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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문재인 발언을 계기로 주목받는 광복군은 어떤 군대였나?

'광복군행동준승'에 의해 작전-운용 등 중국군에 종속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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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이 현재 101일에서 다른 날로 변경될 지도 모르게 됐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828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정통성이 없는 101일이 과연 국군의 날로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라는 이가 어떻게 정통성이 없는 101운운하는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 이는 대한민국이 정통성 없는 국가라는 인식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문 대통령은 가령,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우리 군의 역사적인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면서 국군의 날 변경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고 한다.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은 우리 역사의 귀한 유산이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이 민족은 일제에 순응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외에 보여 줄 수 있었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 정신적 의미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군의 날을 변경할 경우, ‘새 국군의 날로 유력시 되는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이 창설된 917일이다. 이런 주장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평화재향군인회라는 단체 등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그런 주장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보다 더 정통성있는 존재로 기억되어야 할 실체가 있었나?

광복군은 1940917일 중국 중경의 가릉빈관이라는 호텔에서 창설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광복군 총사령부가 창설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빈약했다.

총사령 이청천, 참모장 이범석 외에 9명이 총사령부 간부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간부 9명 가운데 7명이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다. 총사령부 간부진을 편성하는 것조차 버거웠다는 얘기다.

총사령부 휘하 부대는 4개 단위부대 대원 240명이 사실상 전부였다. 만주에 있는 조선혁명군 부사령 박대호를 총사령으로 하는 제1로 동북군 4800명도 광복군으로 셈했지만, 희망사항이었다. 참모장 이범석조차 한 달을 두고 고심참담했지만 없는 사람을 구해 올 재주는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 얼마 안 되는 광복군조차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광복군 창설 자체에 대해서도 미온적이었던 장개석 정부는 광복군을 지원하는 대가로 여러 가지 간섭을 제도화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 등의 노력 덕분에 장개석은 중국 군부의 반발을 누르고 나름 임시정부의 입장을 배려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장개석은 광복군을 중국군사위원회에 직속케 하여 참모총장이 장악하여 운영하되 군사위원회에서 전문인원을 지정하여 광복군에 대한 지휘 명령과 자금지급 및 무기관리 등의 사항을 관장케했다.

이에 따라 중국군사위원회는 9개항의 한국광복군행동준승(準繩)’이라는 걸 만들었다. ‘이라는 말처럼 이 규정은 한국광복군의 행동(작전, 운용 등)을 제약하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르면 광복군은 항일작전기간 중 중국 군사위원회에 직접 예속되며 참모총장이 운용을 장악한다 중국 최고통수부의 군령 이외에 다른 어떤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밖에 중국 지방에 주둔하는 광복군 부대는 해당 지역 중국최고군사장관의 지휘를 받고, 광복군 마음대로 주둔지를 정하거나 활동할 수 없으며, 광복군 총사령부의 소재지는 중국군사위원회가 지정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심지어 중일전쟁이 끝나기 이전에 임시정부가 한국 경내로 들어갔을 경우에도 계속해서 중국군사위원회의 군령을 받아 작전에 배합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는 이후 중국측에 광복군행동준승의 폐지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1944823일 행동준승은 폐지됐다. 하지만 이와 함께 광복군에 대한 중국측의 지원도 중단됐다. 그러자 광복군총사령부 소속 장교 18명 가운데 10명이 사임했다. 중국의 지원이 없으면 당장 호구지책이 막연했기 때문이다.

광복군을 만들고, 유지하고, 그 자주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참담했을 김구, 이청천, 이범석 같은 선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하지만 그게 광복군의 실상이었다.

19506.25 와중에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권을 넘긴 것(대전협정), 지금도 미군 대장인 한미연합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두고, 대한민국 국군을 자주적이지 못한 군대, 심지어 미제(美帝)의 용병(傭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386세대들이 지금 정부의 중추부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은 국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국군에 종속된 존재였다.

38선을 돌파해야 하는 순간에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에게 국군은 누구의 명령을 받느냐?”고 호령했고,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은 김백일 1군단장에게, 김백일 1군단장은 이종찬 3사단장에게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국군의 날인 101일은 미국의 지원 아래 전쟁을 치르면서도 대한민국 국군이 얼마나 자주성을 유지하려 몸부림쳤는지를 보여주는 날이기도 하다.

둘째, 광복군과 대한민국 국군 중 어느 쪽이 국군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을까?

광복군은 유감스럽게도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부대 단위의 대일(對日)작전을 전개하지 못했다. 버마에 연합군의 일본군 포로 심문을 돕기 위한 요원을 파견한 것, 미국 OSS와 합작해서 국내에 침투시킬 특수요원들을 훈련시킨 것이 전부였다. 드골의 자유프랑스나 폴란드군단 등이 사단, 군단 단위의 부대를 편성해 나치 독일군과 교전했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측면에서 광복군은 정신적 의미를 제외한다면, 실제 전쟁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반면에 대한민국 국군은 6.25전쟁 때 수없이 많은 장병들이 피를 흘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국군이 정식으로 창설된 지 채 2년이 되기도 전에 불의의 기습을 받고도 국군은 그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38선을 돌파한 10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국군의 희생과 성취에 대한 당연한 상찬(賞讚)이다.

셋째, 국군이 국군의 날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정통성이 없는 존재인가?

 흔히 국군 창설 초기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많았고, 이후 이들이 국군의 수뇌부를 형성한 것을 두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주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영혼 없는 친일파들은 아니었다. 강영훈 등 학병 출신들은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가면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으려 고민했다. 박정희가 만주군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증언도 많다. 일본 육사 출신인 이형근, 이종찬 등은 해방이 된 후 자숙하는 의미에서 군문에 들어가는 것을 사양하다가 새 조국의 군대 창설에 참여해 지난날의 과오를 씻으라는 주위의 권유로 군에 들어갔다.

이종찬은 육군참모총장 시절 4년제 정규 육사가 개교하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광복군 출신인 안춘생을 초대 교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군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었고,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도 공군 창설에 참여해 후일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6.25때 한강방어전을 지휘한 김홍일도 광복군 출신이었다.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도 광복군 참모장 출신이다. 초대 국방차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최용덕,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의 아들 박영준, 육사 교장 등을 지낸 이준식, 신흥무관학교 출신 오광선 등도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장하성 정책실장이 새삼 국군의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뿌리를 광복군이나 독립군에서 찾지 않아도 국군은 창설 초기부터 그 정신적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처절한 고민을 해 왔다는 얘기다

참고삼아 말하면 북한군에도 공군사령관을 지낸 이활 등을 비롯해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꽤 있었다.


입력 : 2017.09.01

조회 : 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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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댓글달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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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비역공군장교 (2017-09-25)

    크 광복군과 왜군/만주군을 비교하네. 조선클라스.... 가만히나 있어라 부디...

  • ㅈㄹ (2017-09-11)

    박정희가 만주군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증언도 많다. 여기에서 웃고 갑니다 ㅋㅋㅋ 대한민국 국군 뿌리가 잘 못 돼있다면 제자리로 찾아가는 게 맞지 않나요 별거 가지고 시비네 ㅋㅋㅋㅋㅋ 논리라도 좀 챙기시길!

  • (2017-09-08)

    광복군에 대해서보다는 국군의 날 변경 반대쪽으로 기사 쓴 느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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