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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보

안에서 싸우다 망한 중국 왕조(王朝)들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본다 ②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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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晉) - 황제의 무능과 황후의 정권욕이 ‘8왕의 난’이라는 내란 불러
⊙ 송(宋) - 구법당(보수파)과 신법당(개혁파)의 당쟁, 정권 바뀔 때마다 상대방을 ‘간당(奸黨)’으로
    낙인찍는 ‘과거사 청산’ 놀음 되풀이
⊙ 명(明) - 동림당과 엄당(환관당)의 20년 당쟁, 명장 원숭환 처형하는 등 국가안보 실종
위진(魏晉) 시대의 군복.
끝없는 골육상쟁
 
사마경도 오래가지 못했다. 302년 장사(長沙)왕 사마예가 사마경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304년 동해(東海)왕 사마월(혜제의 5촌 아저씨)이 성도(成都)왕 사마영(혜제의 동생)과 손잡고 사마예 정권을 무너뜨렸다. 사마월은 체포한 사마예를 자신의 사촌인 하간(河間)왕 사마옹 휘하 장수 장방에게 보냈다. 장방은 사마예를 석탄불에 구워 죽였다.
 
동해왕 사마월은 재상이, 성도왕 사마영은 황태제(皇太弟)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합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마영과 사마월의 군대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사마영은 황제 혜제를 자신의 근거지인 업성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계성(북경)에 있던 장수 왕준이 혜제를 구출하겠다면서 선비족 병사들을 앞세워 쳐들어왔다. 하간왕 사마옹은 휘하 장수 장방을 보내 혜제를 자기가 관할하는 장안으로 모셨다. 사마예의 축출에서 여기까지가 모두 304년 한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마옹의 득세도 잠깐이었다. 앞서 사마영에게 패해 도주했던 동해왕 사마월이 재기해 도전해 왔다. 결국 사마월이 승리해 혜제를 손에 넣고 다시 낙양으로 천도했다. 성도왕 사마영과 하간왕 사마옹은 목 졸려 죽었다.
 
이렇게 정권다툼에 뛰어들었던 8명의 친왕 가운데 사마월만 살아남았다.
 
306년 사마월은 혜제 사마충을 독살하고 사마충의 동생 사마치(懷帝·재위 307~312년)를 황제 자리에 앉혔다. 15년간의 내전(8왕의 난)이 일단락된 것이다.
 
 
석륵의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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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기병.
새로 즉위한 회제는 중흥(中興)의 의지를 다졌지만 때는 늦었다. 흉노를 비롯해 저·갈·강·선비 등 5호(胡)가 궐기한 것이다. 흉노족 유연이 세운 한(漢·前趙)의 장수 석륵(후일 후조(後趙)의 명제)의 군대가 낙양을 향해 진격해 왔다. 사마월은 석륵의 군대를 막으려 동분서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마월은 311년 진중(陣中)에서 병사(病死)했다.
 
진나라 재상 왕연은 다른 친왕들과 함께 사마월의 군대를 이끌고 사마월의 근거지인 동해(산둥성)로 이동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석륵의 포로가 됐다. 왕연은 당시 유행하던 청담(淸談)파 지식인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석륵이 왕연에게 진이 무너지게 된 이유를 물었다. 왕연은 자기는 본래부터 관리가 될 생각이 없었고 관리가 된 후에는 정사(政事)에 간여한 바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면서 석륵에게 유연으로부터 독립해서 황제로 즉위하라고 꼬드겼다.
 
다른 진의 관리와 친왕들도 천하대란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며 석륵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던 자유한국당, 재판정에 선 후 “나는 모르는 일”이라거나 “다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했던 박근혜 정권의 고관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석륵은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은 너희 같은 인간들 때문”이라고 이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담장을 무너뜨려 왕연을 비롯한 고관, 친왕들을 산 채로 죽였다.
 
311년 유연의 아들 유총이 이끄는 한(전조)의 군대가 낙양성을 점령했다. 회제 사마치는 포로가 됐다. 유총은 사마치에게 “너희 사마씨들은 골육지간에 왜 그렇게 서로를 미친 듯 죽였는가?”라고 물었다. 사마치는 회계공으로 봉해졌지만 잔치에 끌려 나와 노예들과 함께 술을 따르는 치욕을 당하다가 313년 살해됐다. 사마치의 아들 사마업(민제)이 폐허가 된 장안으로 도주해 4년간 허울뿐인 황제 노릇을 했다. 사마업도 316년 유총에게 패망했다.
 
 
이기심이 부른 천하대란
 
진나라는 이렇게 4대 51년 만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사마업의 당숙인 사마예(앞의 장사왕 사마예와는 다른 사람)가 건강(지금의 난징)에서 진의 사직을 이었다. 이를 동진(東晉·317~419년)이라 한다. 이후 중국은 5호 16국(304~439년)과 남북조시대(439~589년)를 거치면서 300년 가까운 대동란의 시기로 들어간다.
 
진이 나락으로 떨어진 과정을 보면 어이가 없다. 왕조 시스템의 어쩔 수 없는 결함이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함량 미달인 자가 황제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주제넘게 정치에 간여하려 한 황후 가남풍의 이기심은 ‘8왕의 난’을 야기했다. 8명의 황족은 국가 장래는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병력을 동원해 상쟁을 벌였다. 그 결과는 국가의 멸망과 300년에 걸친 천하대란이었다.(계속)

입력 : 201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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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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