피의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문 대통령은 검찰에 고 이사장을 고소하면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김진환 판사)은 지난해 9월28일 "고 이사장이 명예훼손적 의견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고 이사장은 이날 재판에서 "(이미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고소인이 북한의 주장을 지지·추종한 발언 및 활동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관련 정황 자료를 수십 건 제출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고소인의 북한 추종 사례로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연방제 통일 주장, 국정원 해체 주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반대" 등이 있다며, "(고소인의) 언동은 공산당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공산주의자가 보이는 공통된 특징 11가지 유형에 모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우종범 교육방송 사장 사퇴

우종범 교육방송(EBS) 사장은 8월 4일 임기를 1년 넘게 남기고 물러났다. EBS는 "우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만 밝히고 그 구체적 이유를 대지 않았다.

2015년 12월 EBS 사장에 오른 우 前 사장은 당시 국가보훈처 산하 88관광개발 상임감사로 재직 중이었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MBC 라디오국 편성부에 입사한 이래 라디오편성기획부장, 라디오본부장, 제주MBC 대표이사 사장, 한국교통방송(TBN) 대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방송가에선 합리적 보수로 평가 받아왔으나 최순실 씨 소유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우 전 사장의 이력서가 발견돼 최 씨가 뒷배를 봐 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우 전 사장은 지난 1월18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EBS 사장 원서를 접수하던 시기에 이력서를 한 번만 작성했다. 최순실은 옛날에 회오리 축구단 다닐 때 만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모른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오던 사람이 임기를 한참 남기고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의혹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모를 리 없음에도 사표를 던진 것은 모종의 압력이 가해지자 견디기 힘들었던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 방송가의 추측이다.

장관급 방통위원장의 명예노조원 가입

지난달 24일 노동조합의 명예회원으로 가입한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처신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 나라 장관이 비록 명예조합원이라고 하지만 특정 단체에 가입해 우호적 표시를 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의 행동이라 보기 어려우며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한 '공무원의 노조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위배될 가능성도 있다.

노동조합의 사전적 정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다. 또한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의 주체로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집단적으로 수용하여 사용자와 교섭하며, 단체행동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행동의 주체이기도 하다. 장관급 공무원은 사실상 경영권자다. 경영권은 경영권자에게 속하는 배타적 권리로 관리, 운영, 인사 등에 관해 가진다. 근로자가 노동기본권을 가지는 데 반해 사용자는 경영권을 가진다. 그런 자리 있는 사람이 노조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대변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자유한국당은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 위원장의 노조가입을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연관시켰다. 그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해야 될 방송통신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방통위원장이 앞장서서 앞으로는 민주노총 공무원노조에 가입을 하고, 뒤에서는 공영방송 노사 갈등을 조장해서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효성 위원장이 법 규정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명예회원에 가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이 규정한 취지와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언론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될 책임 있는 방통위원장이 취한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고 또 정파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타깃은 KBS 고대영 사장?

방송가에서는 다음 타깃이 KBS 고대영 사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KBS와 MBC 노조는 4일부터 동시 파업에 들어가며 더욱 거세게 압박할 태세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 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서 강구하겠다"라고 했던 문 대통령은 최근 재검토를 지시, 사실상 대선 공약 파기했다.

방송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언론노조의 합작품이란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8월 30일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자 KBS와 MBC 방송 출연과 라디오 인터뷰를 취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들이 9월 1일 열린 '방송의 날' 행사에 일제히 불참한 데 이어 여당은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KBS·MBC 출연 금지령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8월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 참석해 전국언론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집권당 의원들이 마치 노동운동가나 노조원이 아닌 가 착각케 하는 풍경이다.

지난 8월25일 마감된 EBS 사장 공모에 응모한 지원자는 모두 21명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이번 EBS 사장 선임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느냐에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방송 장악 음모설이 진짜 설(說)이었는지 아닌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글=주장환 월간조선 뉴스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