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2일(현지 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를 내주 참모들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허리케인 ‘하비’ 수해를 본 텍사스 주 휴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한·미FTA 폐기 계획을 통보할지 저울질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5일 백악관에서 회의를 열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를 준비하라고 참모들에 게 지시하라고 보도했다.  WP는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FTA 조건을 재협상하기 위해 협정에 남는 결정을 할 수 있지만, FTA 폐기를 위한 내부 준비는 많이 진척됐으며 공식적인 폐기 절차는 이르면 다음 주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한·미 FTA를 ‘재앙’이나 ‘끔찍한 협정’이라고 칭하며 취임 후 재협상이나 폐기를 공언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재앙’이라고 까지 표현한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2011년 133억 달러에서 2015년 283억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원인이 한·미 FTA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미 FTA 탄생의 주역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한·미 FTA는 미국 무역적자에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8월 31일자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에 ‘지금은 한·미 간 무역 긴장을 조성할 때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도 한·미 FTA가 아니었다면 무역적자가 440억 달러로 더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무역적자 증가원인이 한·미 FTA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로 인해 미국은 손해만, 한국은 이득만 본다고 판단한 듯하다.  
 
양국 관계에서 우리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는 없다.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한·미 FTA가 폐기된다면 미국도 상당한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대미 무역 흑자국=일자리 도둑’이라고 주장해온 화법을 바꿀 리 만무하다.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동시다발적 FTA 추진’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뒤, 노 대통령 때 협상이 타결됐던 정책이다.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TV 카메라 앞에 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FTA는 정치 문제도 이념 문제도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 정권 때 한·미 FTA를 추진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 등 핵심 친노 인사들은 한·미 FTA 전면재협상·폐기론을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 한 재협상이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대상 10가지 중 9가지는 노무현 정권 때 타결됐던 내용 그대로다. 이걸 뒤집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무책임 한 말 바꾸기에 대해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세우면서도 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한·미FTA를 부정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 전 실장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문 교수 1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방자치에 대한 생각이 일치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 때는 자문 교수단 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집권과 함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행정 개혁을 지휘했다. 2004년 6월부터 2년여 간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정책 총괄 지휘를 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안다.

친노들이 목 놓아 주장해 온 한·미FTA 폐기 실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미 FTA가 폐기됐을 때 친노들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동안 우리는 6·25 전쟁, 1998년 외환위기 극복, 비자 면제, G20 회원국 참여 등에서 동맹국인 미국의 협조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한·미 FTA가 폐기되면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이런 협력을 받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외교부는 보고 있다. 고려대 김성한 교수는 “한·미 FTA를 폐기한 후에도 동맹이 이전처럼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