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휼미를 나누는 대신 학교를 세운 나가오카의 고바야시 도라사부로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 동부지방의 여러 번(藩)들은 오우(奧羽)열번동맹을 맺고 신정부에 저항했다. 도쿠가와막부 시절 일본의 번들은 사실상의 독립국가였다. 이들에게는 메이지유신은 말도 잘 안 통하는 남서쪽의 조슈와 사쓰마가 일으킨 쿠데타요, 조슈-사쓰마는 도쿠가와 막부 260년 동안 자신들이 누려온 자치권을 침범하는 외래 침략자였다. 하지만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고, 그들은 패자(敗者)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패망한 번 중에서 나가오카(長岡;지금의 니가타현 서부지역)번이 있었다. 석고(石高;도쿠가와 막부 시절 번의 경제력을 측정하던 단위) 약 7만석의 작은 번이었지만, 동북지방에서는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번이었다. 하지만 신정부에 패망한 후 번은 초토화되고, 거기에 더해 영지는 몰수됐다. 이는 사무라이들이 거리로 나앉게 됐다는 의미였다. 기근까지 겹쳤다. 이때 나가오카번의 지번(支藩)인 미네야마번(三根山藩)에서 구휼미 100섬을 보내왔다. 이 소식을 들은 사무라이들은 쌀을 달라며 번청(藩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앞에 가로(家老;번의 총리)인 고바야시 도라사부로(小林虎三郞, 1828～1877)가 나타났다. 그는 쌀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무라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무사는 항상 전쟁터에 있다. 전쟁터에서는 힘들고 배가 고프다느니, 뭐가 없고 뭐가 모자란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무사란 자가 먹을 게 없다고 쌀을 나눠달라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러고도 너희가 나가오카의 무사라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가오카의 무사라면 설령 굶어죽는다고 해도 그런 한심한 말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매섭게 야단을 친 후 고바야시 도라사부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쌀을 나눠먹으면 며칠이나 가겠나? 하지만 이 쌀로 능력 있는 인재를 키우면 이 쌀은 몇 년 후에는 1만 섬이 되고 100만 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고바야시 도라사부로는 미네야마번에서 들어온 구휼미를 팔아서 그 돈으로 학교를 세우도록 했다. 후일 나가오카는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지낸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를 비롯한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나가오카에는 이 ‘쌀 백 섬’의 일화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종자를 지키고 굶어 죽은 바빌로프연구소 연구원들

러시아 상트페레트부르크(구 레닌그라드)에는 바빌로프식물연구소가 있다. 34만 종 이상의 식물 종자(種子)가 보관되어 있는 세계 최대의 식물자원 연구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는 나치 독일군에 의해 900여일간 포위됐다. 굶주린 시민들은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은 물론 쥐까지 잡아먹었다. 심지어 인육(人肉)을 먹거나 판매한다는 소문까지 돌아 NKVD(비밀경찰)이 단속에 나서기까지 했다.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굶어죽었다. 

바빌로프연구소에는 다양한 종자 포대들이 있었다.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바빌로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50여명의 직원들은 이 종대 포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들은 극도의 추위 속에서 씨감자가 얼지 않도록 가구를 부수어서 불을 땠고, 쥐가 종자들을 먹지 않도록 밤새워 보초를 서기도 했다. 영양실조로 발을 질질 끄는 지경이 되도 그들은 종자 부대는 건드리지 않았다. 결국 연구원 가운데 31명이 굶어 죽었다. 자신의 목숨과 곡식 종자를 맞바꾼 것이다.

나라 곳간 허는 데 혈안이 된 정치인들

코로나 지원금 문제로 다시 나라가 시끄럽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페이스북에 ‘집단자살 사회에서 대책 없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재정 지출에 소극적인 기획재정부를 공격했다. 그는 “전 세계가 확장재정정책에 나서는데 안 그래도 너무 건전해서 문제인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고 국가부채 증가(위험만) 내세우며 소비지원, 가계소득지원(은) 극력 반대하니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코로나 방역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손실보상법에 대해 난색을 표명한 김용범 기재부1차관에게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호통을 쳤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지금 단계에서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면서 “곳간은 언젠가 쓰기 위해 채우는 것”라고 말했다.

말이 좋아 코로나 대책이지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돈을 푸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들이 하는 걸 보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휼미를 가지고 학교를 세웠던 고바야시 도라사부로,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종자를 지켜냈던 바빌로프연구소의 과학자들 같은 지도자는 이 나라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