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 의혹이 제기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과 관련해서 직접 입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현재 의혹이 제기된 ▲‘북원추 문건’ 생성 배경 ▲해당 문서 생성 관여자와 그 '윗선' 색출 ▲‘북원추’ 문건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내부의 서류 일체 ▲상급기관에 보고된 내용 ▲김정은에게 건넸다는 이동식 저장장치에 담긴 파일 목록과 그 내용 등에 대한 공개를 지시했다면, 의혹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문 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주문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표현대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는 행태”를, 더불어민주당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악성종양인 색깔론과 북풍 공작 정치”를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당시 소위 여권발 ‘기무사 계엄 문건’ 논란과 관련해서는 재빠르게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일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10일, 인도를 방문하던 와중에 “국군기무사령부가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하고,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방부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발표한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독립수사단을 구성하라고 지시한 이유는 이번 사건에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들이 광범위하게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고, 현 기무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한 이후에도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겸 당시 대변인은 이어서 “기존 국방부 검찰단 수사팀에 의한 수사가 의혹을 해소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굳이 해외 순방 중에 이 같은 지시를 내린 이유에 대해서도 최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된 기무사의 과거 행태가 위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사안이 가지고 있는 위중함, 심각성, 폭발력 등을 감안해 국방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신중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며 “대통령도 순방을 마친 뒤에 하게 되면 너무 지체된다고 판단해 보고받은 즉시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16일, 국방부에 계엄 문건 관련 국방부와 기무사, 그리고 각 부대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2018년 7월 20일에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방부 제출 문건을 들고 나와 이에 대해 기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당시 김 대변인은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세부자료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 포고문’ 등이 이미 작성돼 있다”는 식으로 밝히면서 보기에 따라서 해당 문안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문건 작성에 관여한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과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또는 그 ‘윗선’이 실행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2018년 7월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계엄 검토 문건’과 관련해서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규정했다. 당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독립수사단’의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때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수사’를 지시한 대통령이 ‘기무사 계엄 문건’에 대해 “불법적 일탈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왜 ‘북원추 문건’ 의혹에 대해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 “수많은 마타도어(흑색선전)를 받았지만, 이건 터무니없다”는 식의 얘기만 할까. 왜 ‘문재인 청와대’는 왜 ‘계엄 문건’ 당시와 달리 “터무니없는 주장”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혹세무민 발언”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란 식의 반응만 내놓을까.
왜 여권 인사들은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주장을 내놓은 뒤 다시 이를 번복하는 듯한 행태를 보일까. 해당 의혹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이라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권한과 조직을 가진 문재인 정부가 신속하게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혀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는 걸 막아야 하지 않을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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