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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보

안에서 싸우다 망한 중국 왕조(王朝)들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본다 ①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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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晉) - 황제의 무능과 황후의 정권욕이 ‘8왕의 난’이라는 내란 불러
⊙ 송(宋) - 구법당(보수파)과 신법당(개혁파)의 당쟁, 정권 바뀔 때마다 상대방을 ‘간당(奸黨)’으로
    낙인찍는 ‘과거사 청산’ 놀음 되풀이
⊙ 명(明) - 동림당과 엄당(환관당)의 20년 당쟁, 명장 원숭환 처형하는 등 국가안보 실종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석 달이 지났지만 나라는 여전히 편치 않다. 집권 세력은 ‘적폐(積弊) 청산’을 국정의 제1과제로 올려놓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니 그 이전의 보수 정권 모두를 적폐 세력으로 몰아 단죄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연일 대기업을 때리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를 앙망(仰望)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기존의 틀을 허물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를 보면서 좌파 세력은 제 세상을 만났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다.
 
반면에 우파 세력은 숨을 죽이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두고 보자’고 이를 갈고 있다. 마치 내전을 앞두고 있던 1930년대 스페인처럼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러는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ICBM을 발사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북한을 역성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된 대한민국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역사를 보면 내분으로 인해 망국의 비운을 맛본 나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 대륙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나라가 내분으로 망했다. 그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경우가 진(晉·265~316년), 송(宋·960~1279년), 명(明·1368~1644년)이다.
 

1. 晉나라; 아녀자의 정권욕이 내란을 부르다
 
▶ 시대 개요
 
진(晉·265~316)은 사마염(司馬炎·무제)이 위(魏)나라 원제 조환의 제위(帝位)를 찬탈해 세운 나라다. 사마염은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숙적으로 나오는 사마의의 손자다. 사마염은 280년 오(吳)를 멸망시켜 60년간 셋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촉은 위나라 때인 263년 패망).
 
진은 창건 직후부터 리더십의 위기를 겪게 된다. 사마염은 어떤 의미에서는 3대째의 군주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할아버지 사마의, 큰아버지 사마사, 아버지 사마소가 위나라의 권신(權臣)으로 국정을 농단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사마염의 시기에 진은 창업과 통일 후의 바람직한 기풍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사마염이 죽은 후 어리석은 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이 즉위했다. 이후 8명의 친왕(親王)들이 15년에 걸쳐 내전을 벌였다. 이 틈을 타서 흉노(匈奴)·저(氐)·갈(羯)·강(羌)·선비(鮮卑) 등 주변 오랑캐들이 중국 내지로 쳐들어오면서 진은 멸망했다.
 

‘숙맥’ 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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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를 창건한 무제 사마염.
진나라를 연 무제(武帝) 사마염(재위 265~290년)은 자신의 혈족들을 친왕으로 봉해 군사를 거느리고 요지(要地)를 지키게 했다. 이는 사마씨가 위의 권력을 찬탈했을 때, 황제를 지킬 친위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위가 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조치가 오히려 진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
 
사마염의 뒤를 이은 혜제(재위 290~306년)는 바보였다. ‘숙맥(菽麥·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은 혜제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했던(菽麥不辨) 데서 나왔다. 혜제는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쌀이 없으면 왜 고기를 먹지 않을꼬?”라고 할 정도로 물정을 몰랐다.
 
반면 혜제의 황후인 가남풍(賈南風)은 음란하고 기가 센 여자였다. 그는 진나라 개국공신 가충의 딸이었다. 가남풍은 바보인 남편을 제치고 정치에 간여하려 했다. 하지만 장애가 있었다. 황제의 외할아버지인 재상(태부) 양준이었다.
 
가남풍은 양준을 제거하기 위해 시동생인 초(楚)왕 사마위를 끌어들였다. 201년 사마위는 군대를 이끌고 수도 낙양으로 들어와 양준 일당 수천 명을 죽였다. 양준의 자리는 황실의 어른인 여남(汝南)왕 사마량(혜제의 작은 할아버지)이 차지했다.
 
석 달 후 가남풍은 다시 초왕 사마위를 이용해 사마량을 제거했다. 국가 원로 두 명이 몇 달 사이에 비명에 간 것이다. 반발이 일자 가남풍은 모든 잘못을 초왕 사마위에게 전가했다. 사마위가 혜제의 명령을 위조해 제멋대로 양준과 사마량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사마위는 처형됐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남풍의 다음 제거 대상은 황태자인 사마휼이었다. 가남풍은 역모죄를 날조해 사마휼을 죽여 버렸다. 황태자의 억울한 죽음에 여론이 들끓었다. 300년 조(趙)왕 사마륜(혜제의 작은 할아버지. 사마량의 동생)이 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마륜은 가남풍을 체포한 후 금가루가 가득 든 술을 억지로 먹여 죽였다.
 
권력을 장악한 사마륜은 이듬해 혜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됐다. 그러자 혜제의 사촌동생인 진(秦)왕 사마경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쳐들어왔다. 사마경은 사마륜을 몰아내고 혜제를 다시 황제 자리에 앉혔다. 사마륜도 가남풍처럼 금가루가 가득 든 술을 마시고 죽었다. (계속)

입력 :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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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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