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자체까지 좇아가는 해괴한 '○리단길' 작명 : 월간조선

서울시 강동구가 29일, 지하철 5호선 명일역 2번 출구 먹자골목을 ’명리단길’이라고 ‘명명’했다고 밝혔다. 해당 명칭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소위 ‘경리단길’을 차용한 것이다.

강동구는 이 일대 이면도로 400ｍ 구간을 보행자 우선 도로로 조성하고 안내 조형물을 설치하고, 향후 상권 활성화를 위해 거리 가꾸기와 축제 발굴 등 관련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강동구 모든 골목에 나름의 특성을 반영해 사랑받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이란 이름은 과거 육군중앙경리단(현재의 국군재정관리단)이 해당 골목의 초입에 있었던 데서 비롯했다. 국군재정관리단 입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당 상권에는 외국 풍의 식당, 주점, 카페가 밀집해 있어서 내·외국인이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됐다.

2018년 이후 해당 상권은 쇠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한때 ‘경리단길’이란 이름을 본떠서 전국 각지에 이색적인 카페가 다수 있는 지역에는 ‘○리단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방송매체에서 이를 주도했고,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의도적으로 상권을 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경리단길을 차용했다.

애초 그 유래가 ‘경리단+길’이란 사실과 무관하게 ‘망+리단길(서울시 마포구 망원동)’과 같이 ‘○+리단길’이란 아류들이 속속 등장했고, 세간에는 ‘보통명사’ 식으로 확산됐다. ‘○+리단길’이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유행’이 됐다.

그러자 이제는 지자체들이 나서서 ‘○+리단길’을 만들고, 이를 명소화하려고 한다. 특히 지난해 경북 경주시를 찾았을 때 접한 ‘황+리단길(경북 경주시 황남동)’이란 이름은 괴이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에서 역사유적이 가장 많은, ‘천년고도’ 경주가 왜 굳이 그런 해괴한 작명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번에 강동구 소식을 듣고 나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해당 사업을 맡은 강동구 공무원들은 명일역 먹자골목의 새 이름을 작명할 때 어떤 노력을 했을까. ‘경리단+길’의 유래는 알고 있을까.

최소한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라면, 세금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이들이라면, ‘유행’과 무관하게 맥락 없는 맹목적인 모방은 지양하고, 자기 지역의 '특색'을 마련하고 이를 알리는 데 대해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