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예선을 앞둔 일본은 최정예로 멤버를 갖췄다. 

반면 우리는 사실상 1.5~2군이었다.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보르도) 등 주축들이 부상 및 코로나19에 따른 소속팀 차출 규정 탓에 합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해설자, 전문가들은 우리의 패배를 점쳤다. 전력에서 차이가 나니 당연했다. 

전력이 좀 떨어지는 팀은 강팀을 상대할 때 '져도 본전, 이기면 대박'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부담감에서 벗어날 때 기적, 이변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표팀은 한일전이라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부담은 몸을 무겁게 했고, 이는 최악의 졸전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80번의 한일전에서 이토록 무기력하게 패배한 적은 없었다. 3대 0으로 패배했어도, 어느 정도 희망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수 때 일본전에 2골을 넣었던 안정환 해설위원이 "(우리 때는) 한일전이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뛰자’고 했었다"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사실 지고 싶은 국가대표는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은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다. 

2010년 6만 관중이 들어찬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침묵 속으로 빠뜨렸던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는 한일전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언젠가 이 산책 세리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닌 전술과 정신이라면 심하게 말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